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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쓰홀릭 Jan 26. 2024

나의 아름다운 장롱면허 탈출기(1)

소소한 에세이 자유주제

"드드드득 – 끼이이이익"   


  왠지 불길한 느낌에 자동차 보조석의 창문을 내리자, 아파트 화단에 심어놓은 조경용 나뭇가지들이 차 안으로 우수수 들어온다. 나뭇가지에 긁힌 모양이다. 운전면허를 딴 지는 한참이지만 규칙적으로 주 1회 정도 동네 근처 마트를 왕복 운전하기 시작한 지는 채 서너 달이 되지 않던 어느 날 저녁, 문래도서관에서 하는 에세이 수업에 여느 때처럼 마을버스를 타고 가려는 나에게 남편은 운전을 권했다. 비도 오고 시간도 빠듯한데 온 동네 뺑뺑 도는 마을버스 타고 언제 갔다 올 거냐는 거였다. "아니야, 나는 마을버스가 편해요." 하고 나왔지만 어플을 켜보니 방금 버스를 놓친 모양인지 다음 버스가 15분은 지나야 온다고 했다.


  '그래! 처음으로 저녁 운전도 해 보는 거야!' 문래도서관까지 가는 길은 내비게이션으로 찍어보니 어렵지도 않아 보였다. 마지막 수업에 한 번 운전을 해서 가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조심조심 차를 몰아가서 도서관 주차장에 무사히 주차를 했다. 신이 나서 남편에게 셀카 인증사진도 보낸 날이었다. 하지만  9시가 넘어 기분 좋게 집에 돌아와 보니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다. 웬만하면 잘 들어가지 않는 지하주차장까지 기어들어가서 두 바퀴나 돌았지만 빈자리가 없었다. 정말 자리가 없을 때 마지막 보루로 사용하는 상가 뒤 주차장을 노리고  지상으로 되돌아 나왔다. 상가 주차장에 막 들어가려는데, 우회전하는 각도가 너무 작았던 걸까? 화단 언저리에서 덜컥하고 경계석에 올라서는가 싶더니만 등골이 오싹해지는 굉음을 들은 것이다. 그렇게 요령 없이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헤매는 사이 운 좋게 자리가 하나 생겨서 간신히 주차를 해내고, 어둠 속에 차를 살펴보니 별다른 흔적은 없어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랬다. 하지만 며칠 뒤, 퇴근하던 남편의 눈에 발각된 스크레치는 생각보다 깊고 컸다. CCTV를 뒤져서 범인을 찾아내자는 말에, "미안해요"라고 먼저 말했다. 그날 이런저런 일이 있었는데 그때 긁힌 것 같다고, 화단에 있는 조경석의 툭 튀어나온 부분과 마침 그 높이도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해서 사진까지 찍어 보냈지만 남편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큰 충격을 모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민망하고 미안했지만, 사람이 안 다쳤으니 다행 아니냐,  다른 차를 긁지 않았으니 다행 아니냐, 새 차가  아니라 또 더욱 다행이지 않느냐며 뻔뻔스럽게 응수했다.


  요즘은 조금 다르겠지만, 20여 년 전에는 수능을 앞둔 학생들의 공통적인 버킷리스트가 있었다. 그것은 휴대폰 사기, 귀 뚫기, 염색하기, 운전면허증 따기 등이었다. 마지막 하나를 제외하고는 요즘 학생들에게 이미 자유롭게 허용되는 것이기에... 생각해 보니 갑작스럽게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당시에도 오늘날에도 그러한 버킷리스트들이 상징하는 것은 아마도 공통적으로는 ‘자유’가 아닐는지. 수능을 보자마자 휴대폰도 개통하고 귀도 뚫고 밝은 색으로 염색까지  한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느라 바빠 부산에서 운전면허증을 미처 따지 못하고 상경하였다.  알음알음 소개받아 시작된 세 개의 과외, 관심사가 많아 두 개나 가입한 동아리에서의 신입 생 생활로 공사다망 바쁜 와중에도 아직 이루지 못한 ‘운전면허증 따기’에 대한 아쉬움은 내  마음 구석에 찝찝하게 남아있었다. 과외를 그만둘 수 없어 집에도 못 가고 대학 친구와 함께 작은 방을 얻어 2학년 여름방학을 보내기로 한 나는 더 이상 미루면 영영 못 딸 것 같아서, 신도림 운전면허학원에 큰돈을 지불하고 ‘2종 오토’ 면허증을 따기 위한 과정에 덜컥 등록했다. 가뜩이나 바쁜 스케줄에 서울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길고도 긴 하루의 동선을 소화하고 있었는데, 거기다 오후에 신도림까지 들르려니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필기시험은 가뿐하게  통과했지만, 장내기능시험은 쉽지 않았다. 선생님께서 알려주시는 몇 가지 요령과 공식을 외워 간신히 합격하고, 마지막으로 도로주행까지 마친 나는 곧바로 자가용이라도 사서 운전을 하게 될 줄로 생각했는데 그것은 대단히 큰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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