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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asi kang Aug 30. 2023

미래사회에 대한 통찰

자본의 분배

  어렸을 적 각그랜저는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농촌 지역에 살다 보니 고급차를 볼 일이 적었지만 어쩌다 보게 된 고급차는 뇌리 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왜 우리 아버지는 저런 차를 탈 수 없을까? 왜 우리 집은 저런 차를 살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안될까? 어린 나이였지만 이런 생각들이 많았습니다.

  성인이 되고 대학을 졸업한 후 처음으로 직업을 갖게 된 것이 군대였습니다. 학군 장교(ROTC)로 임관을 하게 되었고 첫 달에 12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았습니다. 체 한 달이 지나지 않아서 받아 든 월급은 당시 저에게는 큰돈이었습니다. 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 속옷을 사준다는 말을 듣고 부모님, 할머니, 삼촌과 고모, 이모까지 다 사서 주었던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쓰고 나니 남는 것은 많지 않았죠. 그래도 나의 능력과 시간을 쏟아 받아낸 월급이 그리도 좋았습니다.

  제가 발령받은 지역은 후방(울산)이었습니다. 군인들에겐 꿈의 지역이지요. 같이 임관한 20명 동기 중에 저만 유일하게 후방에 배치되었습니다. 그것도 도심지역에요. 친구들은 저에게 무슨 연줄이 있냐며 농담 섞인 말을 건넸지만 흙수저에 끈이라고는 썩은 동아줄도 없었던 저에게 그럴 일은 만무했지요. 지역만 보고 대부분 좋은 곳에 갔다고 생각했지만 후방은 후방 나름대로의 고충이 참 많은 곳이었습니다. 전방에 대부분의 자원을 보내다 보니 후방은 항상 사람이 부족했습니다. 한 중대에 간부가 한 명(중대장)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중대원도 10여 명이 전부였지요. 간부 수도 적고 병사 수도 적으니 혼자서 여러 명의 일을 맡아해야 했습니다. 첫 발령을 받고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당직 사령을 서게 되었습니다. 상부 규칙에 따르면 소위는 당직 사령을 서지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 대대가 관리하는 지역이 울산 남구 지역과 온산 일대였는데 당직 사령은 그 지역을 하룻밤 동안 관리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조치해야 하는 임무였지요. 갓 임관한 소위가 뭘 알겠습니까? 소위가 당직사령을 섰다는 소식을 들은 해안 중대와 레이더 기지는 어려운 연습 상황을 지속적으로 걸어 저를 혼비백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때 당시는 너무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참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잠을 자지 못하면서 제가 가능 능력 이상을 발휘하며 한 달이 되면 월급이라는 명목으로 그 보답을 받았습니다. 당시 소위 월급은 채 200만 원이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시간 외 수당도 준다는 말을 들었지만 당시에는 그런 개념조차 없던 시기라 24시간 일하고 월급이 다였습니다. 저는 저의 모든 시간, 노력을 들였고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 월급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인적 자본이라고 부릅니다.

  군대 이야기를 했지만 인적 자본은 사람마다 숙련 기술에 따라 보상 수준이 다릅니다. 가령 환자를 많이 접하고 명성이 높은 의사를 모시고 오려면 부르는 게 값입니다. 하지만 갓 의대를 졸업하고 경험이 미천한 의사는 병원이 연봉 협상의 주체가 되죠. 프로그램 개발 경험이 많은 상위 개발자들은 세계적인 IT기업에서 큰돈을 들여 서로 스카우트하려 합니다. 하지만 개발 경험이 적고 능숙하지 못한 개발자들은 스스로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을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인적 자본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인적 자본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앞서 언급한 인공지능 발달과 기계화로 인해 인간의 숙련된 능력이 점점 침해당하기 때문이죠. 그와는 반대로 전통자본은 점점 더 격차가 커지고 있습니다. 건물, 주식, 예금, 토지, 금 등 전통적인 자본을 가진 사람들의 부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인적 자본으로 전통 자본을 넘어설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점점 더 인적 자본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부의 크기는 상대적으로 줄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적 자본을 이야기할 때 세계적인 기업을 일으킨 몇몇 사업가들을 예로 듭니다. 스티브 잡스는 대학을 중퇴하고도 세계 굴지의 IT회사 애플을 만들었고 우리나라 산업의 근간을 만든 정주영 회장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사람이죠. 결국 성공을 이룬 사람들은 학력이 아니라 그들의 노력과 열정으로 이루었다는 논리로 사람들을 동기부여 합니다. 그런데 이런 논리는 큰 오류를 갖고 있습니다. 능력편향이라고 들어 보셨는지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애초에 남들에 비해 좋은 대학에 갈 확률이 큽니다. 하지만 대학을 가지 않거나 중퇴를 하면서 성공한 이유를 교육으로만 본다면 중요한 것을 놓치는 꼴이 되지요. 그들은 이미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대학 교육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과 같이 행동한다고 해서 그들처럼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능력을 통한 성공의 길도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요.

  인적 자본의 중요도가 점점 낮아진다는 것은 새로운 세대에게는 절망에 가깝습니다. 예전처럼 더 이상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그렇다면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앞서 언급했던 전통 자본의 분배가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사실은 상위 10%의 부가 나라 전체 부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 할 것 없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런 인간의 노동이 더 이상 부의 분배 수단으로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프레카리아트가 되고 만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소수의 자본가 외 대부분의 사람들이 빈민 이하의 삶을 살게 된다면 세상은 안정적으로 돌아갈까요? 곳곳에 시위와 학살, 전쟁이 발발할 것입니다. 모두가 평화롭게 사는 것은 소수의 자본가에게도 중요한 환경입니다. 미래사회에서 전통 자본의 재분배 없이는 이런 사회적 혼란을 막을 수 없다는 것도 팩트이고요.

  그 옛날 케네디는 '밀물은 모든 배를 끌어올린다'라는 말로 파이의 크기를 중요시했습니다. 경제가 발달할수록 전체 부의 크기가 커지기 때문에 모두가 혜택을 받는다는 논리였지요. 그런데 밀물이 들어올 때 살아날 수 있는 사람은 작은 조각배라도 가진 사람들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은 그저 허우적거리다 물에 빠져 죽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죠.

  인적 자본을 가진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 것입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려운 일들은 점점 인공지능이 대체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본의 분배에 대해 실질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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