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중세미술 발제문
중세에는 기독교가 주를 이루었다. 이는 건축물이나 벽화, 모자이크, 스테인드글라스 등으로 파악해볼 수 있다. 특히 성당은 돌로 지은 캔버스라고 불릴 정도로 건축 구성은 물론, 내부 곳곳에서 다양한 예술 양식이 드러난다. 자주 사용되었던 도상으로는 ‘수태고지’, ‘성령강림’, ‘최후의 심판’ 등이 있다. 도상은 심미적 기능보다 신앙심 고취를 위한 복음 전달의 기능을 했다. 당시 라틴어로 적혔던 성경은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시각 자료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종교화를 ‘이콘’이라고 한다. 중세 초기에는 본 기능에 충실한 이콘이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제작자의 의도가 개입되는 양상이 드러났고, 성인이나 교황, 왕 외에도 의뢰인의 모습이 묘사되기도 했다. 물론 석관이나 개인 무덤에서 그 주인이 등장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으나, 종교 시설과는 성격이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예수나 베드로, 마리아 등의 성경 속 인물이 종교화에 드러나는 것은 사건들을 전달하고, 이를 통해 어떠한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수태고지라는 도상은 구원자의 탄생을 기념함과 동시에 ‘순종’을 의미한다. 최후의 심판은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묘사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죄를 짓지 마라!’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종교화에 성경 밖의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교리 전달이 아닌 개인의 욕망이 투영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의도적인 각색, 즉 개인의 권력이나 봉헌자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이콘에 끼워 넣은 것이다. 이는 성스럽기보다는, 현대 건물 벽면에 기부자의 이름이 나열되어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실제로 랭스 대성당의 ‘왕의 갤러리’에서는 성경 속 인물과 주교, 왕이 함께 배치되어있다. 그런 방식으로 주교와 왕이 성인들과 같은 반열에 있음을, 즉 권력을 과시한 것이다.
파도바의 아레나 예배당이 그 예시이다. 제작자인 ‘엔리코 스크로베니(Enrico Scrovegni)’의 이름을 따 스크로베니 경당이라고도 불린다. 대개 경당은 성당에 비해 규모가 작으며, 특정 신자들을 위한 장소로 이용된다. 스크로베니가 예배당을 기획하고 신께 봉헌한 것이다. 이는 상당한 자금을 들여 제작되었고, 당대 최고의 화가로 손꼽히는 조토(Giotto)가 벽화 작업을 했다. 유독 내부가 이미지로 가득한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왜 스크로베니가 예배당을 지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고리대금업에 종사했는데, 이는 당대에 비난의 대상이었다. 재물에 대한 집착이 기독교의 7대 죄악으로 여겨지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실제로 성경에는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출 22:25)’라고 기록되어 있다. 칼뱅(Johannes Calvin)의 직업윤리 사상에서도 주어진 노동에서 근면 성실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구원의 징표라고 말한다. 이러한 금욕적인 종교관에서, 돈으로 돈을 버는 것은 죄악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 지옥에서는 그동안의 죗값으로 끔찍한 고통을 받게 된다. 스크로베니는 아버지와 가문이 했던 일을 죄라고 인식하고 있었으며, 영원한 고통이라는 형벌에서 벗어나기 위해 속죄의 형태로 예배당을 ‘봉헌’ 한 것이다. 봉헌은 자신이 가진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행위이다. 물론 속죄의 표현으로는 보통 고해성사를 떠올리지만, 초기(구약)에는 속죄제, 번제, 즉 봉헌의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신에게 무언가를 바치는 봉헌은 다른 종교나 문명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본 글에서는 그 기원과 역사를 다뤄보려고 한다.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제사는 아마 아브라함의 일화일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아들인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하신다. 그는 고민 끝에 이삭과 모리아 산으로 향하고, 제물은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에 ‘하나님께서 준비해주실 것이다’라고 답한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아브라함은 아들을 붙잡고 묶어 제단 위에 올렸다. 이에 이삭은 하나님의 뜻과 아버지의 선택을 수긍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이삭을 칼로 찌르려는 순간, 천사는 급하게 아브라함을 저지하고, 신앙심에 만족하신 하나님은 숫양을 희생 제물로 준비해주신다. 