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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늦어도 괜찮습니다.

엄마도 배워요

by 오천사



너 어릴 때 피아노 잘 쳤잖아~


어릴 적 한 동네에서 함께 자란 친한 언니와 오랜만에 통화하다가 듣게 된 뜻밖의 한마디.


우리가 함께 피아노를 배운 기억만 있었지 언니의 기억 속에 내가 피아노를 잘 치는 아이로 남아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운 나의 기억 속에는 무서웠던 피아노 선생님뿐이었기에.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했지만, 엄하기로 소문난 내가 다니는 피아노학원의 원장님은 조금 틀리기라도 하면 손등을 때리셨다. 마치고 집에 올 때면 손등이 벌게진 것은 덤. (다른 피아노 학원도 그랬나?)


당시 나를 비롯한 동갑 친구들 두 명이 더 있었는데, 우리 셋은 내기라도 한 듯 매일 열심히 연습을 했다.

대회 욕심이 많은 원장님은 우리 셋이 재능이 있다며 더욱 열심히 연습해야 한다고 강조하셨고, 우린 그 말을 따를 수밖에.


당시에 나는 친구들보다 손가락이 짧았다.

친구들은 상대적으로 나보다 손가락이 길었고. 그쪽으로 진로를 정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 피아니스트가 되어 있을 수도.


피아노 원장님은, 내가 재능이 없지 않은데 손가락이 짧아 아쉽다시며,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사이. 그리고 약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 사이를 찢는 수술을 하면,

피아노를 더 잘 칠 수 있게 될 거라고 부모님을 설득하셨다.


하지만.


신체발부수지부모이거늘,


‘몸과 머리털, 피부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히 다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니라.’라고 공자님도 말씀하시지 않었던가.

그러니 머리털 하나라도 함부로 간수해서는 안되거늘. 손가락을 찢으라니. 그것도 양쪽 두 군데씩을!


여느 부모님도 그러셨겠지만 나의 부모님도 딸 피아니스트 시킬 거 아니다. 라시면서 피아노를 그만두게 하셨다. 그렇게 나와 피아노의 인연은 끊어졌다.




부모님의 선택에 원망도 없고 , 물론 후회도 없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멋진 연주곡이 흘러나올 때마다, 만약 그때 아예 그만두지 않고, 꾸준히 피아노를 (다른 곳에서라도) 저런 곡 한 곡쯤은 멋들어지게 연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가끔 드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다시 두 번째 스무 살의 끝을 잡고, 용기를 냈다.



<피아노, 늦어도 괜찮습니다>


마음속에 음악만 있으면 됩니다.

피아노를 좋아하는 곡으로 배우면

연습을 하게 되고, 실력도 늘게 됩니다.


그래서 피아노, 늦어도 괜찮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캐롯마켓에 원데이클래스 광고를 본 것.

다시 피아노를 배울 기회다!

원데이클래스를 신청했고, 수업을 마치고 바로 등록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가는 피아노 레슨에서, (젊은) 선생님은 손가락의 길고 짧음은 전혀 언급하지 않으셨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시며.


원하는 곡이 있냐 물으셨고, 난 평소 즐겨 듣던 가수의 곡을 연주해보고 싶다 말씀드렸다.

피아노 연주한 지는 30년도 더 되었지만. 다행히 피아노를 향한 나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나 보다.

선생님께서는 좋아하는 곡을 연습하게 해 주셨고, 드디어 한 곡을 완성하게 되었다.

혹자는 대단한 실력이 아니라 할 수도 있겠으나, 일주일에 한 번 (엄마로서가 아닌)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

피아노를 배우러 가는 그 시간은 여덟 살 피아노를 치던 그 소녀가 되살아난다.


열심히 연습하게 한 곡. 드디어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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