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가 과연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인터뷰, 격언, 강연, 자서전까지 성공담, 적어도 실패 후의 성공담 아닌 것을 찾기 어렵다. 아무래도 성공담이 우리 안의 어떤 끓어오르는 열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세상에 필자는 사실 어느 정도 불만이 있어 왔다.
이러한 마음, 그리고 양적연구방법론을 공부하며 느꼈던 점은 그릿을 비판하는 논문의 핵심 주장 중 하나인 생존편향(Survivorship bias)과 'Intutive appeal'로 집약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동원하는 이야기는 정말 세상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적절히 던져왔던가?
'중독'에 대한 세간의 인식과 통계라는 다분히 인위적인 발명품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생존 편향은 선택 편향이자 논리적 오류로, 선택된 개체(실체)에만 집중하고 선택되지 않은, 혹은 선택되지 못한 개체를 간과하는 것이다. 이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믿음, 특히 어떠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특정한 속성이 필요하다는 믿음, 그리고 어떠한 효과가 있으리라는 추론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무엇보다 선택받지 못한 개체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가진다. 생존 편향을 가장 잘 드러내고 또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2차 세계대전 미 해군의 폭격기 보강에 관한 이야기이다. 당시 미군은 적으로부터 폭격기를 보호하기 위해 가장 많이 공격당한 부위를 강화하는 선택을 내리려 했다. 하지만 그 부위는 사실 공격받아도 귀환할 만한 부위였고 실제 보강해야 하는 부분은 귀환한 폭격기는 공격받지 않은 곳, 동력과 직결되는 부분이었다.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이다.
감성적인 교훈이 있는 것만 같은 위 이야기와 달리 냉철한 금융 시장에도 이는 적용된다. 회계연도 말, 펀드를 비롯한 금융상품의 수익률은 실제 전체 수익률보다 과대평가된다. 이유는 폭격기가 추락한 이유만큼 단순한데, 수익률이 저조한 펀드는 연말까지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훌륭한 IB의 포트폴리오도 마찬가지인데, 수익률이 없으면 자신의 자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그릿을 가진 사람이 성공하므로 그릿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 그릿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그래서 어색하게 들린다. 높은 끈기와 열정을 가졌으나 성공하지 못한 자들의 데이터는 수집되지 못했다. 측정 방법에 따라 회복탄력성의 사례와 유사하게 실제 그릿의 효과가 없으나 있는 것으로 선택된 사례가 있을 수도 있겠다. 여하튼 더 많을 수도 있는 그릿을 가지고도 성취하지 못한 이야기를 우리는 거의 듣지 못한다. 실패담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하지만 실패담은 사람들에게 직관적이고 감정적으로 소구하지 못해서인지 잘 퍼지지 않는다. 실패담은 아니지만, 중독과 관련하여 우리의 직관과 달라서 딱히 들리지 않아 왔다고 생각하는 사례를 소개하고 싶다. 마약에 중독되는 이유는 마약의 화학적 성질로 인해 인간의 신경과 호르몬 체계가 망가지고 이를 더 갈구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물론 이것이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쥐 한 마리를 우리에 가두고 그냥 물과 마약이 든 물을 같이 둔다면 그 쥐는 마약이 든 쪽을 선택하고 천천히 죽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분한 양의 식량과 놀잇감, 동료들이 있는 ‘쥐 공원(Rat Park)’를 만들어 같은 실험을 1970년대에 진행한 Bruce K. Alexander의 연구는 다른 결과를 보인다. 마약이 든 물을 쥐들은 선호하지 않았고, 충동적으로 복용하더라도 남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없었다는 것이다.
요한 하리(Johann Hari)는 인간 세상의 예시도 들려주며 중독의 반의어는 ‘맑은 정신’이라기보다 ‘연결된 사회’라고 설득한다. 월남전에서 헤로인을 복용하던 미군들은 미국 본토로 돌아와 중독자로서 말썽을 일으킬 것이라 예상하였지만 집으로 돌아온 그들은 금단현상 치료를 받을 필요도, 재활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 마약 문제가 심각했던 포르투갈은 중독을 처벌하고 낙인찍는 미국식 방식에 투자하던 예산 전부를 중독자들을 사회와 재결합(상담, 창업 대출, 직업훈련 등)시키는 데에 투자하였고, 이전까지 효과를 보이지 못했던 정책과 달리 10여 년이 지난 뒤 마약 사용이 절반 수준으로 감소하였다고 보고한다. 중독자는 잘못이 있으므로, 껄끄러우므로 격리해야 한다는 우리의 인식과 상반되는 결과다.
이러한 점을 들어, 요한 하리는 마약만이 아니라 중독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든지 중독자들이 진정 원하는 것(관계, 교류 등)을 대체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어떤 대상에 중독된 사람은 고립되거나 미처 연결되기 힘든 상황에서 그 대상을 갈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런 관점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낸 「담배는 숭고하다(리처드 클라인)」라는 제목의 책도 있다. 그리고 요한 하리가 인용한 가보 마테(Gabor Mate) 박사도 개인과 사회의 우울, 중독에 관해 오래도록 연구한 끝에 화학 물질을 수용하는 인간 내부보다 인간을 둘러싼 사회와 관계, 힘에 문제 해결의 열쇠가 있다고 본다. 그릿의 예측력을 개인의 상황과 결부하여 연구할 수도 있겠다고 제안한 가능성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물론, 이들의 발견이나 연구 또한 그릿만큼, 어쩌면 그릿보다 더 비판받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발견에 놀라워하고 사람을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는 또 다른 이들의 직관에 소구하는 것일 수 있다. 실제로 마약의 화학적 성질은 부정할 수 없는 수준이기도 하고, 막대한 정책 예산을 중독자들을 보호하는 데에 쓴다고 나무라는 여론에 부딪힐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까닭은 우리가 이전까지 선택하지 않았던 세상이 존재할 수 있음을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데이터는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한다고 한다. 정보로 가공된 이후에는 무언가 패턴을 알려준다. 하지만 정보를 가공하는 일은 정보의 실체와 무관할 수 있다. 폭격을 맞고도 무사 귀환한 전투기들의 데이터를 가지고 가공한 정보는 정보의 실체를, 여기서는 취약한 곳에 사격을 맞아 귀환하지 못한 전투기들과 그러한 전투들 그리고 전쟁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왜곡한다. 어쩌면 이것이 데이터 생성 과정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라고도 하겠다.
누가, 혹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이 정보로 이루어져있다고 한다면 이를 관측하고 수집한 뒤 가공하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데이터를 잘못 수집하는 일, 적절한 방법을 쓰지 않거나 방법을 포장으로써 쓰는 일,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 자의로 이를 활용하는 일까지 말이다. 요즘처럼 데이터에 열광한 역사가 없는 만큼, 무수히 많고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보의 가공과 생성에 더 면밀한 주의를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세상에는 분명히, 듣고 싶지 않았든, 실제로 관측이 불가능하기에 들리지 않든 딱히 들리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엄연히 그 들리지 않는 이야기도 세상의 이야기이며 내가 그 주인공이 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그리고 어쩌면 어떠한 효과나 원리를 발견하고 이를 응용하고 싶은 자라면 더욱 이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심지어는 찾아다녀야 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같은 오류를 범하게 되는 꼴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직관적으로’ 이런 주제에 끌리는 만큼 철저한 실패담을 모으고 날 것의 이야기를 전하는 프로젝트가 환영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