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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쓰홀릭 Jun 24. 2023

일 년을 반으로 접으면...

소소한 에세이 두 번째 과제 - 유월

  오월이 가정의 달이라면 유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일 년 중 열두 달에 모두 어떤 주제가 붙어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뇌 교육의 결과로 내 머릿속에는 그렇게 저장되어 있다. 현충일도 있고, 6·25 도 있고, 2002년 연평해전까지 6월 29일이었으니 호국 보훈의 달 유월은 어쩐지 조금 무겁고 슬픈 느낌이 든다. 사실 이런 정보가 머릿속에 저장되기 전, 유년기의 유월은 ‘내 생일이 있는 달!’ 그래서 신나는 달이기만 했다. 부모님께서는 늘 말씀하셨다. 나는 6월 30일 밤 11시 58분에 으앙~ 하고 3.8kg의 우량아로 태어났다고. 그래서 2분만 늦었으면 7월 1일이 내 생일이었을 거라고.


  학창 시절 친구들과의 우정을 증명하는 가장 크고 중요한 이벤트는 뭐니 뭐니 해도 생일파티가 아닐까? 그런데 생일이 1,2월인 친구들은 항상 1년 동안 다른 생일을 다 챙겨주고 자기 생일은 겨울방학이라며 불만이 많았다. 3,4월이 생일인 친구들은 학기 초라 서로 서먹한 데다 작년 친구들이 다른 반에서까지 찾아와 축하해 주기도 애매하다며 나름대로 불만이 있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생일을 알려줄 때 “뭐? 유월 삼십일일? 삼십일?”이라고 되묻는 경우가 가끔 있다는 것 빼고는 딱히 불만이 없었다. 6월 말이면 새로이 친해진 친구들과 한창 재미있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별 것 아닌 일에도 깔깔거릴 때이고, 전년도에 같은 반이었다가 헤어진 친구들과는 적당한 거리감이 생겨서 아직도 왕래하는 찐친만 몇 명 추려진 때라고 볼 수 있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이때가 딱 기말고사 기간이라 친구들이 고요한 아침 자습 시간에 찾아와 서프라이즈로 파티를 해주거나, 시험공부를 하다가 독서실 휴게공간에서 케이크를 나눠 먹던 기억이 난다. 시험이 곧 끝났기 때문에 개운한 마음으로 햄버거집이나 노래방을 다니며 생일파티도 꽤나 시끌벅적하게 했었다. 같은 날짜인데도 대학생이 되고 나서 보니 항상 종강을 한 뒤여서 여름 엠티를 가서 동아리 선후배들과 놀기도 하고, 고향에 내려가서 옛 친구들과 뭉쳐서 동창회를 겸하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서 부모님과 함께 외식을 하기도 했다.


  20대의 나는 지인들에게 내 생일을 잊어버리지 못하게 하는 나만의 스토리를 하나 생각해 냈는데 그건 바로 ‘1년을 반으로 접으면 딱 중간인 날’이라는 것. 12개월 중 가운데 두 달은 6월과 7월인데 나는 6월의 마지막 날이자 7월 1일로 넘어가기 직전인 자정에 가깝게 태어났으니 정말로 거의 중간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참치캔이나 스팸 등 보존 기한이 꽤 긴 걸로 유명한 장기 저장 식품들의 유통기한을 살펴보면 –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 ‘20XX.06.30까지’인 제품이 매우 많다. 나 혼자 생각하기로는 06.30 또는 12.31 이렇게 두 가지 로만 유통기한을 찍어내는 제품군이 있는 것 같았는데, 요즘 살펴보니 근거 없는 믿음이었다. 하지만 생일이 임박할수록 점점 더 내 생일이 찍힌 제품이 많이 보이니 세상이 온통 나의 생일을 알려주는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착각 속에 지내곤 했었다.  20대 때에는 우연히 얻어걸린 그런 제품들을 먹지 않고 아껴두었다가 새로 알게 된 친구에게 어느 날 갑자기 건네며 “이거 내 생일이야, 이 날 같이 먹을까?” 하는 식으로 일종의 - 요즘 말로 - '플러팅'을 하기도 했었는데... 정작 생일날 그것을 함께 먹었는지 어땠는지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들은 대부분 술에 취해서인지 내 말이 웃겨서인지 암튼 재미있어하며 그 제품들을 소중하게 받아갔다.


  요즈음 나는 06.30 유통기한이 찍힌 제품을 보면 개봉하기 전에 혼자 씩 웃어버리고 만다. 딸아이가 조금 더 크면 이거 엄마 생일인데 옛날에 친구들한테 써먹곤 했다고 말해주려나. 어쩌다 뉴스에서 연평해전 유가족의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같은 순간에 그들과 또래였던 나는 시청 앞 광장에 앉아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대! 한민국!”을 외치고 있었는데. 그리고 40여 년 전 에어컨도 흔하지 않던 시절, 그 무더운 6월의 여름에 만삭이었던 우리 엄마가 얼마나 더웠을까? 세 살 터울 언니도 키우면서, 워킹맘으로 매일 버스 타고 출퇴근하면서. 한 해가 절반쯤 지났음을 알리는 유월. 이제 막 무더위가 시작되고 장미가 한창 흐드러진 유월. 누군가에게는 슬프고 또 누군가에게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그런 유월이다.


  올해 유월의 마지막날에 나는 내 생일을 기억하는 소중한 가족들과 맛있는 저녁을 먹어야겠다. 그것이 내가 한 해의 절반을 마무리 짓는 방식이자 나머지 절반을 준비하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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