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이후, 사회복지의 자화상
2014년, 검푸른 물결 아래 가라앉은 노란 리본은 대한민국을 거대한 슬픔의 심연으로 끌어당겼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해상 사고를 넘어,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과 구조적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비극이었다. ‘세월호 참사 관련 사회복지실천 경험 연구’라는 묵직한 제목의 논문들은 그 비극 속에서 사회복지가 마주한 현실과 과제를 담담히 그려낸다. 하지만 그 기록 속에는 여전히 메워지지 않은 균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선명히 새겨져 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내 눈에 비친 세상은 온통 혼돈이었다. 어른들의 세계는 속절없이 흔들렸고, 온갖 뉴스와 찌라시들이 뒤섞여 진실을 가렸다.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온 사회를 덮었다. 사회복지라는 단어는 교과서에서나 보던 낯선 단어였지만, 뉴스 속 검은 정장 차림의 어른들이 분주히 오가는 모습은 슬픔과 함께 희미하게 각인되었다. 그때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2022년 이태원의 밤거리를 가득 채운 구급차의 붉은 불빛은 8년 전의 기억을 강렬하게 되살렸다. 좁은 골목, 비명, 그리고 속수무책.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과거의 그림자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검은 정장 대신 형광 조끼를 입은, 길 위의 사회복지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얼굴에는 망설임과 고뇌가 스쳐 지나갔다. 마치, 빗속에서 길을 잃은 아이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했다. 그들의 내면에는 어떤 격랑이 일고 있었을까. ‘도움을 주는’ 존재로서의 역할과, 거대한 슬픔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 사이의 간극은 얼마나 컸을까. 특히 이태원 참사는 이전의 재난들과 달리, 명확한 주최가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여 현장 대응의 어려움을 더했다. 컨트롤 타워 부재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는 정치적 격랑에 휩싸였다. 특히, 초기 대응의 부실함은 거센 질타를 불러일으켰고, 이러한 혼란 속에서 국가 재정에 의존하는 복지 기관들은 더욱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국가 전복 세력’이라는 무시무시한 낙인은, 비판적인 목소리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당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와 “세월호 참사 1주기 국민인식조사” 등은 이러한 위축된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국가의 재난 대응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자유롭게 개진하기 어렵다’는 응답은, 사회복지계를 포함한 시민 사회 전체가 겪었던 어려움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더욱이, 경직된 관료 문화와 획일적인 사고방식은 사회복지 영역의 활동을 제약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조직 내부의 분위기 속에서 정부의 방침에 대한 공론화된 문제 제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으며, ‘착하고 돕는’ 이미지로 굳어진 사회복지계는 정치적인 일에 나서는 것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가 낮았다. 또한, 재난 상황에서 사회복지사의 역할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공감대 형성, 체계적인 대응 시스템 구축 역시 부족했다. 단순히 물자 지원이나 심리 상담에만 초점을 맞추었을 뿐, 피해자의 권익 보호, 사회적 지지 네트워크 형성, 공동체 회복이라는 더 넓은 영역을 포괄해야 한다는 논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마치, 거대한 파도 앞에 작은 돛단배처럼, 사회복지계는 갈 방향을 잡지 못하고 심각한 혼란을 겪는 듯했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있었다. 유가족들에게 용기를 내어 다가선 사회복지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으며, 단순한 물질적 지원을 넘어, 유가족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함께 비를 맞는 이웃’이라는 따뜻한 연대는, 절망 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증거였다. 사회 정의, 경청, 공감, 신뢰, 존중이라는 사회복지의 중요한 가치를 묵묵히 실천한 이들의 헌신은, 한국 사회복지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귀한 사례였다. 마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등대처럼 빛나는 존재였다.
세월호의 교훈은 이태원과 오송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특히, 이태원 참사는 안전 관리 체계의 미비와 미숙한 현장 대처가,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허술한 재난 대비 및 예방 시스템이 문제의 핵심으로 부각되었다.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지만, 우리는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이태원의 밤, 길 위의 사회복지사들이 느꼈을 혼란과 무력감은, 어쩌면 8년 전 우리가 느꼈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이태원 참사는 이전의 재난들과 달리, 명확한 주최가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여 현장 대응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 빗속에서 길을 잃은 아이처럼, 여전히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한 채 비를 맞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사회복지사로서의 윤리적, 전문적 책무를 되새기며, 과거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현재의 과제를 해결하며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재난 발생 이후의 뒷수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과 대비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사회 안전망 구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마치, 빗속에서 길을 잃은 아이가 아닌, 등대처럼 사회의 방향을 밝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아픔을 기억하고, 희망을 만들어가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