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이라는 책을 아시나요? 루스 베네딕트라는 미국의 인류학자가 패망한 일본을 대상으로 연구하여 썼던 책입니다. 초판이 인쇄된 게 1974년이니 거의 40년이 다되어가는 책이네요. 극동의 작은 섬나라에 호되게 당하고 그들에 대해 연구를 하였던 미국은 자신들의 사고방식과는 너무 다른 새로운 세계를 경험합니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일본인에게는 당연시되지 않았고, 번역조차 힘든 그들만의 문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 책의 대단한 이유는 저자가 일본에서 생활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인류학이라고 하면 연구를 진행하고자 하는 곳에 살면서 그들과 동화된 삶을 통해 하나하나 결과물을 얻어가는 것인데 루스 베네딕트는 미국에서 연구를 하였습니다. 미국에 사는 일본인과 기존의 연구물을 탐독하면서 연구하였지만 그 어떤 연구보다 깊이 있는 연구자료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일본에 대한 애증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은 그냥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봅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보다 발전도 늦었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인 것도 늦었지만 어느 순간 엄청난 힘을 얻어 세계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일본에 대해 살짝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빨랐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책을 읽는 내내 남았습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일본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일본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일본을 아는 것은 뉴스 미디어, 책, SNS 등을 통해서입니다. 그렇다 보니 항상 한국인의 시각에서 일본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이슈가 있으면 한국인의 입장에서 그들을 불평하고, 무시하고, 화를 냈습니다.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현재 처한 환경과 사고 속에서 다른 정보들을 받아들이고 판단합니다. 심리학에서 항상 등장하는 피아제의 이론처럼 동화와 조절은 개인의 지식 구조에 맞춰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 때문입니다. 그녀가 일본에 대한 연구를 일본이 아닌 미국에서 했듯이 다양한 서적과 정보를 통해 일본인을 이해하는 것이 잘못된 방법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저에게 일본 하면 떠오르는 첫 장면은 임진왜란입니다. 부산 동래 포구에 나타났던 왜구들은 채 한 달도 안 되어 한양까지 진격하게 되었죠. 지금과 같은 도로와 자동차가 없던 시절인데도 싸워가면서 그토록 빨리 한양까지 접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나라 군대가 무능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변명을 해도 바뀌지 않는 진실이지요. 그런데 참 재미있는 일화가 일본이 그토록 빨리 한양으로 진격한 이유가 왕을 잡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전쟁이란 주변의 성들을 함락하면서 땅을 야금야금 넓혀가는 것인데 그들의 전쟁은 우두머리를 잡는 것이었나 봅니다. 일본에서 주군을 쇼군이라 부릅니다. 그들의 밑에는 충성스러운 사무라이들이 있고 그 아래 농민, 상민, 천민들이 있습니다. 일본은 그 어느 나라보다 계층제도가 확고한 나라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아왔습니다. 그들에게는 쇼군의 명령이 곧 생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원칙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우두머리가 항복하면 아래 부하들은 자연스레 새로운 정복자 밑으로 들어가게 되고 항복한 우두머리는 자결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당연히 조선도 그럴 것이라 판단하고 그런 전술을 사용한 것이겠죠. 그런데 웬걸~ 조선의 왕은 왕궁과 수도를 버리고 피난을 떠났습니다. 여기서 일본군은 엄청난 멘붕을 맞이합니다. 어떻게 왕이 도성을 버리고 달아날 수 있냐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지요. 하지만 조선에서는 전쟁을 피해 도망가는 것은 왕이 아니라 왕의 할아비가 와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앉아서 개죽음당하느니 도망쳐서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올바른 판단이었으니까요. 이처럼 조선과 일본은 전쟁의 수행 방식, 사고방식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군은 카미카제를 꾸려 자신의 목숨도 불사하는 항전 의지를 보였습니다. 일본 본토에 상륙하는 미군도 이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수십만의 희생자가 더 발생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미 본토에 알렸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완강하던 일본이 천황의 항복 메시지 하나로 모두 총을 버리고 일순간 항복을 하게 됩니다. 아침까지 항전 의지를 북돋우던 일본군이 점심 때는 새 옷을 사러 가게로 갔고, 오후에는 손에 꽃을 들고 미군(정복자)을 맞이합니다. 이런 행동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시나요?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어땠을까요? 역사적으로 봐도 왕이 잡히고 항복을 한들 우리 조상들은 끝까지 항전하며 외세와 싸웠습니다. 고려의 별무반, 조선의 의병들이 그랬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왕이 아니라 조국과 민족이었기에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천황의 은혜를 입고 사는 민족이라는 신념아래 천황의 명령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행동합니다. 