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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쓰홀릭 Dec 18. 2023

나와 자전거의 역사(3)

소소한 에세이 다섯 번째 과제

  편한 복장을 갖추고 마실 물을 챙겨 약속 장소에 가보니, 참가자들의 연령대가 생각보다 아주 높았다. 겨우 서른에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 내가 부끄러워질 만큼 5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자전거 보관소에서 거대한 두 발자전거를 한 대씩 끌어내어 중랑천까지 몰고 내려가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강사님의 간단한 소개를 들은 뒤, 뒷바퀴의 거치대(더블킥스탠드)로 자전거를 고정시킨 채 헬스장의 실내자전거처럼 페달 밟는 방법부터 배우고 연습했다. 생각보다 발의 위치나 방향을 올바르게 놓는 것이 까다로웠다. 안전 운전을 위한 여러 가지 수신호도 배우고, 좌우 브레이크의 차이점 및 바른 사용법, 올바른 방향으로 타고 내리는 법 등을 세세하게 익히며 몇 주간 성실하게 참여했다. ‘도대체 언제쯤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거야?’ 하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들 때쯤 드디어 뒷바퀴의 거치대를 풀고, 앞서 배운 대로 페달을 힘차게 밟아보았다. 조금 비틀거리긴 했지만 다른 분들보다 빠르게 자전거 타기에 성공한 나는 어느새 ‘노원구 성인 자전거 교실’의 에이스가 되어있었다. 5회 차인 마지막 날에는 강사님의 지도 아래 일렬로 맞추어 중랑천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어미 오리를 따라가는 아기 오리가 된 나는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이 무척 상쾌하게 느껴졌다. 이 좋은 걸 나만 몰랐다니... 자전거 때문에 속상했던 기억들이 그 상쾌한 바람에 실려 멀리멀리 날아가버렸다.  

    

  교육을 수료한 뒤에는 내 자전거가 한 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중고나라를 통해 저렴한 자전거를 구매했다. 야심 차게 혼자 중랑천에 끌고 나갔다가 쌩쌩 지나다니는 빠른 라이더들에게 주눅 들어 금방 돌아오기를 수 차례... 결국 결혼과 출산으로 몇 번 타보지도 못하고 처분한 비운의 자전거가 되긴 했지만, 잠시나마 내 자전거를 가져보았기에 어린 시절의 서운함은 해소되었다. 그리고 내 아이들이 6세, 4세가 되던 재작년 봄에 어린이날 선물로 자전거를 한 대씩 사주었다. 둘 곳이 마땅치 않아도 꼭 두 대를 사주고 싶었다. 엄마는 어릴 때 자전거를 못 배워서 어른이 되고서야 타게 된 이야기를 해주자 안쓰러운 표정을 짓던 딸아이에게 “그 대신 엄마는 이모보다 인라인을 잘 타. 스케이트, 스키, 스노보드, 수상스키도 다 탈 수 있어”라고 하니 곰곰이 생각하던 아이가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럼 엄마가 더 좋은 거네!”

     

  자전거 그까짓 것 못 타도 상관없다고 살아온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사실은 누구보다도 잘 타고 싶었던 건 바로 자전거였다. 자전거를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된 나는 그것을 대신할 만한 다른 것들을 배우며 대체품을 찾으려 했고, 그것이 어쩌면 어린 시절의 나를 위로하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자전거 실력은 초보 중의 초보이지만,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각자 자전거 한 대씩 몰고 안양천 한 바퀴 도는 것을 일상처럼 여기게 될 것이다. 그때는 꼭 오리 가족처럼 한 줄로 나란히 속도를 맞춰서 달려야지! 남편은 맨 앞에서 전방을 주시하며, 나는 맨 뒤에서 아이들의 안전을 살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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