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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재민 Dec 24. 2024

[시민 불복종]
침묵의 둑을 허무는 용기

경북에서 소로우를 다시 읽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시민 불복종]은 과거에만 머무르는 외침이 아니다. 획일적인 사고와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되묻는 그의 목소리는, 특히 경상북도에서 삶을 일구어 온 이들에게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마치 오랜 시간 익숙해진 고향의 풍경처럼, 우리 주변에는 쉽게 눈에 띄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억압과 침묵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소로우는 “최상의 정부는 최소한으로 통치하는 정부”라는 명제를 통해 개인의 양심과 도덕을 억누르는 권력의 횡포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며 세금 납부를 거부하고 투옥된 그의 경험은,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용기가 얼마나 숭고한 가치인지를 웅변한다. 다수라는 이름으로 소수의 목소리를 묵살하고, 집단의 이익이라는 명분 아래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현실은, 소로우의 시대와 현재를 관통하는 문제의 핵심을 찌른다.


내가 살아가는 경상북도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더욱 명징하게 드러내는 하나의 단면과 같다. 오랜 기간 특정 정당에 대한 높은 지지율이 지속되면서, 이 지역은 마치 견고한 침묵의 성채처럼 굳건해졌다. 다른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곧 ‘튀는 행동’으로 간주되고, 암묵적인 배척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비판적인 목소리는 자연스레 위축되고, 다수의 의견에 매몰되거나 아예 발화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17년 포항 지진 당시, 정부의 미흡한 초기 대응과 그 이후 이어진 일방적인 복구 과정은 이러한 현실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당시 이재민들의 절박한 호소는 충분한 공론의 장을 확보하지 못한 채 묻히고 말았으며, 소로우가 그토록 경계했던 ‘다수의 횡포’가 재난이라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반복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목격해야 했다.


경북의 권위주의적 문화는 단순히 유교적 전통만으로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그리고 군사 정권이라는 격동의 현대사를 거치면서, 획일성과 복종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가 우리 사회의 기저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특히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는 비판적인 질문 자체를 ‘반항’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심화시켰다. 이러한 문화는 경북의 보수적인 정서와 결합하여 더욱 공고한 권위주의의 토대를 구축해 왔다. 마치 오랜 군 생활에 익숙해진 병사처럼, 우리는 윗사람의 지시에 순응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다른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경북 특유의 보수적 성향은 새로운 문화나 가치관의 수용을 지연시키는 경향을 보인다. 전통적인 가치를 존중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외면하고 새로운 시도를 배척하는 태도는 지역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은 이러한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좌절감을 느끼고, 더 나은 기회를 찾아 고향을 떠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치 소로우가 낡은 관습에 얽매여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했던 것처럼, 우리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재에 안주하려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진실을 용기 있게 외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의 시작임을 역설했다. 이는 획일적인 가치관을 강요하는 사회에 맞서 개인의 자유로운 사고와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중요한 메시지로 이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민 불복종]은 굳건한 침묵의 둑에 균열을 내는 날카로운 도구와 같다. 소로우는 부당한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시민의 의무임을 강조한다. 그의 외침은 획일적인 사고와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에 묵직한 경종을 울린다. 물론 소로우의 주장이 모든 상황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이상주의는 현실의 복잡성을 간과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용기 있는 행동과 날카로운 비판은 침묵을 강요받는 이들에게 작은 용기라도 불어넣어 준다.


나 역시 경북에서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을 통해 깊은 고민과 성찰을 거듭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거대한 침묵의 시스템 속에서 길들여진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로우의 외침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당신은 인간으로서, 국민으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양심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은, 견고한 침묵의 둑을 허물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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