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08 지혜는 전달되지 않는다.
나는 얼마나 많은 어리석음과 악덕, 얼마나 많은 오류와 환멸과 비참함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그러나 그것이 바로 제대로 난 길이었다. 절망을 체험하고, 심지어 자살을 생각할 정도의 구렁텅이에 떨어져야만 자비를 알 수 있었고, 다시 올바로 깨어날 수 있었으며, 내 안의 아트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죄를 저질렀기에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고, 바보가 되었기에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로의 길이 꼬불꼬불하든 순환하든, 나는 그 길을 걸어야만 한다.
일단 걷다 보면 깨달음은 온다
삶은 당장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걷다 보면 깨달음은 찾아온다.
환희의 순간도, 고통의 순간도 모두 지나간다. 결국 천국과 지옥은 다르지 않다.
교만은 악을 불러오지만, 그 악조차 필요한 과정이었다.
타락과 귀환, 속세와 수도
탐욕에 빠진 싯다르타는 내게 거울 같았다. 그러나 그는 결국 다시 수도자의 길로 돌아갔다.
속세의 삶과 수도의 삶은 상반되어 보인다. 하지만 속세를 경험하지 않은 수도는 단단해질 수 없다.
싯다르타는 방황을 부정하지 않는다. 불완전한 과거가 지워지면
지금의 '가장 좋은 자신'만 남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모습일 뿐이다.
방황했던 나 또한 내 안에 살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방황하는 타인을 만났을 때
진심을 내보일 수 있다. 나와 타인을 구분 짓지 않는 것, 그것이 지혜다.
지혜는 전달되지 않는다
한 인간은 오직 한 가지 모습만 보고, 한 가지만 인지한다. 그러나 내 안에는 수많은 내가 공존한다.
정진하는 나, 이성을 추구하는 나, 탐욕에 빠진 나, 후회하는 나, 초연한 나, 만물을 사랑하는 나.
싯다르타는 이 모든 나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지혜는 남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체험하여 얻는 것이다.
“구한다는 것은 목표를 세우는 것이지만, 찾아낸다는 것은 자유롭게 열려 있는 상태다.”
“지식은 전달할 수 있으나, 지혜는 전달할 수 없다.”
모든 진리는 역설적이다
『싯다르타』는 말한다.
모든 경험은 필요하며, 타락조차 귀환을 위한 과정이다.
모든 진리는 그 반대도 또한 진리다.
“무엇인가 될 수 있다”가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이라는 메시지.
헤세의 『싯다르타』는 삶의 모순과 방황, 타락과 귀환,
그리고 내 안의 수많은 나를 받아들이는 이야기다.
결국 삶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다.
그저 걷다 보면,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갖춘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니체 – 아모르 파티(Amor Fati)
“나는 더 이상 상황이 달라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 삶이다. 나는 그것을 사랑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