이 <이삭의 희생>은 4세기 후반 로마 카타콤 프레스코화,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의 모자이크화 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이후에도 카라바조, 렘브란트, 루벤스 등의 화가에 의해 그려졌을 만큼 자주 쓰인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아브라함은 유대교는 물론 이슬람교의 뿌리가 되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이에 대해 상세한 해석은 차이를 보이기도 하지만, 당시 불로 제물을 태우는 ‘번제’가 흔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이러한 행위는 신앙심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속죄, 대속(죄를 대신해서)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우선 성경을 살펴보자. 유대교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은 출애굽기, 즉 이집트에서 시작되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취급을 받던 히브리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해 신이 내린 열 가지의 재앙 중 마지막은 첫 아이의 죽음(장자, 남자만 취급)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도 포함이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어린양을 죽여 문설주에 그 피를 발라야 했다. 선한 존재로 인식되었던 어린양이 대속(죄를 대신)한 것이다. 이렇게 저주를 피하기 위해 다른 존재를 죽이고, 제사를 지내는 행위는 오래된 문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동양학자인 로버트슨 스미스는 처음부터 이러한 행위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유대교 또한 야만적인 과거에 기반을 두었고, 점차 진화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그는 성령 강림, 부활 등의 교의가 고대의 제물, 토템 숭배와 통한다고 보았다. ‘유대 종교에서는 점차로 주술을 대신해서 유일신을 숭배하게 되었고, 피로 얼룩진 제물 대신에 비천한 마음을 참회하게 되었으며, 신을 나타내는 동물을 살해하는 것이 자기 몸을 바쳐서 숭배하는 신앙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즉, 기독교 도상에서 드러나는 봉헌과 번제 또한 원시적인 주술의 형태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고대와 그 기원을 알아보면 현 기독교 봉헌의 원리를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프레이저에 따르면 주술에는 두 가지 핵심 원리가 있다. 첫 번째는 ‘닮은 것은 닮은 것을 낳는다’라는 유사의 법칙이다. 두 번째는 ‘이전에 접촉했던 것은 물리적으로 떨어진 후에도 상호작용을 한다’는 접촉의 법칙이다. (이 둘이 동시에 기능하는 사례는 쉽게 저주 인형을 떠올리면 될 것 같다.) 이는 과거 사냥감의 수를 늘리기 위해 유사한 모양을 만들어 제물로 바쳤던 것, 초기 제사의 형태로 연결 지을 수 있다. 인간들은 자연 현상과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원리들을 마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적인 존재를 의식하게 된다. 신이나 정령에게 제물을 바치며 그를 달래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경외심이 생겨났고, 몇 규칙들은 구체화되어 생활을 규제하게 되었다. 이렇게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신의 의사(will of God)이라고 불리며 단순하게 치부되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달래는’ 행위는 점차 종교로 이행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술사의 역할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는데, 공동체의 평안이 주술 의식에 좌우되면서 권위를 획득하기 쉬워졌다. 인간은 운명적으로 죽는다. 그 영혼은 남아있겠지만, 당시에는 인간을 닮은 신도 죽는다고 여겨졌다. 대신(신의 대리자, 왕)도 당연히 죽게 되는데, 그들에게 인간신의 쇠약은 공포였다. 자연의 운행이 그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공동체 번영의 종말과도 다름없었다. 따라서 대신이 쇠약해지면 그를 죽이고, 권위를 물려줄 수 있는 새로운 인간신을 세워야만 했다. 또한, 그는 모든 재앙과 부정적인 것들을 안고 가야 했다. 인간의 번영과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세상에 자발적으로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자신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를 찾기 시작했고, 신격을 가진 왕의 대역으로 그 아들을 선택했다. (이 부분은 <이삭의 희생>과도 연관된다.) 의식은 대부분 불에 태우는, 번제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후에는 동물이나 식물 등으로 대상이 변했으며, 축제, 행사와 같은 ‘흉내 내기’로 축약되기도 했다. 위와 같은 공동체의 경우 외에도 개인에게 닥친 재난이나 죄악을 전가하는 일도 잦았다. 속죄, 대속의 용도로 제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신, 혹은 유사한 대상이 부정적인 것들을 대신 안고 죽었기 때문에, 남은 사람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또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중세에 악마는 인간사의 질서와 평화를 방해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배제하고 추방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당시 악마는 털이나 비늘, 닭, 염소 등 동물의 형상으로 묘사되었는데, 동물이 자주 제물로 바쳐졌다는 점과 연관 지을 수 있다.
