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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쓰홀릭 Feb 03. 2024

나의 아름다운 장롱면허 탈출기(2)

소소한 에세이 자유주제


  기숙사 생활을 할 때도 그렇고, 첫 직장 근처에 작은 오피스텔을 얻어서 지냈던 사회 초년생 시절도 그랬고, 지하철과 버스 노선이 촘촘하게 발달한 서울에서는 자가용의 필요성을 크게 느낄 수 없었다. 면허를 따고 10년이 훌쩍 지나 결혼을 하고서야, 이른바 '장롱면허'를 탈출하고자 신랑과 함께 동네에서 도로주행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보통의 부부는 운전연습을 하며 싸우곤 한다는데 우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엑셀,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오, 너무 잘하는데? 더 연습 안 해도 되겠는데? 방금 골목에 있는 차를 거의 스칠 뻔한 거 알지?  간격 정말 절묘했어! 오우 대박!”을 연발하며 칭찬인지 놀림인지 모를 애매한 말을 쏟아내는 신랑 덕분에 언제나 기분 좋게 그리고 ‘짧은 시간에’ 운전 연습은 마무리되었다.


  아기를 낳고 카시트에 태우고 나니 아기의 컨디션에 신경이 쓰여 더더욱 혼자 운전을 해 볼 기회가 없어졌다. 너는 하면 잘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까 더 이상 연습 할 필요가 없다 - 는 남편의 말만 믿고, 그렇게 나는 운전면허증을 다시 장롱 속으로 - 아니 정확히는 화장대 서랍 속으로 고이 집어넣었다.  둘째까지 낳고 그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니, 남편이 바쁜 일로 집을 비울 때 나 혼자서도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든 훌쩍 외출하고 싶을 때가 생겼는데 그때마다 장롱면허는 내 발목을 잡았다. 운전을 못 해 아쉬워하는 나에게 사람들은 저마다 조언을 해주었다. ‘매일 같은 길을 반복적으로 다녀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내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내 차’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운전을 시작하게 될 것이고 금방 늘 것이라고 말이다.


  마침 올해 초, 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적응을 위한 6개월 간의 육아휴직을 하면서 그런 기회가 생겼다. 아이가 배우고 싶어 하는 ‘발레’ 수업이 방과 후 교실에서 인원수 부족으로 폐강되어버린 것이다. 복직하면  라이딩도 못해줄 테니 6개월이라도 실컷 엄마 노릇을 해야겠다고 맘먹고, 집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의 큰 마트 옆에 있는 발레학원에 등록을 해주었다. 처음에는 발레복을 입혀 버스로 다녀왔는데, 오며 가며 걷는 거리도 꽤 있고 비라도 오는 날에는 불편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침 ‘따릉이’로 출퇴근을 시작한 남편 덕에 ‘내 차'는 아니지만 '노는 차’가 생긴 나는 기회를 놓칠세라 운전대를 잡기 시작했다. 내비게이션을 미리 찍어보고 가는 길을 머릿속에 상상해서 집어넣고, 신호를 봐가며 살살 운전해 보니 긴장은 되었지만 꽤 해 볼 만했다. 처음에는 난이도가 있는 학원 건물을 피해, 학원 바로 옆에 있는 큰 마트의 주차장을 이용했다. 1시간의 발레 레슨 시간 동안 5만 원만 채우자며 마트에서 장을 보았는데 30분도 안되어 금방 10만 원을 넘기는 큰 손(?) 덕분에 주차비를 지불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여름쯤에는 딸아이가 뒤에서 말을 걸어도 짜증스럽지 않게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9월 복직부터 다시 시작된 출퇴근길에도 운전은 필수이다. 그동안은 집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걸어 다녔지만, 복직을 하면서는 대중교통으로 넉넉잡아 1시간이 걸리는 곳에 발령을 받게 되었다. 승용차로는 네비상 20여분 밖에 걸리지 않으니 지금이 그야말로 ‘자차 운전이 대중교통보다 훨씬 효율적인 상황’인 것이다. 물론, 네비상으로는 20분이지만 천천히 가고 타이밍을 놓쳐 길을 잘못 들고 신호에 자꾸 걸리다 보면 30분은 잡고 가야 한다. 처음에는 최소한의 좌회전과 우회전을 할 수 있는 길로 돌아서 갔지만, 요즘은 과감하게 좌회전 우회전 및 차선 변경을 하며 최소한의 시간, 즉 내비게이션에서 처음 예측해 줬던 도착시간에 딱 맞춰 목적지에 도착하며 "안내를 종료합니다" 소리에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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