포로로 잡히는 것은 천황에 대한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라 생각해서 포로로 잡히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천황이 사람이든 신이든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천황은 유일신 정도의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몇 해 전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일본 천황에 대한 말을 했을 때 일본 내 엄청난 여론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에게 천황은 신성불가침의 존재인데 이웃나라 대통령이 역린을 건드린 것입니다. 그들은 천황을 알현할 때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히로히토란 이름도 쓰지 못한다고 합니다. 실수로 자신의 아들을 히로히토라고 지은 부모는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아들과 함께 자살했다고 합니다. 일본인의 마음속에 천황은 그런 존재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이런 전쟁을 일으킨 것일까요? 앞서 이야기했듯 일본은 엄격한 카스트제도가 존재합니다. 천황-쇼균-사무라이-농민-상민-천민 등으로 구분되는 계층은 너무나 확고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이런 계층제도 때문에 혁명이 일어납니다. 상위 계층의 사람들이 하위 계층을 핍박하고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물질문명(자본주의)에 대한 거부 반응이 강했던 일본은 무사계급인 사무라이부터 정신적인 면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배고픔에 힘들어하지 않아야 하며 주군을 향한 무한한 충성을 맹세해야 했죠. 그렇게 오랜 역사 동안 아래로부터의 혁명다운 혁명이 전무하다 보니 일본의 계층제도는 너무나 확고했습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발전된 일본이 주변의 나라를 정복하고 위아래 계층을 나누는 것이 동북아의 질서를 위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앞서 이야기했듯이 그들의 사고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함. 하지만 주변국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 그래서 조선을 강탈하고 신민화 교육을 통해 일본인은 본토인으로 형님이고, 조선은 외지의 나라로 동생이라는 개념을 계속해서 주입한 것입니다. 즉 두 나라는 계층적으로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동생은 형에게 감히 덤비거나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이 당시 했던 생각으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한국은 한국대로의 사고방식으로 일본은 일본대로의 사고방식으로.
일본이 강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계기는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입니다. 당시 일본도 우리와 같이 쇄국정책을 강하게 주장했으나 발전된 미국의 함대 앞에서는 무력했습니다. 강제 개항 당한 일본은 침착했습니다. 그들은 메이지유신(변화)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데올로기적인 혁명이 아니라 큰 사업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입니다. 오로지 일본을 세계 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기존의 봉건제도를 보완하고, 농민의 처우를 개선하며 불만을 잠재웠습니다.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일본과 다른 점을 배웠습니다. 그중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대부분의 서양국가들은 지배자와 인민의 반목을 통해 혁명이 일어났는데 이는 일본의 현실과는 괴리가 있었고, 일본만의 사상으로 일본을 개혁한다는 생각으로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일본을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이 천황이었습니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불만이 적었고 전 국민이 힘을 합쳐 이루어냈던 엄청난 기적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일본은 세계의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고 힘을 길러 주변을 침략했던 것입니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일본은 경제 침체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관련된 많은 책들에서 일본에 대한 비판과 무력함을 언급하지만 저는 한편으로 일본이 무섭습니다. 그들이 과거에 보여준 단결력과 정치가들의 지도력이 다시 나타나는 순간 제2의 메이지유신으로 점철되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천황의 한마디에 그렇게 호전적이던 사람들이 상냥하게 바뀌는 기적을 눈앞에서 본 미국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느껴질 것입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저력이 있는 국가가 일본이기에 우리는 항상 그들을 의심하고 감시하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착각일 때가 많습니다. 흔히 가까운 사람에 대해서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가족, 친구, 연인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들이 사고, 행동에 관해 마치 예언가라도 된냥 너무 쉽게 말하고 예측하죠. 하지만 가깝다고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현대의 과학도 완전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미지의 존재가 아닙니까? 거리상 가장 가까운 나라인 일본은 알면 알수록 우리와 너무 다른 것 같습니다. 더 많이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는 새로운 관계 정립도 힘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감정적인 면을 거두고 객관적인 자료로 그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두 번 당하지 않습니다. 가까울수록 더욱 치밀하게 연구하고 관찰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