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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 Jul 11. 2022

아이웨이웨이 뽕

국립현대미술관《아이웨이웨이: 인간미래》 전시 리뷰

나는 아이웨이웨이를 참 좋아한다. 작품을 소개하거나 작가에 대해 글을 써야했을 때, 종종 그에 대해 이야기했을 만큼 말이다. 그 이유는 나의 고등학교 시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의 고등학교는 정원이 그리 많지 않았다. 또한 빡빡한 학업 스케줄 대신 자유로운 분위기를 추구했기 때문에, 소수의 인원으로 재미있는 수업을 많이 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는 문·이과뿐만 아니라 예과(예체능)에도 해당되었고, 절대적인 실기량이 부족한 결과로 나타났다. 순수 실기 만으로 국내 미대에 진학한 사람은 없을 만큼 말이다. 현장은 대충 이런 분위기이다. 정물을 앞에 두고 친구들과 화기애애하게 떠들면서 그림을 그린다. mp3를 틀고 작업에 집중하는 사람도 있으며,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간식을 먹기도 한다. 그림 그릴 기분이 아니어도 괜찮다. 밖에 나가서 산책하고 오면 되니까. 따라서 우리 학교는 진학률이 높은 해외 미대를 겨냥한 실기를 준비했고, 포트폴리오로 지원할 수 있는 학교들을 파고들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많이 가는 곳은 중국이었고, 수업 시간에 중국 작가와 그 작품들을 자주 다루었다. 아이웨이웨이, 위에민준, 장샤오강.... 이들은 미술에 대해 잘 모를 때부터 익숙하게 들었던 이름이고, 몇몇 작품들은 눈에 잘 익어있다. 그래서 작가에게 더 끌리고 마음이 갔던 것 같다. 


그는 용감하고 그의 작품들은 굉장히 직관적이다. 하나의 테마, 하나의 도상을 지속적으로 가져가고, 때로는 변주를 하기도 한다. 어떤 작품은 언어 유희적이고, 무거운 내용을 대상에 치환시켜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의 유쾌하고 화려한 작품 속에 숨겨진 정치적인 풍자와 어두운 사건들은 우리가 대개 말하는 ‘미술의 힘’을 잘 보여주는 예시라고 생각한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아이웨이웨이의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굉장히 기뻤다. 수많은 작품 중 어떤 것을 들여올지 모르지만(혹은 복제품일 수도 있고), 그의 작품을 도판이 아닌 현장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기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원근법 연구>이었다.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눈에 익은 작품이라 더 반가웠다. 정말 기쁘게도 연작을 한 번에, 한 벽면에 몰아서 볼 수 있었다. 첫 작품인 천안문에서의 사진은 역시나 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생각보다 연작이 제작되었음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답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그 이후에는 <검은 샹들리에>가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입구에 위치해있기도 하고, 멀리서 보면 검정색 샹들리에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조금은 징그러운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웨이웨이의 몇 작품에서는 중지가 등장하는데, 역시 <검은 샹들리에>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던 점은 이 <검은 샹들리에>와 이를 사진으로 담은 작품인 <흑요석I·II>의 제목이 전혀 달랐다는 것이다. 색상에서 한 번, 형태적인 면에서 두 번, 닮은 작품과의 연관성에서 세 번. 총 세 번의 반전과 충격을 안겨주었던 작품이다. 그 외에도 도자기, 레고, 영상 작업, 구명조끼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 었다. 특히 <민물 게>가 있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민물 게의 중국어 발음은 화해를 뜻하 는 ‘和谐(héxié)’와 같다고 하는데, 이렇게 무언가를 대변하는 하나의 물체를 나열하여 전시하는 형식을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한다. 비슷한 예시인 <Sunflower Seeds>, <Straight>, <Ton of Tea>등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꽤 만족스러운 전시였다. 


아쉽게 느껴졌던 점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좋았던 점이 될 수도 있음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아이웨이웨이: 인간미래》가 진행되었던 본 관은 다소 협소한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규모의 작품을 설치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과, 설치하였다고 하더라도 작품에서 오는 웅장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지가 의문스럽다. 또한 총 세 곳으로 나누 어지기 때문에 흐름이 끊기기 쉽다. 팜플렛에서 언급을 하고 있기는 하나, 공간이 떨어져 있어 전시가 다른 곳에서 이어지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 또한 이어지는 공간의 작품을 보지 못했던 적이 있다.) 아이웨이웨이의 수많은 작품 중 일정한 주제를 가지고 선별된 작품이겠으나, 그 주제를 일괄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작가의 ‘작품 맛보기’같은 인상이 강했다. 상당히 좁은 간격으로 빽빽하게 진열되어 있어서인지, 아무래도 가볍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 전시보다는 전시장 자체의 문제이지만, 배리어-프리가 아니라는 점 또한 아무래도 아쉬웠다. 그러나 이는 아이웨이웨이를 잘 모르거나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테마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작가가 누구인지, 어떤 작업을 하는지, 어떤 주제를 다루는지 조금씩 맛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웠지만, 누군가에게는 친절한 전시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를 보고 나오니 나는 충만함, 일명 아이웨이웨이 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홀린 듯이 미술책방으로 향해 책 두 권을 구매했다. 심지어 한 권은 영문으로 되어있음에도 말이다. 나를 공부하게 만들다니, 역시나 마음에 드는 작가가 아닐 수 없다. 아직 절반도 채 읽지 못했지만, 《아이웨이웨이: 인간미래》는 아주 충만하고 즐거웠던 전시로 내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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