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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선임 Feb 10. 2022

[칼럼] 스스로를 디자이너라고 부르지 못하는 디자이너들



대기업을 다니면서 제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일 중 하나는 디자이너라고 부르면 부끄러워하는 제 동료들이었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생들에게 존경의 의미를 담아 디자이너라고 부르면 다들 손사레를 치며 고개를 가로 저었거든요. 공대를 나온 제가 보기엔 그들은 모두 명문 미술 대학을 나온 전문가들이었는데 그들이 디자이너라고 불리우길 거절한다면 누가 도대체 디자이너일까?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 시간이 흐르고 운명의 수레바퀴는 돌고 돌아 공대생인 저는 제품을 디자인하고 그 제품으로 레드닷 프로덕트를 받게 되고 정신을 차려 보니 저는 잘 알아주지 않아도 저만의 디자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20대 초반의 젊은 학생들 역시 예전의 제 동료들처럼 자신이 디자이너가 된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제가 출강하는 디자인 아카데미에서 저는 현역 직장인들은 더욱 스스로의 정체성과 자신이 하고 있는 일 그리고 디자이너라는 이름 간의 혼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그들이 왜 디자인이라는 길을 두려워하는지 그 이유를 말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그는 미술 명문 홍익대학교를 졸업한 사람이었습니다. 친동생과도 같았던 그 사람이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었습니다. '형. 그건 답이 없어요. 우리가 대학교때 밤새고 술마시면서 매번 이야기하던 주제거든요'
저는 이 질문이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훌륭한 학교를 나온 전공자가 이 중요한 질문에 답이 없다고 하는 것은 아이러니했습니다. 제가 이 질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곧 우리가 왜 디자인을 두려워하는지에 대한 답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봅시다. 디자인이 뭔지 모르면 그걸 행하는 사람도 역시 뭔지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면 왜 그들은 이 질문에 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단순한 문제입니다. 이 질문은 대답하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답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러면 대답하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답이 존재할까요? 물리학이나 수학처럼 법칙 또는 규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디자이너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관점에서 문제를 보고 모두 다른 답을 내놓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해답을 인정할 수 밖에 없고 동시에 합의점을 찾을 수 없는 문제가 된 것입니다. 저의 뿌리는 이공계이기 때문에 저는 얄짤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디자인을 보는 관점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디자인을 정의할 수 없다

디자인을 정의하기 어렵게 만드는 몇 가지 관점들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 관점은 사업과 디자인을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사업과 디자인은 가장 혼동해서 쓰이는 개념입니다. 그리고 디자인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답하기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쿠팡의 예를 들어서 생각해보면 간단합니다. 쿠팡은 매년 조 단위의 자금을 수혈받지 않으면 자생하지 못하는데요.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온라인 커머스는 미래산업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미래의 쿠팡이 큰 이익이 나길 바라면서 현재 쿠팡의 손실을 감당하는 것이죠. 이것을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장사꾼도 미래를 예측하고 행동하고 물론 디자이너도 미래를 예측하고 행동합니다만 미래를 예측하고 오로지 자본을 투입하는 행위는 디자이너가 아닌 장사꾼의 주된 방식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쿠팡에서 하는 디자인은 무엇일까요? 쿠팡 웹사이트에 올라가는 이미지를 만들거나 웹사이트 기능 개편에 맞춰 레이아웃을 정돈하는 것을 디자인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혹은 새로운 기능을 정의하기 위해 트렌드 조사하고 개발자랑 매일 회의하고 상사와 소통하는 것이 디자인일까요? 그런 일이 디자인이냐고 누군가 저에게 묻는다면 저의 대답은 "아니다. 그 회사는 전혀 디자인을 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 일은 '고도로 훈련된 인력의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딱 까놓고 이야기하면 쿠팡에서 웹사이트 이미지를 만들거나 레이아웃만들고 기획업무를 하는 것은 유튜브 보고 디자인 툴을 배우고 눈썰미만 좀 있으면 현장에서 금방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반드시 대학 나와야 할 일은 아니고 대학을 나왔다 하더라도 회사에서 필수적으로 경험을 쌓아야하는 일이라는 것을 현업에서 일을 해본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만약 경험을 쌓을 기회만 준다면 그런 일은 고졸도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들은 '디자이너'의 업무가 아닌 대기업 체제에서 분업화 된 '디자인 오퍼레이터'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 저의 이러한 괘씸한 이분법적 사고는 대체 무슨 근거로 하는 것일까요? 이해를 돕기 위해 잠깐 물리학과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물리학과를 나온다고 물리학과 졸업생을 물리학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절대로 부르지도 않거니와 행여나 그렇게 불리면 불리는 사람도 손사레를 치면서 정색을 하기 마련입니다. 벌써부터 이 글에서 처음에 언급한 디자이너들의 기억과 매우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지 않나요?


