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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재민 Dec 25. 2024

불평등의 심화와 공정의 재정의

2024년, [공정하지 않다]를 다시 읽다


2020년대, ‘공정’은 여전히 한국 사회의 주요 담론이다. 과거 조국 사태에서 비롯된 공정성 논쟁은 팬데믹을 거치며 심화된 경제적 불평등,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노동 시장의 변화, 그리고 젠더, 세대, 계층 간의 갈등과 맞물려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띤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원익, 조윤호의 [공정하지 않다]는 2024년 현재, 다시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닌다. 특히, 필명 ‘박가분’으로 알려진 박원익은 사회 현상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으로 주목받았다. 조윤호 역시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공정’이라는 렌즈를 통해 한국 사회의 현실을 분석하는 데 기여했다. 두 저자가 함께 쓴 [공정하지 않다]는 기존의 세대론적 접근에서 벗어나 90년대생이 마주한 사회구조적 맥락을 짚어내며 ‘공정’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왼쪽부터) 조윤호, 박원익 사진출처 : 국민일보

이 책은 ‘공정’이라는 용어가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현실에 질문을 던진다. 모두가 ‘공정’을 이야기하지만, 그 의미는 저마다 다르다. 어떤 이들은 ‘기회의 평등’을, 어떤 이들은 ‘결과의 평등’을, 또 다른 이들은 ‘과정의 공정’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다양한 ‘공정’의 외침 뒤에 가려진 현실, 즉 ‘기울어진 운동장’의 존재를 드러낸다. 출발선 자체가 불평등하게 설정된 상황에서 오로지 ‘경쟁은 공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인가. 특히 팬데믹 이후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플랫폼 노동 등 새로운 형태의 고용 불안정이 심화되었고, 이는 ‘공정한 경쟁’이라는 이상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기존의 세대론은 특정 세대를 하나의 틀로 쉽게 규정짓는 경향이 있었다. ‘88만원 세대’, ‘N포 세대’ 등의 용어는 청년 세대의 고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했지만, 그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공정하지 않다]는 90년대생을 일방적으로 ‘개인주의적’이거나 ‘경쟁적’인 세대로 치부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이 마주한 현실, 즉 세습 자본주의의 심화, 교육 불평등의 고착화, 계층 이동의 어려움 등 구조적인 문제들을 세심하게 분석하며, 이들이 왜 그토록 ‘공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이는 세대 간의 갈등을 단순한 ‘차이’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모순을 명확히 보여주는 부분이다. 저자들은 “기성세대가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현재의 청년들을 이해하려 할 때, 상당한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과거의 잣대로 현재를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의 또 다른 중요한 점은 ‘공정’ 개념의 변화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과거의 ‘공정’이 주로 ‘기회의 평등’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현재 청년들이 요구하는 ‘공정’은 결과의 불평등 해소를 포함하는 더욱 포괄적인 의미로 확장되었다. 저자들은 이러한 변화를 “출발선에서의 평등뿐 아니라, 경쟁 과정과 결과의 공정성까지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더 이상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상황에서, 청년들은 오직 출발선의 평등이 아닌, 과정과 결과의 공정성까지 요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공정’ 개념의 변화를 포착하고 분석함으로써, 이 책은 시대 변화에 따른 사회적 가치의 변화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 특히 세습 자본주의와 교육 불평등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한 부분이다. “돈도 실력이야”라는 말로 대표되는 현실은 그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시스템의 문제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저자들은 “세습 자본주의는 능력주의의 허울을 쓰고 불평등을 정당화한다”고 비판하며, 교육 불평등 역시 계층 대물림의 중요한 통로로 작용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는 단순히 청년 세대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임을 시사한다.


[공정하지 않다]는 단지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필요한 6가지 ‘삶의 무기’를 제시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생존 전략을 넘어 불합리한 현실에 맞서 싸우고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실천적인 지침으로 읽힌다.


물론 이 책이 모든 해답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공정’의 기준이 현실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 더욱 심도 있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90년대생이라는 집단을 지나치게 일반화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공정하지 않다]는 ‘공정’이라는 렌즈를 통해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명확히 보여주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특히 기성세대에게 이 책은 청년 세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통로가 될 것이며, 세대 간의 소통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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