번영과 재난의 배제를 위해서 진행되었던 이러한 ‘전가’의 관습은 동양의 돌탑이나 공동체 구성원의 추방 등에서도 엿볼 수 있다. 고대의 주술, 유사의 법칙에 따른 제물 선정. 영적인 존재를 인식하며 세운 신의 대리인과 그의 죽음. 부정한 것과 재난들을 전가하는 행위. 특히 속죄하기 위하여 살생하는 야만적인 행위는 점차 외부에서 내부로, 폭력에서 비폭력적으로 변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선정된 타인에서 가족 일원으로, 소유된 가축으로, 재산이나 소유물로 말이다. 또한 피를 흘리지 않더라도, 종교적 차원으로 봉헌하거나 돌을 쌓으며 기원하고, 성지를 순례하는 등의 행위를 들 수 있다.
스크로베니는 이런 속죄의 차원으로 예배당을 봉헌했다. 더 머나먼 과거였다면 아마 자신의 가축을 번제물로 드리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지옥에서의 끔찍한 형벌을 상세하게 묘사한 조토의 <최후의 심판>에서 예수의 오른편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도, 무릎을 꿇고 있는 자세도 그의 간절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심지어 그는 유언장에 ‘모든 재산을 교회에 헌납한다’고 적었다. 사후에 아레나 예배당에 묻히고 싶어 했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죽음과 사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꽤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며, 기독교에서는 구원에 대한 열의로 이어졌다. 스크로베니의 이러한 행위를 옳다고 보아야 할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속죄하기 위한 행위임은 부정할 수 없으나, 사업가 개인의 ‘사적인 의도’에 의해 기획되었기 때문이다. 아레나 예배당은 스크로베니 경당으로 불릴 만큼 그 일화와 떼어놓을 수 없는 건축물이 되었다. 비슷한 예시로는 ‘생테티엔 성당’과 ‘생트 트리니테 성당’이 있다. 이 성당들은 윌리엄 공작이 사촌과의 결혼을 강행했던 일을 참회하기 위해 봉헌된 건물이다. 아레나 예배당, 스크로베니의 태도와 굉장히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어쩔 수 없이 ‘거액의 현금을 통해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결국 ‘물질적인 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로 이어진다. 개인의 신앙심 고취와 선행을 강조하는 기독교에서는 봉헌의 의미를 하나님께로 둔다. 받은 것의 일부를 주신 분께 돌려드린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속죄라는(사실상 구원의 문제) 개인적인 의도를 가지고 행했다면, 본래의 취지와는 조금 어긋나는 지점이다. 스크로베니가 사후에 천국으로 갔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간절함과, 이후 예배당을 찾는 신도들에게 큰 영상이 된다는 점에서는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행본>
James George Frazer, 이경덕 옮김. 『그림으로 보는 황금 가지』. 도서출판 까치, 1995
Henri Nouwen, 이미림 옮김,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우러러』, 분도출판사, 2007
<논문>
신채기(2017). “미술사를 통해 본 ‘최후의 심판’ 도상 연구 Ⅱ” 『신앙과 학문』 22(2). 115-140
이경희(2012). “로히어 판 데어 베이든의 브라크 세폭화와 중세 말 북유럽의 개인경배 문화” 『한국미술사교육학회』 97-131
손영광(2017). “아브라함의 희생제사의 종교적 전통 비교” 『한국중동학회논총』 제37권 제3호 169~186
임신호(2018). “입다의 인신제사에 대한 신명기 사가의 평가” 『장신논단』 Vol.50 No.1
<기타자료>
양정무. 「양정무 교수의 Money&Art: (8)중세시대 속죄 수단 된 미술… 고리대금업자 천당 가려 예배당 헌납」. 매일경제 오피니언, 2012.04.30., 2022.7.21. 방문 https://www.mk.co.kr/opinion/columnists/view/2012/04/261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