저는 제가 잘 알고 있는 물리학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디자인분야에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라이노, 블렌더, 에펙, 피그마 등 여러가지 도구들이 있는 것처럼 물리학 분야에서도 여러가지 도구들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런 도구들을 대학교에서 공들여 가르치지 않습니다. 대신 대학교에서는 그 도구들을 구성하는 기본 이론에 대한 역사를 가르칩니다. 과거의 위대한 물리학자들이 이떤 사실을 바탕으로 어떻게 자신의 이론을 정립했는가를 배우고 어떤 지식이 진리로 인정받고 어떤 지식들이 어떤 이유에서 폐기되었는지를 배웁니다. 저는 이학과 공학을 모두 경험했기에 이런 교육 체계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학과를 졸업한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것은 이것이 비단 물리학과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리학과가 가장 극단적인 예시일뿐이지 전자공학과나 컴퓨터공학과도 비슷합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문과도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분야라면 이와 유사한 교육체계를 가졌을 것으로 저는 추측합니다. 왜냐하면 오랜 시간 이어진 학문이라면 견고한 체계 없이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 분명하고 학문의 체계를 갖춘 분야라면 물리학과와 같은 교육 방식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리학과를 졸업한 학생은 도구가 아닌 원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원리에 대한 공부를 더해서 물리학자가 될 수도 있고 자신이 배운 물리학을 이용하는 개발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 여기에 어떤 물리학과 석사 졸업생이 있고 그는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는 엔지니어로 취업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리고 여기에 또 다른 사람를 상상해봅시다. 이 사람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반도체 공장에 엔지니어로 취직을 한 사람입니다. 물리학과를 나온 사람과 이 사람은 동일한 엔지니어이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다릅니다. 두 사람 모두 사내에서 비슷한 툴을 사용할 순 있지만 한 사람은 그 툴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모르고 사용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에서 물리학과를 디자인학과로, 반도체 업무를 디자인 업무로 바꾸면 간단하게 차이점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물리학과 버젼과 디자인학과 버젼의 다른 점은 디자인 고등교육을 받았음에도 고등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요. 어도비의 툴들을 사용하기 위해 대학교를 졸업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디자인 전공자들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해외 디자인 트렌드를 보고 유사하게 Look & Feel을 내는 강좌는 지금 당장이라도 유튜브에 무료로 널리고 널렸습니다. 디자인 능력만 생각한다면 대학을 나오나 안나오나 차이점은 매우 작습니다. 하지만 이력서 학력란에 들어가는 스펙의 차이는 큽니다. 저는 공대 석사임에도 불구하고 저보다 그림마저도 못그리는 디자인 전공자가 많으니까요. 자. 이제 우리 주변에 디자인으로 유명한 회사를 생각해봅시다. 네이버, 카카오, 쿠팡 그 중에 어떤 회사가 과연 디자인을 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거기서 하는 일이 과연 디자인일까요? 아니면 사업에 필요한 자잘한 일들일까요? 저는 일단 의심정도 해보는 건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제가 네이버를 퇴사하고 또는 카카오를 퇴사하고 또는 쿠팡을 퇴사하고 내 이름과 경력을 숨긴채 내 작업물로만 사용자를 만난다면 제 디자인은 어떻게 자라날 것인가요? 제 디자인을 저는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제 대답은 매우 잔인하기에 저는 답은 독자들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스스로 답을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디자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어렵게 만드는 두 번째 관점은 디자인과 기술을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을 지도하면 거의 대부분이 유사한 방식으로 다음과 같은 디자인 과제를 해옵니다. 