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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쓰홀릭 Dec 25. 2023

화이트크리스마스(1)

소소한 에세이 과제 ‘날씨’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영화표가 공짜!
화이트크리스마스에는 아이스크림이 1+1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24시간 내내 통화료가 0원!



  한때 이 같은 마케팅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지 말 지가 전 국민의 관심사였던 것 같다.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에는 특별히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이름까지 붙여져 있으니 어쩌면 오래전부터 전 세계인의 관심사였는지도 모른다. 연말이 되면 ‘White Christmas'라는 로맨틱한 팝송까지 거리 곳곳에 울려 퍼지니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한다.


  내 고향 부산에는 화이트크리스마스는 고사하고 겨울 내내 눈 내리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다. 어쩌다 진눈깨비가 휘날려도 부산 어린이들 눈에는 함박눈처럼 보였고, 바닥에 닿자마자 녹아 사라지기 때문에 눈이 쌓인 모습은 TV를 통해서나 볼 수 있는 상상 속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미술 시간에 겨울 풍경을 그리라고 하면 꼭 동그란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아이들은 눈사람을 만드는 즐거운 모습을 그리고는 했었다. 실제로 그렇게 놀아 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마치 바닷속 해저 도시를 그리는 것처럼 그저 상상의 세계였을 뿐인데 그것을 상상화라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내 인생에는 눈 내리는 풍경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지내던 어느 날의 일이다. 고등학교 2학년말 겨울 방학을 맞이한 우리들에게는 ’다음 수능은 내 차례다‘라는 무거운 마음의 짐이 있었기 때문에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부터 학교에 나가 자율학습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창밖을 보고 "눈이다!"라고 외쳤지만 처음에는 선뜻 믿으려 하지 않았다. 밖을 내다보니 정말로 상상 속의 풍경처럼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자율학습 시간에는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았고, 매점에라도 가다가 걸리는 날에는 발각되는 즉시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모두 한마음이 되어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운동장으로 뛰쳐나갔다. 실내화를 갈아 신지도 않고 치마 밑에 체육복 바지를 껴입고 말이다. 평소였으면 ‘등짝스매싱’ 감이다. 드라마에서 보던 눈썰매는커녕 포대자루 비슷한 것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책상 옆에 걸어두고 쓰던 튼튼한 비닐봉지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넓은 것들을 최대한 크게 펼쳐서 엉덩이 밑에 깔고 썰매처럼 타고 놀았다. 황령산 중턱에 있는 학교여서 교문과 본관 건물 사이에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있었다. 등굣길에는 언제나 올라오기 버겁던 그 비탈길이 썰매를 타기에는 어찌나 안성맞춤이었는지! 교무실에 계시던 선생님들도 창문 밖으로 내다보시거나 밖으로 나와 우리가 노는 모습을 구경하셨다.

  당시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그때 찍힌 영상들이 인스타그램 릴스 등으로 번지지 않았을까?  제목은 ‘태어나서 눈을 처음 본 부산 모여고생들' - 몇 만 뷰가 달성되고, ‘유퀴즈’에 초대되고, 핫초코 광고에 섭외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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