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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쓰홀릭 Jan 21. 2024

천국행 티켓(2)

소소한 에세이 과제 '내가 잘한 일'

  해가 바뀌고 음력으로 설을 맞이하여 고향인 부산에 내려갔다. 그때는 결혼도 하기 전이어서 부산에 가면 가족과 식사하는 하루저녁 빼고는 전날도 마지막날도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스케줄을 채우던 나였다. 서울에서 동창회 하던 느낌도 좋았고 해서 부산에서 쭉 토박이로 직장생활까지 하고 있는 친구들 중 제일 ‘인싸’급인 몇 명에게 명절 인사도 할 겸 연락하면서 설날 다음날 저녁에 시간 되는 사람 다 모이자! 했더니 그날 모인 인원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어쩌면 홈경기의 뜨거움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서울에서는 각자 자기 직장 근처로 터전을 잡고 사느라 막차 끊길까 봐 정신줄 잡고 노는 편이었다면, 부산 친구들은 다 근처에서 살고 있으니 세상 두려울 것 없는 뜨거운 청춘들이었다. 그렇다고 자기들끼리도 자주 모인 건 아니었고 다 몇 명씩 친하게 지내기만 했지 이렇게 크게 모인 건 처음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친구들이 ‘홍선생이 왜 모이자고 했는지’ 궁금하다며 나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동창회를 두 번 하게 된 이야기와 네이버밴드를 만들었으니 다들 가입해 달라는 이야기, 앞으로 더 번창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 정도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네이버 밴드 멤버가 50명이 되어있고 며칠 사이 80명, 100명 나중에는 200명까지 늘어났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부지런히 글을 쓰는 친구들이 있었고, 졸업앨범을 뒤져서 서로의 과거를 캐기도 하고 그사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탈퇴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판만 깔아놓고 팔짱 끼고 있었는데, 부산에서 추진력 있는 친구들 몇 명이 회장도 뽑고 총무도 뽑고 회칙도 만들고 회비까지 걷게 되면서 - 약간의 분란이 있기는 했었지만 아무튼 - 몇 년 간은 서로의 경조사에 화환도 보내고 봉투도 보내며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어른들의 동창회를 흉내 내는 듯한 시기를 지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초반 2년 간의 시기에 추억도 가장 많았다. 기장으로 1박 2일간 떠났던 두 번의 여름엠티가 단연 최고였다. 바다가 코 앞에 있는 민박집을 숙소로 잡아서 정말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이 튜브 타고 놀고, 파도 속에 던져지고, 밤에는 고기 구워 먹고, 밤새 술 마시고, 다음날 아침에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났다. 밤사이 집 가까운 친구들은 귀가했고, 남은 몇 명이 함께 방 정리도 하고 해장국도 사 먹었다. 두 해에 걸쳐 그러는 와중에 때마침 불타는 청춘이었던 동창들 사이에서는 서로 눈이 맞아서 엠티 이후로 진지한 만남을 이어간 경우가 왕왕 있었던 모양이다. 그중 한 커플은 초등학교 동창 중 2호 부부로 – 1호는 동창회 이전에 이미 결혼함 – 현재 초등학생 딸을 키우며 우리의 어린 시절 추억이 가득한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 그다음 3호 부부가 바로 태오네 아빠 엄마인 김 모 군과 황 모 양이다. 엠티가 끝나고 아직 기차 탑승까지 시간이 남아서 나랑 둘이 광안리 카페에 넋을 놓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김 군이 황 양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엠티는 너무 재미 었는데 집에 오니 너무 외롭다고. 지금 어디냐고! 같이 밀면 먹고 부산역에 태워다 줄게!’ 했는데, 나는 눈치도 없이 거기 껴서 밀면도 얻어먹고 아이스크림까지 함께 사 먹었다. 그 둘이 그렇게 커플이 되어 장거리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할 줄을 그때는 전혀 몰랐다. 돌이켜보니 처음에 이런 모임을 만들어보라고 했던 사람이 황 양인데, 그녀의 큰 그림 속에 결혼까지 있었던 걸까? 더 재밌는 것은 두 사람과 나는 모두 4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는 점이다. 김 군은 키 작은 개구쟁이였고, 황 양은 키 큰 왕언니 스타일이어서인지 서로를 전혀 몰랐다고 한다. 소풍 가서 찍은 단체 사진 속 우리 셋을 보면 인연의 신기함을 새삼 느낀다. (참, 그리고 엠티에서 만난 건 아니지만 따로 또 동창 소모임을 갖다가 결혼하게 된 4호 부부가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동창회가 한창 활기를 띄던 그때, 우리들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로 넘어가던 중이었고 대부분 미혼이었다. 일찌감치 결혼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동창회에 그다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다. 그때는 ‘왜 그러냐 그냥 재밌게 놀다 가면 되는 건데’라고 생각했는데, 동창회에서 서로 마음이 맞아 결혼까지 골인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유부녀가 된 지금의 마음으로는 배우자를 동창회에 내보내고 싶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요즘 각종 연애프로그램들이 대 유행하는 가운데 온갖 콘셉트들이 새롭게 탄생하더니만 결국 중학교 동창생들끼리의 연애프로그램도 나온다는 예고편을 보고 문득 그때 그 시절 우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들의 동창회는 3년간의 정회원비 수납과 각종 경조사 및 엠티비 정산으로 일단락되고 그 후로 별다른 행사나 소식이 없이 조용하다. 그때 활발히 활동했던 회원들 대부분이 지금은 각자의 가정에서 충실하게 배우자 노릇을 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지금의 이런 모습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된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아이들도 웬만큼 자라서 다시 동창회를 하게 되는 날이 올까? 우리가 60대, 70대가 되면 지금 우리 부모님들이 그러시는 것처럼 우리도 똑같은 모자를 맞춰 쓰고 울릉도로 여행 가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세 커플 이상을 맺어주면 천국에 간다고 누가 그랬던가? 나는 원래도 워낙에 아는 사람이 많고 인연을 맺어주는 걸 좋아해서 네 커플 정도는 직간접적으로 부부로 엮어준 이력이 있는데 거기에 이 동창회까지 더하면 천국에 두 번은 갈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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