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 고린도전서 13장
늦여름 가을바람이
불어오던 날이었다
여름 같은 가을비가 내렸다
성당 중등부 교리실에서 교리를 마치고
그룹토의를 하던 시간이었다
대학생들이 고1이었던 우리 그룹토의 반의 단장으로
고등부교리반에 봉사자로 들어와서 우리들과 함께 성경공부의 멘토가 되어 주었다
오늘의 주제는 고린도전서 13장 1절~ 13절
을 읽고 글내용을 묵상하고 10명으로 그룹 지어 순서대로 자기의 생활에 비추어 체험담을 돌아가며 짧게 묵상하고 나누는 시간이었다
"사랑"이라는 주제로 각자의 생각을 끌어내는
묵상 나눔 시간이었다
나는 내 순서가 돌아오자 '예수님의 사랑의 위대성'
에 대하여 뭐가 뭔지 잘 몰라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머뭇거리다가 발표 시간을 넘기고 그냥 자리에 앉았다
그룹토의가 끝나고 성가가 아닌 대학생들의 통기타 반주로 양희은의 노래를 부르며 헤어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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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차가운 네 눈물에
얼어붙은 내 발자욱
돌아서는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대신에 안녕, 안녕,
목 메인
그 한마디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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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얼굴이 창백하고 조용하기만 했던
남학생 한 명 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통기타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따라 부르며 나를 향하여 메모쪽지를"툭" 던지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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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 loved with a love
that was more than love "
ㅡ Annabel Lee ㅡ
by Edgar Allan Poe
ㅡㅡ1849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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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져주는 메모지를 읽는 순간 얼굴이 붉어지며 당황스러웠다 열일곱 나이에는 너무나 낯선 단어였었지만
지금까지 내 마음속에 오래 간직하고 있는 문장이다
ㅡ애드가 알렘포우의 시 ㅡ
" 애너밸 리"였다
서툴고 웃기게 얌전하기만 했던 그 남학생이 다가와서 '씩' 웃으며 그 학생도 성경 속의 사랑을 다 이해하지 못 한 듯 발표를 하지 못했다며 글로 남긴다는 쪽지였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 동안 성당에 나오지 않았다
여름방학 내내 입시공부 하느라 힘들었는지
성당 도서관 에어컨바람을 처음 쐬어봐서인지
몸이 아파서 학교를 결석하고 주일미사를 자주 빠졌다
"몸이 약해서 괜찮을런지 모르겠다 걱정이야"
성당 신자들 사이에서 이미 소문이 많이 나 있던 상태였던 그 학생은 할머니의 기도가 없었으면
" 아마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런지도 몰라"
'할머니의 기도로 살아가는 아이'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가끔 창백한 얼굴로 성당 주일은 꼭
지키려고 노력한다며 고등부 학생들 중 친했던 학생으로부터
고등부교리실로 연락이 왔다
"가을수학여행을 이번에는 꼭 가고 싶다"
라고 하며 장끼자랑시간에
사람들 앞에서 "애너밸리를 소리 내어 멋진
시낭송을 하고 싶어 한다"라고 전해 왔다
세월이 흘러
대학생이 되었다
그 아이는 성당에서 보이지 않았다
대대로 내려오는 믿음이 좋은 독실한 가톨신자가정
에서 태어나서 집안 모두가 신앙생활이 남달랐다고 한다
할머니는 손주를 위하여 매일 묵주기도를 하신다고 하셨다
성당에서 이미 소문이 많이 난 가족이었다
비 오는 날을 유난히도 좋아했던 그 아이는
수도원으로 갔다
신부님의 길로 갔을 그 학생의 세례명은 내가 기억하기로 '안드레아'였다
아마도 어디선가 훌륭한 사제가 되어
조용한 약자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기도하고 실천하며
살아가실 거라는 생각이
어렴풋 스쳐 지나간다
비 오는 날에 만나는
애너벨 리 보다 더 큰 사랑을 하며
영적으로 숭고하고
아름다운 수도원 생활을 해 낼 것으로
믿으며,
조용히 기도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