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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쓰홀릭 Feb 21. 2024

특별한 간장계란밥

소소한 에세이 과제 '추억의 음식'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아는 그 이름 ‘간장계란밥’. 더러는 계란알레르기가 있거나 계란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도 있지만 다행히 우리 집 아이들은 모두 계란을 좋아하기 때문에 여태 키우면서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먹였을 법한 메뉴이다.

  냉장고에 딱히 먹을 것이 없는데 새로 장 봐서 요리하기는 귀찮고 마침 남편도 회식이라 저녁을 먹고 온다고 하는 날! 이 정도 삼박자가 맞을 때 아이들에게 “간장계란밥 먹을 사람?”하고 물어보면 싫다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는 어쩌다 한 번 있는 이런 날을 위해 평소에는 조금 귀찮아도 ‘간장계란밥’을 참는 편이다.

  널리 알려진 레시피 대로 하면 버터를 녹여서 ‘버터간장계란밥’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나는 주로 참기름을 몇 방울 추가하거나 김가루를 뿌리거나 전날 먹다 남은 치킨 조각을 올려주는 등의 변주를 주는 것을 좋아한다. 계란을 프라이 대신 스크램블로 하고 마요네즈도 조금 뿌리고 앞서 말한 ‘어제의’ 치킨 조각을 올리면 한솥도시락의 치킨마요덮밥과 크게 다르지 않아 아이들의 ‘엄지 척’을 받을 수 있다. 치킨 대신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자투리 스팸을 조금 올려주면 스팸마요덮밥이 되고, 평범한 간장 대신 장조림 국물이나 연근조림 국물을 쪼르륵 부어주면 풍미가 더욱 좋아지는 ‘간장계란밥’. 아이를 키우지 않았어도 한국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맛. 생각하면 군침 도는 그 맛.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영양까지 꽤나 훌륭하기에 야채를 조금 곁들인다면 한 끼 식사로 부족함이 없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간장계란밥은 지금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국민학교까지 한 시간이 넘게 산길을 걸어 다녔다는 깡촌 출신 우리 아버지의 고향집은 마치 요즘 아이들의 전래동화책에 나오는 초가집 같았다. 지붕도 그렇고, 황토 흙으로 만들어져 부스러질 것 같은 벽과 시원한 대청마루, 창호지를 바른 격자무늬의 나무문도 모두 민속촌에서 볼 수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밤새 온돌방에 불을 지펴 매트리스처럼 두꺼운 솜이불을 뚫고 올라오는 열기는 마치 화상을 입을 것처럼 뜨거웠지만 이불 밖에 내어 놓은 코 끝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공기와 조화롭게 어우러져 하룻밤 푹 자고 일어나면 개운하기 그지없었다. 친구들이 명절에 다녀온다는 시골집도 다 그런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할머니가 나뭇가지로 아궁이에 불을 지펴 가마솥에 지어주시는 밥도 신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할머니가 만들어주시는 간장계란밥의 특별함은 바로 그 ‘가마솥밥’에서부터 시작된다. 뜨거운 흰쌀밥 가운데를 숟가락으로 파서 빈 공간을 만들면, 할머니가 닭장에서 꺼내오신 ‘방금 막 낳은 날달걀’을 깨서 넣어주신다. 다시 뜨거운 밥으로 살살 덮고 밥공기의 뚜껑을 닫은 채 3분 정도 기다리면 세상에서 제일 신선한 달걀이 살짝, 아주 살짝 익어있는데 거기에 할머니표 간장과 참기름을 적당량 넣고 ‘촵촵’ 비비면 날달걀의 비릿함은 전혀 느낄 수 없는 꼬숩고도 짭짤한 노오란 간장계란밥이 완성된다. 할머니가 내어주신 매운 시골 김치와 짠지를 조금 얹어 먹어도 맛있고, 생김에 돌돌 말아 싸 먹어도 그만이었던 ‘시골 간장계란밥’. 그것은 어쩌면 시골 반찬이 도시에서 자란 손녀들 입맛에 안 맞을까 봐 염려하셨을 할머니의 특별 메뉴였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흔하게 먹을 수 있는 ‘간장계란밥’이지만, 전기압력밥솥으로 지은 밥에 마트에서 사 온 달걀, 그리고 대기업에서 만든 계란밥용 맛간장을 사용하는 나는 그 신선한 맛을 흉내 낼 수도 없어 아쉽다. 같은 이름, 다른 신선함을 가진 시골 할머니표 간장계란밥이 그리울 때면 프라이를 할 때 반숙으로 익혀 덜 익은 노른자 정도만 톡 터뜨려 비벼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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