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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희 Nov 10. 2023

이 나이에 새내기라니

서울예술대학교 극작과 늦깍이 신입생

 


뭔가 부끄러운 합격통지서




 준비하지 못한 채로 어쩌면 거만(?)하게 시험을 치렀고, 준비는 바짝 했지만 엉망으로 면접을 봤고, 결국은 붙었다. 사실 지금 다니는 학교도 나쁘진 않다 생각해서 그냥저냥 다니고 있었다. 이 학교도 사실은 심심한데 실기 시험이나 볼까? 했다가 덜컥 붙어버려서 다니게 된 게 웃기긴 하다. 물론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몇몇 있었다만, 현실적으로 나이도 나이인데다가 이 나이에 '입시 준비'도 그냥 웃겨서 처음엔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원서 접수 시기가 다가오니 갑자기 어릴 때부터 늘 가고 싶었던 1지망 학교 서울예대가 생각났다. 그래서 그냥 원서 접수를 해버렸다. 접수는 워낙에 쉬우니까. 뭐, 레벨 테스트하는 것처럼 최대한 편하게 보고 오자- 라는 생각으로 접수를 했다.


 실기장에 도착하니 실기를 보기 전, 완성작들을 허겁지겁 보는 친구들을 많이 봤다. 학원에서 준 것 같은 원고지에 쓴 각자의 글씨들을 열심히 보려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나는 실기 준비를 거의 하지 못했다. 해서 볼 완성작들도 없었다. 워낙 지금 다니는 학교가 바쁘기도 했고, 나름 나이가 있다 보니 정말 일단 내 실력을 믿자는 생각으로 갔으니 말이다. 아, 그 대신 하루 이틀 전엔 기출 시제들을 보며 혼자 꽁트를 짜보고 다른 합격 후기들을 찾아보았다. 그것들을 보니 대략 서울예대가 어떤 작품을 좋아하는지 감이 왔다고 해야 할까? 그 뒤 실기 시험을 치렀고, 시간이 30분 정도 남아 멍을 때리고 수정을 했다. 쓴 뒤엔 "이거 됐다" 싶었는데 그 뒤부턴 더럽게 못 쓴 것 같아 잠을 못잤다. 그런데, 어쩌다 1차가 붙었다. 그렇게 '어쩌다' 2차 면접을 보러 갔다.




처음 간 서울예대 안산캠퍼스




 서울예대는 극악의 난이도인 만큼 오히려 19살, '현역' 친구들이 합격되는 경우가 적다고 들었는데 그 말이 사실인 듯 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분들도 몇몇 계셨고, 외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할 예정일 친구들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떨렸다. 나는 말을 좀 잘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는데, 면접 시간이 고작 5분이니 정말 어버버하게 되더라. 나이도 24살에다 나름 외향적일 땐 외향적인 편이라 맘을 편하게 먹었는데, 첫 질문 답부터 절었다. 그런데 질문은 많이 하셨다. 그게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쉽게도 면접은 그리 잘 보지도, 그리 못 보지도, 정말 나쁘지 않게 보는 선에서 그쳤다.


  그 뒤부터 불안감이 상승했다. 막상 2차가 붙으니, 이거 안 붙으면 미치게 아쉬울 것 같은 거다. 서울예술대학교는 또 내가 중학생 글 썼을 때부터 늘 워너비 학교로 삼았었는데 면접, 그것도 2:1 경쟁률에서 엎어지면 매우 억울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발표 난 오늘도 그랬다. 잠도 못자서 어제 수면유도제도 먹고... 진짜 웃긴다. 왜냐하면 막상 난 19살 때 뭔지 모를 홍대병인지 "대학교 난 별 생각 없눈뎅" 하면서 입시 준비를 하지 않았으니. 학생 때 나는 공부도 하지 않고, 그냥 매일 책만 읽는 애였다. 그때 글을 보면 못 쓴 건 아니다. 나름 블로그에 혼자 쓴 소설이 대박 나서 댓글이 몇 백 개 달리기도 했었지만, 그게 철저히 입시 글의 성격은 아니었다. 사회 비판도 있어야 하고 적절한 시의성도 필요한 글이 아니라, 그때 내 글은 철저히 1차원적인 재미에서 그친 느낌이었다. 그때는 문창과밖에 몰라서 서울예대 문창과를 지원했는데 잘 되지 않았음에도 별로 아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문창과 입시를 1년 준비했는데 준비하면 할 수록 슬럼프가 왔고 이쪽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은은한 분위기? 어떤 잔잔한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 글? 왜 이렇게 써야 하는 거지, 가식적인 것 같다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그때 극작과가 있었단 걸 알았다면 극작과 입시를 열심히 준비했을 텐데, 그건 좀 아쉽다.


 오히려 24살의 나이에 새내기 생활을 시작한 게 다행이라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하나 확실한 건, 세상을 그나마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고 일상 자그마한 것에서 무언가를 읽기 시작한 지금에서야 서울예대에 합격했다는 것. 이게 참 중요한 것 같다. 관찰력을 높여서 일상의 작은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기. 뉴스를 보며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우리 사회의 어떤 부분이 저 사람을 탄생하게 했을까?" 사색해보기. 이게 정말 내 글 솜씨를 높이게 해준 가장 큰 요인 같다.




 



 결론은, 그래서 24학번이 됐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서울예대! 신입생!으로 말이다. 나름 자랑을 하자면, 올해 서울예대 극작과 수시는 24:1의 경쟁률이었다. 나는 내신도 낮은 편이다. 다시 말하지만, 난 공부는 안 하고 책만 읽었던 애였으니까. 그런데 그때 그렇게 책만 읽었던 게 다른 의미로 도움을 준 듯하다. 결국 내가 원하는 학교에 들어왔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웹소설 작가도 되었으니 말이다. 합격했다고 다가 아니다. 올 겨울엔 계약 작품 하나를 집필해 출간해야 한다. 그 뒤엔 바로 개강, 과제에 휩싸이겠지. 게다가 통학도 2시간 걸리니 앞으로 진짜 힘들 거다. 그래도 이제 시작이라 믿고 싶다. 


 나는 20대 초반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딴짓만 했다. 그렇게 22살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방황하다 23살 웹소설을 출간하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고, 그 뒤부터 뭔가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오늘은 기분이 매우 좋은 날이다. 해서, 작은 기록을 남겨 본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행복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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