예를 들어 한 문장으로 표현해보면 '시각장애인을 위해 촉각센서로 신호를 주는 신발을 제안합니다' 이런 식입니다. 그러면 저는 학생에서 묻습니다. 너 평소에 장애인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 너 촉각센서가 뭔지는 알고 말하는 거니? 그거 신발에 왜 달아야 하는데? 그러면 학생은 꿀먹는 벙어리가 되어 버립니다. 매 학기마다, 매 기수마다 그런 상황을 저는 반복해서 맞이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패턴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현업에서 제가 만난 사람들도 대부분 그랬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한국이 아니라 미국도 별다르지 않아요. 제가 LG 산타클라라로 미국 출장 가서 협업한 적이 있었는데요. 하버드 나온 미국 UX 디자이너도 수준이 딱 그 정도였습니다. 영어만 잘 했다면 일을 제대로 했었겠지만 출장 내내 수준 낮은 이야기를 듣느라 참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있네요. 그래요. 이런 현상이 국내에도 만연해 있는 건 100%, 미국도 다르지 않습니다.


자. 이런 사회적 현상, 특히 디자인 분야에서만 유독 심하게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계속 해서 생각을 해봅시다. 디자이너가 기술을 알아야하는 이유는 사용자를 위한 가치를 제시하기 위해 해당 도메인을 이해하는 용도이지 그 기술의 적극적인 사용자가 되기 위함이 아닙니다. 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일을 하고 있는 훌륭한 사람들이 이미 엔지니어, 개발자 등 여러 이름으로 존재하기에 디자이너가 그런 업무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디자인 오퍼레이터들이 학생일때부터 '신발에 센서 다는 식'으로 디자인을 배우기 때문에 회사 가서도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해당 도메인 지식을 곧 디자인 전문 지식이라고 연결하는 실수를 필연적으로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디자이너들이 내가 디자이너로서 이 회사에서 얼마나 많은 도메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자랑하기 바쁩니다. 사실 간단한 푸리에 트랜스폼도 풀지 못하면서 신호에 대해 이야기하고 편차의 개념도 모르면서 데이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cloudflare가 어떤 식으로 로드밸런싱을 하는지 neflix가 영상 파일을 어떻게 뿌리는지 사실 디자인과는 아무런 연관 없는 사실입니다. 사용자 데이터를 어떤 툴로 수집했고 어떻게 분석했는지 그런 것도 사실은 의미가 작은 일입니다. 그런 일들은 전부 다 개발자와 엔지니어 또는 사이언티스트, 스페셜리스트의 일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거꾸로 질문해야 합니다. 개발자와 엔지니어의 노력으로 얻어진 수많은 정보와 기술 속에서 디자이너인 당신은 무슨 가치를 만들고 있는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 입에서 나온 가시 돋힌 말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저도 그냥 제가 하는 말로 끝나는 것이면 좋겠습니다. 현업에 있는 디자인 오퍼레이터들은 아무리 현실을 부정하려고 해도 결국 제가 말한 가치에 대한 질문에 도달하게 됩니다. 직급이 올라갈 수록 '나의 기능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가?' 이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러다가 결국 많은 디자이너들이 그래도 계속 자신의 경력을 연장해서 먹고 살기 위해 디자이너가 아닌 기획자나 프로젝트 매니져로 직군을 이동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디자이너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면 자꾸만 뭐라도 내놓아야하기에, 연차가 올라갈 수록 그 부담은 더 커지기 되고 계속 안나오는거 붙들고 무속인처럼 샤머니즘하고 있는 것보다는 제품 개발 프로세스의 맨 앞 단으로 가서 기획일을 하면서 입으로 먹고 살거나 아예 제품 개발 최전선으로 뛰어 들어 직접 전투하는 일을 택하는 것이 조직 내에서 자신의 가치가 분명하게 정의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시니어 디자이너들이 어느 시점에서 보직 이동으로 경력을 연장하려 합니다. 