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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왕띵킹 Thinking Jan 07. 2022

의자에 다리 올리면 척추수술 1700만원

재택근무 그 참을 수 없는 무거움이란


하루에 5백명 확진 소식으로 기함했던 때가 이젠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다.

몇 천명대의 확진자 소식이 연이어 들려온다.



2019년까지만해도 이렇게 코로나가 장기화 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지만

코로나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이른바 '특이점' 후의 상태가 지금이니까.


나에게 이런 특의점을 실감하게 해주는 건 역시나

그렇게 빡빡했던 회사에서도 재택 근무를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였다.


광고주와 매체사와 메일과 전화로 바쁜 나날 중에 전사메일로 날아든 재택 근무 안내 메일은

고달팠던 출퇴근길 해방의 기쁨과,

집에 둘 책상 의자가 따로 필요함을 느끼는 불편함, 그 어디쯤에 나를 두었다.



사실 회사의 재택근무는 다른 곳보다 꽤나 늦게 도입되었다.

광고주와의 계약 사항 중 분기별로 만들어지는 디자인 산출물의 경우

외부 유출 등의 문제로 빼내어 작업하지 못하게 하고 반드시 직장에서만 수정 및 배포해야했기에

마케팅팀은 재택근무가 가능함에도 디자인팀은 재택근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뭐 이런 국가적인 방역과 위생 문제가 난무하고 있을 때

'회사의 형평성' 이라는 문제로 몇 이사진들이 타협에 불응하고 있었다는... 뭐 그런 소리다.


결국 디자인팀, 마케팅팀 모두 50%로 돌아가며 재택근무를 하는 것으로 타협했다고 들은 그 순간.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디자인팀은 일주일의 50%를 집에서 보낼진대 일은 할 수 없다. 결국 그냥 쉬는 거다.




야 그럼 나는?

나는 이메일에 전화에, 엑셀에는 예산과 효율에 관련된 기밀사항이 넘치는데

나야말로 외부 유출에 심각한 요인 아니냐?


친한 대리들만 모여있는 단체방에서는 화가 나 어그로를 끌어댔지만

디자인팀에게 전달할 피드백으로 '자세한 사항 첨부파일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를 쓰고 있는 나.

제법 젠틀한건지, 인격이 어긋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디자인팀의 확인 완료했다는 말이 생각보다 늦어지거나

줬던 피드백의 수정사항들이 몇 가지 빠져있는 실수를 확인했을 때,

이전에는 '바쁘신가보네. 다시 리마인드 드려야지' 같은 생각으로 둔감했을지언정

재택근무 이후 '집에서 일 못한다고 아예 메일 확인도 제대로 안하는거야?' 같은 감정이 불쑥 치받았다.





디자인팀원들이 솔직히 무슨 잘못이 있어서....

관리자들의 뭐가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봐야 아는 '회사의 형평성'은

놀랍게도 강경하게 나갔던 어느 이사의 담당팀 내 확진자가 확인되며 사그라들었다.

질병으로 위협받는 인간의 건강이 회사의 이익 추구를 이겼다는 뜻이 아니다.


회사 안 확진자를 격리시키고 사무실 전체 방역을 하고

모든 밀접 접촉자들이 검사를 받느라 오전 업무를 날리는 것 앞에

누군가 강력히 말했던 '형평성'이 하등 소용없기 때문이었다.


매일 자차를 타고 출근하는 모 이사님 외 관리자급과 평사원의 연봉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이 가진 더 많은 경험 앞에 그만한 책임감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부딪히는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평사원과

그 불편함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관리자급이라면, 사이에서 형평성을 논하는 게 우스운 일인 거지.

업무 특성이 다름에 형평을 말하는 거 자체가 권력이 주는 것이라는 걸 똥을 먹어야 알 수 있는 사람이거나 앎에도 권리만을 누리려는 게 아주...


솔직히 범지구적인 전염병에 재택근무를 해야겠다고 말하는 사원과 헤드급 CD(Creative Director).

같은 얘기라도 케어받는다는 느낌이 다르다고 광고주가 느끼지 않을까

실제로 같은 얘기라도 다른 사람이 얘기하면 (광고)주님의 응답의 질이 많이 달랐던 걸 꽤 많이 봐왔다.



전직원이든 직원의 50%만 일하든, 집에서도 일할 수 있는 환경을 프로세스로 만들 권력이,

그래야만 하는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들이 얘기하면 애초에 그런 파워게임에

등터지는 평사원은 없었을 거 아닌지? 우리만 답답하지. 우리만!




변이에 예방주사에... 서울권역 내 확진자 수가 1천명이 넘어가니 회사에서는 부랴부랴

각 헤드급이 담당 광고주에 전사적으로 재택근무를 시작 한다는 내용의 양해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덕분에 한숨 덜었다는 다른 이의 얘기를 들으며 득의양양하던 얼굴들.

엘리베이터에서 그 대화를 듣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렇게 얻어낸 '형평성'이 있는 재택근무란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

원치 않게 얻은 재택근무는 의식적으로 나에게 이것을 되내이게 만든다.


"의자에 다리 올리면 척추수술 1700만원. (...정신적인 피로는  깊을  있으니까) "


p.s. 실제 척추 수술 1700만원이란 얘기가 아니라 인터넷 밈이며 왜 이토록 많은 돈이 드는지는 아래 링크 참조

https://youtu.be/__jQ5mtv-x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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