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연화 Jun 19. 2024

따가웠던 말

 

 내가 한 사람과 깊어지는 지점은 술 한 잔에 걱정과 고민을 나눌 때이고, 그때의 화법에 따라 관계가 좌우되었다. 언젠가 꿈과 진로에 대해 친한 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한참 인생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시기라서 꿈에 대한 고민과 걱정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학창 시절을 예체능으로 보냈기에 대학 전공도 그에 따라 택했고, 첫 사회생활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내게 편안함을 주긴 했지만, 만족감을 주지는 못했다. 무려 초등학교 4학년 때 선택한 진로로 20대 중반까지 그 길을 걷게 되었으니까. 내가 변화하면서 하고 싶은 일도 변해갔다. 하고 싶은 것은 여태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일이었고, 잘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걸 도전하는 게 두렵다고 말했다. 그런 속마음을 말했는데 언니가 내게 말했다.

 

 “이제 와서 네가 어떤 일을 하려고 그래.”

 

 그 말을 듣고 나는 확신했다. 우리는 앞으로 친밀한 사이를 이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어떠한 대화를 나누든 그것은 표면상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그녀가 나를 걱정하는 마음과는 별개의 것이었다. 내가 두 번 다시 그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가장 여렸을 때 들은 말이 가장 따가웠다. 가장 힘들 때 마주한 냉소적인 태도가 제일 아팠다. 돌이켜본다. 힘들어하는 이에게, 위로와 응원이 필요했던 사람에게 아픈 말을 던지진 않았는지. 무조건적인 이해와 수용이 고팠던 사람에게 현실을 앞세워 가슴에 비수를 꽂지 않았는지. 화법이 가장 중요한 순간은 약해진 이와 대화할 때일 것이다. 힘들어 기댈 곳이 필요한 사람에게 건네는 말은 조금만 날카로워도 송곳같이 파고든다. 언제나 말을 가다듬으면 좋겠지만 심적으로 힘든 사람에게는 평소보다 더 신중히 말해야 한다.

 

 어떤 말은 잊지 않으려 몇 번이고 읊조리고, 어떤 말은 흘려보내려 노력한다. 어떤 말은 가슴에 박혀 빼내려고 악을 써도 빠지지 않고, 어떤 말은 가슴에 새겨져 내내 나를 지킨다.

 우리를 지키는 말들을 건넬 수 있었으면 한다. 서로에게 건네는 말을 잊지 않으려 메모장에 써두고, 힘들 때면 꺼내 읽을 수 있는 따스한 문장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름을 이해한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