그리고 요즘엔 전형적인 디자인 오퍼레이터들이 선택하는 한 가지 해법이 더 있습니다. 바로 사내 스타트업입니다. 개발자 몇 명과 팀을 꾸려서 나가서 뭔가 하는 것, 그런 식으로 경력을 변조하기도 합니다. 결국 뭐가 되었건 디자인 오퍼레이터들은 결국 디자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도 안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디자이너는 기술의 결과물을 이용해 사용자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찾아야만 존재 이유가 있다는 말에는 대부분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무언가가 대체 무엇일까요? 누군가는 UX 아닙니까? 그렇게 대답합니다. 물론 틀린 대답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그런 가식적인 용어는 잠시 내려놓고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날 것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LG전자에 근무할 때, 누구라고 말은 안하겠는데 암튼 사회적으로 저명하신 윗 분이 어느날 갑자기 엘지도 애플의 아이폰 같은 혁신적인 세탁기 만들어야 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그 분이 하는 말이 세탁이 다 되면 스마트폰으로 알람오고 스마트폰으로 동작시키고 그런 걸 만들라고 이야기를 했었지요. 애플처럼 세탁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애플처럼이 무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아이폰의 혁신성은 사용자가 아이폰을 만들어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경쟁자가 먼저 제시한 것도 아닌 세상에서 처음보는 제품을 사용자에게 딱 맞게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탁기라는 제품 카테고리에서 혁신성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단지 세탁이 언제 끝저는지 알려주거나 원격으로 세탁기를 동작시키는 것일까? 아닐 것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이 제품이 단지 끄고 켜는 보일러라면 원격 시동이라는 기능이 사용자 입장에서 괜찮은 솔루션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세탁 과정은 보일러와는 전혀 다릅니다. 세탁의 과정을 살펴보면 빨래를 모아서 모아진 세탁물을 세탁기로 옮겨 넣고 세탁을 실행하고 건조하고 꺼내서 잘 접어서 옷장에 넣어야 합니다. 이 과정은 제품인 세탁기가 전부 해결하지 못했고 아직 자동화되지 못한 부분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탁기가 세탁이 다 되었다고 알람 주면 어떤 혁신적 가치가 사용자에게 생길까요? 알람이라는 개념은 단순한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일입니다. 디자이너가 투입되어 알람 붙이기 위해서 무슨 일을 추가로 하는 것이 사용자에게 어떤 가치가 있단 말일까요? 이러한 디자인 업무는 의미가 뭐가 되었건 그냥 제품에 뭔가 첨단의 이미지를 부여하란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그 윗 분은 UX 분야의 거물이셨는데 그 전문가라는 분께서 그냥 세탁기를 스마트폰이랑 연동하는 기술을 포장하기 위한 그릇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디자인은 세탁이라는 사용자의 행위를 깊이 들여다보는 통찰로부터 시작합니다. 통찰이 없으면 전문가가 했건 비전문가가 했건 일단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까지 제가 자세히 설명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같은 듣보잡의 이야기보다 유명한 분들이 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항상 있습니다. 그 어떤 팩트보다도 인간 관계가 제일 중요한 사람들, 객관적인 사실보다 주관적인 감정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력보다는 관계로 어떻게든 적은 노력으로 많은 타이틀을 가지려는 분들이 은근히 많죠. 안타깝지만 그런 분들에게는 무언가 잘하는 것이 보통 의미가 없지 않나요? 오래 살아남는 것이 강한 것이라 믿는 사람들에게 지금 이런 글을 읽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제가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제 글은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으로 어디가 잘못되었는가를 고민하는 좋은 씨앗들을 위해 쓴 글입니다. 