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해 누군가 기도하고 있나 봐
떠오르는 얼굴들
"누구를 위해 누군가
기도 하고 있나 봐"
가수 아이유의 노래 <LOVE POEM>의 첫 가사다.
가끔 한숨 대신 툭 뱉는 가사 몇 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저 가사다.
종교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은 '기도'라는 명사를 보고 광신도들의 울부짖는 기도자세를 떠올리곤 한다.
다행히도 나는 태어나기를 모태신앙으로 태어나(현재는 무교이다) 사람들의 기도를 많이 목격하며 본 바로는 기도자세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큰 소리로 울부짖고, 몸을 사용하며 열렬히 기도하는 그룹과 반듯한 자세로 입술만으로(그마저도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하는 그룹으로 나뉜다.
대부분의 사람은 두 그룹 사이에서 빈번하여 자신만의 기도자세를 찾아간다. 나의 경우 잠들기 직전과 같은 부동자세였다.
무교가 된 지금은 껍데기뿐인 식전기도만 가끔 한다.(이마저도 무의식에 한다.)
그때의 나는 무엇을 기도했던 걸까. 기도는 무엇일까
그 당시 나의 기도는 대체적으로 건조하되(큰 일없는 하루에 감사하고, 사는 건 늘 힘들지만 그래도 먹고 자고 하는데 무리 없는 것도 감사하고, 다들 건강해서 감사하고...) 간헐적으로 (마음이 힘들 때, 여름 수련회등) 열렬히 기도했다.
지금에 와서 내가 했던 기도들을 돌이켜보면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내가 생각한 기도의 정의이다.
[마음 쓰는 것]
(*'기도 = 마음 쓰는 것'이지 '마음 쓰는 것 = 기도'는 아니다!)
모든 기도에 진심은 있었다. 평범한 나날이 '진심으로'감사했고, 가족들이 건강한 게 '진심으로'감사했다. 다만 전심이 아니었을 뿐.
그 진심이 너무 미약해서 나마저도 눈치채지 못했왔다.
그리고 이런 미약한 진심이 누군가를 위한 기도로 가면 '마음 쓰는 것'이 된다.
크게는 목표하는 바가 성취되기를, 병상에서 회복되기를, 어려운 일이 극복되기를 바라고,
작게는 (행복까지 감히 바라지 않을게) 평범한 날들에 작게나마 웃을 일이 있기를,
(안 힘든 것까지 감히 바라지 않을게) 힘든 일이 덜 힘들기를,
(행운까지 감히 바라지 않을게) 무탈한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이런 상대를 향한 기도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바라는 대상, 원하는 바, 갖춰야 할 자세가 없어도 된다.
반듯한 자세 없이 마음속으로 떠올리기만 하면 된다. (나는 주로 산책할 때, 잠들기 전, 그리고 문뜩 한다.)
원하는 바가 뚜렷이 없어도 된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박장대소가 아닌 작은 풋웃음 정도를 바란다. 무슨 문제인지는 궁금해하지 않은 채 문제 해결 완료가 아닌 문제해결 진척을 바란다.)
대상이 없어도 된다. '누구를 위해' 내가 하는 일인 것이다.
[누구를 위해 '누군가']
중요한 건 내가 '누군가'가 된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가 되어 이름 모를 사람에게 마음 쓴다. 애쓰지 않는다. 작게. 사소하게.
그러다 보면 잊혀가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학창 시절에 친했던 친구, 선생님. 동료.
점점 이름도 잊혀간다. (무슨 과목 선생님, 몇 학년 때 친했던 친구로 떠오른다.)
그 끝에는 얼굴만 기억에 남는데 (과목도, 학년도,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 헷갈린다.)
드물게는 그 너머의 얼굴이 떠오른다. (만났던 것 같은데 누군지 모르겠는 사람 혹은 길 가다 보거나 유튜브에서 봤을 수도 있는 사람.)
그러면 그들의 위해서도 마음을 쓴다.
그러다 보면 나와 같은 사람이 혹시 또 있을까 상상한다.
['누구'를 위해 누군가]
내가 '누구'가 되어 나를 위해 누군가가 마음 써주고 있을 수 있다.라는 상상을 하면
작게나마 바라던 작은 기대가 내게 돌아온다.(처음 생각이 든 날 실제로 풋웃음을 지었다.)
그러면 그날은 '누군가가 나를 위해 마음 써준 날'이 되어 조금 특별한 날이 된다.
"누구를 위해 누군가
기도하고 있나 봐"
이 문장에 '누구'와 '누군가'를 빈칸으로 둔 저 가사가 참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