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보통 1종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학원에 등록했다. 운전학원 강사님들이 입을 모아 말씀하시는 것이 있었다. "트럭 시동만 안 꺼뜨려도 잘하는 거예요. 클러치 뗄 때 확 떼지 말고 살살 떼셔야 시동 안 꺼집니다."
알아서 변속을 해주는 자동 자동차와 달리 속력과 상황에 맞게 기어를 조절해야 했다. 1단으로 출발해서 속력을 더 높이기 위해 2단, 3단 차례대로 기어를 바꿔 주어야 한다.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바꾸는 순간은 동력장치와 운동장치 사이가 잠시 멀어지니 평지에서 당연히 속력이 줄게 된다. 이때 너무 빨리 클러치를 떼게 되면 바로 시동이 꺼져버린다.
더 어려운 것, 복잡한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클러치와 브레이크, 엑셀 그리고 기어를 조절하며 운전하는 것이 까다롭지만 그만큼 성취감은 엄청났다. 그러나 성취감과 별개로 내가 취득하기 위한 난관은 험난했다. 총 3가지 시험, 무엇하나 한 번에 붙은 것이 없었다. 만만하게 보고 도전했던 면허 취득 도전기는 필기 2번, 기능 4번, 도로 주행 2번 총 8번의 시험을 치르는 실적을 내며 8개월 만에 끝이 났다.
모든 시험을 한 번에 붙길 바랐던 나에게는 운전 실력을 넘어서서, 시험에 떨어진 나와 마주해야 하는 엄청난 도전이 시작되었다. 기능을 두 번 떨어졌을 때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결국 6개월 후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학과 수업부터 다시 들어야 한다는 연락을 받고 겨우 다시 일어나 면허를 땄다.
1980년대부터 오토엔진이 대중화를 넘어서서 기본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렇다 보니 태어나서 탔던 거의 모든 차량은 시동을 걸고 나면 부드럽게 가속이 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 자동차가 주행 중 속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시사한다. 속력 감소는 주행 방향의 변화, 운전자 가야 할 길을 살핀다, 전방에 위협이 감지되었다, 혹은 멈춰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신호다. 결국 변화하거나 혹은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나도 몰랐던 무의식의 자동화된 사고는 차량이 출발하고 나서 속력이 더 떨어지는 상황을 최대한 만들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기어를 바꿀 때마다 늦어지는 것이 두려웠던 나는 액셀을 빨리 밟고 싶어 급하게 클러치를 떼다 시동을 꺼트려 먹기 일쑤였다. 그 상황, 쭉 속도가 올라가지 않는 모양이 나에게는 몹시 이상했기 때문이었고, 그 이상함은 나에게 두려움을 선사했다. 운전을 하며 맞이한 나와의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쓸수록 더 급해지는 나를 보며 더 조급해졌다.
옆에서 강사님은 "아니, 뭐가 그리 급해요. 브레이크 살살 밟아요. 그렇지. 그렇게 팍팍 밟으면 안 돼."라며 조곤조곤 타이르셨다. 오히려 천천히 느긋하게 할수록 점점 여유가 생기는 나를 발견했다. 운전은 천천히 하면 된다는 공식을 바탕으로 감각을 익히는데 최선을 다했다. 연습에 부은 내 시간과 노력은 헛되지 않았고 면허증을 거머쥐게 되었다. 시험 치는 내내 "제발 천천히. 제발!"을 외쳤기에 가능했던 일인듯하다.
예전에는 봐도 무엇인지 몰랐던 운전에 대해 알기 시작하니, 출근길에 운전하시는 버스 기사님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출발 그리고 잠시 멈칫, 다시 가속 그리고 쭉 뻗은 도로에서 멈출듯하다 속력이 붙기 시작한다. 내가 그렇게 불안하게 여겼던 그 순간이 속력을 더 치고 올리기 위해 당연히 있어야 하는 순간임을 깨닫게 되었다. 참 미련하게도 면허를 따고도 한동안 깨닫지 못했던 것을 어느 추워진 출근길에 멍 때리다 알게 된 것이다.
"넘어져도 괜찮아. 좀 늦으면 뭐 어때. 다시 일어나면 되지."라는 말이 떠오른다. 성격 급하고 욕심쟁이인 나에게 이 말은 '그냥, 어차피 빨리 가야 하는 건 맞지만 너 마음이라도 편해지라고 하는 말'이었기에 인사치레 그 이상 그 이하로도 듣지 않았던 때가 떠올랐다. 인생이란 여행길 위에서 매 순간 승승장구하길 바랐던 나는 단 한 번의 실수조차 용납하지 못하고 심하게 자책하길 반복했다. 처음엔 석 달에 한 번씩 치던 시험에서 나중엔 매일 아침 재는 체중과 매번 들어가는 SNS의 좋아요 개수까지. 그리고는 웃었다. 이 실패가 남들에게 꼬리 잡히는 순간 나는 죽는다고 생각하며.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을 살면서 경직되어 살던 내 인생을 돌아본다. 여리고 어린아이, 두려움과 긴장감에 두 손에는 물기가 차기 시작했고 두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심장은 내 의지를 벗어난 지 오래였다. 남들은 태연히 해내는 모든 것들이 그저 부럽기만 했다. 나도 저렇게 여유 있게 모든 걸 해내고 싶었다.
운전면허 시험을 보는 기간 내내 학원을 나서며 전화를 하면 어머니 아버지께서 한결같이 해주신 이야기가 있다. 사실 그 말을 들을 땐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어느 욕심쟁이 꼬맹이가 자기도 할 수 있다며 왜 못한다고 하냐며 울고불고 떼쓰는 것과 사실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정말 실패는 속도가 떨어지는 것도 시동이 꺼지는 것도 아닌 시동이 꺼진 채로 평생 운전대를 잡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임을 알게 된 지금은 그 응원이 너무나 감사하다.
오래 걸려도 괜찮다며 한 번에 붙으면 오히려 나중에 장롱면허가 된다며 본인의 이야기를 해주신 어머니(진짜로 한 번에 다붙고 지금은 운전을 못 하신다), 그리고 본인이 학원에 다닐 때는 나이가 드신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그 할아버지 신청서 뒷장엔 시험을 본 흔적이 한 바닥 가득히 있었고 끝내 면허를 따셨다는 이야기를 내가 칭얼거릴 때마다 말씀해 주신 아버지. 벌벌 떠는 나를 기다려주시고 따뜻하게 안아주신 부모님께 제 면허를 바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