나쁜 씨앗말고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기술이라는 것은 디자이너가 사용자의 행위를 들여다보고 발견한 통찰을 실제 사용자에게 의미있는 형태로 전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사용자에게 가치가 있는 통찰이라는 건 반드시 기술로부터 시작되지 않습니다. 세탁기 예시를 보면 만약 현존하는 기술로는 세탁기에서 세탁물을 꺼내서 옷장에 넣는 행위를 구현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꼭 필요한 기능인데 그걸 구현할 기술이 없는 것이죠. 그럴 때 디자이너는 어떤 식으로든 좀 더 사용자의 행위를 현재 기술로도 가치있도록 사용자를 설득할 수 있도록 유도 설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디자이너의 기능이 있는 것이겠지요. (스마트폰 알람이라뇨 ㅜㅜ) 또는 애플이 터치나 air drop 등 여러 가지 새로운 기능을 개발한 것처럼 현재 기술의 부족한 포인트를 찾아내고 기술 혁신성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기여해야합니다. 이것이 진짜 고등 디자인을 배운 사람 즉, '디자이너가 해야 하는 두 가지 업무 형태인 제한된 기술로 경험을 창출하는 일과 기술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아무런 가치도 창출하지 못하고 회사 이름만 파는 기술만능주의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개발자가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으면 디자인 대상이 가지는 핵심 문제를 하나도 해결할 수 없는 단순 실행자 즉, 오퍼레이터들일뿐입니다. 저는 지난 10년간 이런 사람들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만났습니다.


자. 이렇게 디자인에서 사업과 첨단 기술을 떼어내면 디자인 오퍼레이터와 디자이너를 쉽게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원래 장사꾼인데 디자이너의 탈을 쓰고 있는 인간들도, 개발자 뒤에 숨어서 어깨에 힘주고 있는 디자이너도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모두 느끼고 있습니다. 모두 알고 있지만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 내가 쌓아올린 것들이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애써 모른 척하거나 실제로 자신이 하는 일이 의미가 있다고 믿는 자기합리화 과정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디자이너라고 나를 소개하지만 사실 소매상이고 사실은 영업이나 마케터이고 사실 소비자심리학과이고 경영학과이고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짭퉁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자존감을 상쇄하기 위해 디자인 중심의 회사가 아닌 잘나가는 회사, 대부분 소위 신생 대기업 IT회사들이죠. 그런 회사들에 들러 붙는 생존본능이 작용하게 됩니다. 이것은 도태되고 싶지 않고 적은 노력으로 많은 것을 이루고 싶어하는 평범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술 중심의 회사들은 어차피 디자인에는 관심도 없지만 디자이너를 써서 멋지게 보이기만하면 이득이기 때문에 그들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그런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학생이나 취준생들에게는 사업이 잘 되고 있는 회사에 근무하는 디자이너라면 뭔가 디자인을 잘 할 것 같은 환상 역시 생긴 것으로 보는 게 합당할 것입니다. (이해합니다. 요즘 20대들은 컨텐츠의 원본을 본적이 드물 수 밖에 없고 카피가 일상이 된 현재이기 때문에 원본과 카피를 구별하기 어려운 세대니까요.) 그 조직 내에 속해 있는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일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사방이 비지니스모델과 첨단 기술로 도배가 되어 있는데 디자인을 정의할 수 있을리가 없지요. 그렇다고 자신이 하는 일을 아주 낮은 단계로 스스로 끌어내려서 디자인이란 단순히 디자인 툴을 이용해서 이쁜이 작업이나 한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결국 디자인은 너무나 많은 내용이 있어서 정의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 신화가 쓰여진 것입니다. 정의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하고 싶지 않는 것이 좀 더 진실에 가까울 겁니다.


