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상은 없다
호상(好喪)이라는 역설적인 말을 빌릴까 하다가, 남의 죽음 대신 나 자신의 모습을 역설하려고 나들이라 해보았다.
내 가족, 내 친구의 장례가 아니라고 해서 장례식장에 조문 가는 것을 나들이라고 해도 될까.
친한 직원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왔다.
여기저기서 통곡하는 소리가 가슴을 후벼 파고 귓속을 저리게 만든다.
슬픔, 간절함, 고통, 절실함 그 모든 것이 담긴 울음.
로비에서 조문 오는 다른 직원들을 기다리고 있자니, 이제 상을 다 치르고 상복을 벗고 떠나는 사람들이 보인다.
- 이제 가자. 잘했다.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남편이 날씨도 따뜻한 이 봄날에 나른한 낮잠 자러 누웠다가 조용히 잠결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 큰아버지, 고생 많으셨어요.
- 그래, 다들 고생 많았다.
자식들도 손주들도 얼굴에 함박꽃이 피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아마도 바라신 모습이겠다.
슬피 우는 것은 하루, 이틀이면 족하다. 그만 울어라.
멀리 떨어져 살아 얼굴도 자주 못 보고 사는 가족들 며칠 동안 같이 먹고 자고 손님들 치르면서 몸 부대끼고 서로 챙겨주며 얼마나 많은 마음들을 나누었을까.
그래, 이런 장례식장에 와서 십여 년 만에 지인들 친구들 얼굴도 보고 밥 한그릇 잘 나누어 먹고 그랬다면, 그래, 장례식장 나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