그럼 모두가 디자인 오퍼레이터 수준이냐? 그건 아닙니다. 제가 경험한 실력자들도 많아요. 그러니 업계에 당연히 잘하는 사람도 꽤 많겠죠. 그러나 그들의 상황 역시 다를 것은 없습니다. 본인이 잘하면 뭐해요. 그 안에서 디자이너의 현실은 개발자한테 넘겨줄 이미지 파일 만들고 있고 유행에 뒤떨어진 우리 상무님, 전무님 공부시킬 트렌드 리서치하고 있는 상황이 꽤 많을껄요? 또는 혼자 잘한다고 함부로 나섰다가는 십자포화를 맞는 것 밖에 미래가 기다릴 뿐입니다. 다수가 눈이 하나면 눈이 두 개인 사람이 괴물인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주변에 훌륭한 디자이너들마저도 스스로를 디이너라고 부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분명히 과거 학생 시절에 훌륭한 디자인 꿈나무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좋은 학교에서 좋은 동기, 선배들과 치열하게 디자인 공부를 했고 어렴풋이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각자의 생각이 생겼다가 회사에 와서 다 망가져버리면서 적어도 지금 내가 돈벌면서 하고 있는 일이 디자인이 아니라는 것쯤은 분명히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왜곡이 없는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봅시다



강형욱훈련사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보면 대부분 개의 문제는 사실 견주의 문제입니다. 견주가 인간이 덜 되서 생기는 문제가 강아지로 나타나는 것이 그 프로그램의 패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오은영 박사님의 금쪽 상담소를 보아도 동일한 패턴입니다. 상담을 요청한 출연자들에 대한 해법의 대부분은 잘못된 부모 또는 비뚤어진 어린 시절에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디자인도 동일합니다. 기술만능주의 무능 디자이너의 시작 역시 그들의 선생님 그리고 그들의 학창시절에 기인할 것입니다. 저 역시 현재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수많은 기술만능주의 디자이너의 새싹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제가 최대한 그 싹을 잘라내고 새로운 씨앗을 심기 위해 노력하지만 참 어려운 일입니다. 신기하게도 지금 대학생들이 하는 디자인 주제를 보면 대부분 대상이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20대 초반의 아름다운 시기를 사는 친구들이 왜 그들이 하는 고민, 사랑, 진로, 학업, 현실에 대한 디자인은 하지 않고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주제에 대해 디자인할까?하는 의문을 매번 가지게 됩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원인은 그냥 성적을 잘 받기 위해 뭔가 불편함이 많을 것 같은 사람들을 습관적으로 타겟팅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사실 이것은 매우 악한 습성의 발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육은 이런 악습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동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을 단지 취업을 위한 마중물로 여기고 디자인 과정을 단순한 일처리로 보는 성향을 간직한채로 디자인을 하게되면 그것이 바로 사용자 공감 능력이 없는 사용자 경험 디자이너, 바로 소시오패스 디자이너의 탄생이 됩니다. 스스로 선이라고 믿는 평범하고 강력한 악의 탄생입니다. 그리고 이 소시오패스 디자이너는 자신의 삶에 대한 평가를 마치 대학 성적처럼 이유를 생각하지 않고 단지 평가를 잘 받기 위해 행동히게 되고 계속 디자인이 아닌 엉뚱한 일을 하면서도 디자이너로서 명성을 얻길 바라겠지요. 그래서 그런 소시오패스 디자이너들은 최신 기술을 찬양하고 그 기술 뒤에 붙어서 살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최신 기술을 이용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을 이용해 여기 저리로 이직하며 여러 조직을 오염시키고 그 과정을 나보다 약자의 위치에 있는 학생이나 작은 에이전시에 다니는 디자인 꿈나무들에게 컨텐츠로 팔아치우며 마치 전염병처럼 퍼뜨리게 됩니다. 최종장에는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사업으로 포장하기 위해 디자인의 본질적인 정의를 사람들이 아예 보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되겠죠.

결국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혹시 영화 인셉션을 보았나요? (못봤다면 꼭 보았으면 합니다. 디자인은 못해도 좋은데 인셉션은 보라고 저는 학생들에게 권합니다.) 영화에서 누군가의 꿈속에 들어가 마음에 생각의 싹을 심는 기술을 인셉션이라고 부릅니다. 디자인이란 것은 인셉션과 유사한 일입니다. 결국 디자인이란 타인에 삶에 공감하는 방식을 설계하고 제안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먹고 살기 위해 그 당연하고 쉬운 것들을 하지 않고 개발자 이미지 만드는 일이나 하고 있거나 새벽배송 이런 서비스나 기획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만약 당신이 디자이너라면 1분만 생각해봅시다. 내가 장보러 갈 수 없으니 누군가는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배송을 해야한다라는 서비스가 가당키나 할까요? 혹시나 정말 혹시나 당신이 이 질문에 어차피 잠 못자는 대신에 돈받으니까 공정한거 아냐?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강추위에 폭설이 내리는데 심야에 꼭 야식 먹어야겠다고 배달 오라고 진상 부리는 소시오패스와 다를 것이 없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상스럽기 그지 없는 새벽배송의 최후는 그 아이디어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며칠 걸리는 일반 배송보다 다음날 새벽에 도착하는 새벽배송의 매력은 시간이기 때문에 새벽배송은 더 빠른 당장 배송에 질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기업들은 일단 새벽배송부터 하려고 할 것이고 나중에는 어떻게든 새벽배송보다 빠른 배송을 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이 글을 쓰고 1년이 흘러 그것은 사실이 되었습니다) 아니면 더 싸게 하겠지요. 이건 바보도 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 새벽 배송과 같은 아이디어는 생각 자체가 훌륭한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을 실현하는 것은 어려운 종류의 일입니다. 지금까지 제 이야기에 모두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이런 일을 실현 시키는 것이 디자인 능력은 아닌 사업적 능력이라는 사실에 반대하긴 어려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디자이너가 이 새벽배송이라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한다면 기여해야 하는 부분은 배달하는 사람도, 바빠서 장을 볼 시간이 없는 사람도 인간다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야 제대로 동작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또 "아니 그런 일을 디자이너가 어떻게 해?!!"라고 반응하는 현실주의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디자이너는 현실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랬다면 아이폰도 나오지 못했겠지요. 진짜 필요한 일은 어려우니까 못하고 일단 가능한거나 하자는 사람은 저 위에 언급한 세탁기 예시의 UX전문가(라고 쓰고 소시오패스 디자이너라고 읽는다)가 있네요. 이런 상황을 학교로 가지고 오면 디자인학과 학생들이 학점 잘 받기 위해 관심없는 주제를 끼워맞추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100% 오퍼레이터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퍼레이터는 잘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잘 못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러니 걱정말고 오퍼레이터 일을 하면 됩니다.

디자인의 본질 전달하기 위해 저는 학생들에게 타인에 삶에 공감하는 방식과 그것을 설계하는 방식을 매우 중요하게 가르칩니다. 애초에 타인의 삶에 공감하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그 공감을 설계하는 것은 한 번 더 어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래서 디자인은 매번 성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여햐 합니다. 크리스 뱅글과 같은 유명 디자이너도 자동차하다가 가구나 가전으로 분야를 바꾸면 결과가 신통치 못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디자인 교과서에 나오는 디자이너들도 평생에 걸쳐 한 가지 스타일을 완성시킨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디자인이 항상 좋은 결과를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저는 디자이너가 아닌 오퍼레이터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디자인은 돈을 넣으면 딱 돈을 넣은 만큼 기름이 나오는 주유소가 아닙니다. 오히려 디자인은 슬롯머신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아주 작은 출력을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입력을 넣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디자이너는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이지 쉬운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쉬운 일은 대학에서 굳이 가르칠 일도 아니고 학생들이 사회 나가서 디자이너로서 활약할 일도 아닙니다. 물론 사회에서는 새내기 디자이너들에게 타인에 대한 배려, 공감따위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쉬운 기술적인 일들을 주겠지만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내가 계속 디자인을 할 수 있는건 아니란걸 알아야만 합니다. 언젠가 회사를 나와서도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오퍼레이팅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에 진정 공감하는 방식을 배워야만 힙니다. 그리고 그런 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지식이 아닌 나의 디자인에 대한 정의가 스스로 확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글싼이: 하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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