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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by 혜윰


어느덧 12월이다. 시간의 질주는 늘 나를 초조하게 만든다. 열심히 산다고 살아온 것 같은데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낸 듯한 감정에 빠진다.


분주한 평일을 보내고 주말에는 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휴식을 취하지만 쉬는 게 아니라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는 죄책감이 몰려온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끝내야 하고. 나를 기다리는 일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에 불안함이 파도친다.


왜 항상 쫓기는 기분이 들까. 무엇이 나를 초조하게 만들까.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에서 발화한 불안감에 마음이 휩쓸려 들어갈 때 나를 소용돌이에서 꺼내주는 책을 만났다.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는 마라.
(60쪽)


“우리를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끼게 하고 외로움과 두려움을 부르는 생각들은 내려놓는 순간 힘을 잃습니다. (…) 가장 내려놓기 어려운 생각이 결국엔 우리에게 가장 해로운 생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들여다보길 바랍니다.”
(124쪽)



삶의 수많은 고통이 자기 자신의 생각 때문에 발생한다면서, 날뛰는 생각에서 한 발짝 멀어지라고 저자는 권한다.


저자는 상당히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었다.


취업 3년 만인 스물여섯 살에 다국적 기업의 임원으로 지명된다. 하지만 과감하게 사직서를 내고 태국의 숲속 승려가 된다. 태국과 영국에서 17년간 수행의 길을 걷다가 돌연 속세로 돌아온다. 그리곤 1년 6개월 동안 우울증과 불안에 시달린다. 17년간 배우고 익힌 명상으로 마침내 불안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선다. 사람들에게 명상을 가르치고 결혼해서 속세에 정착한다.


그가 바로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이다. 나티코는‘지혜가 자라는 자’라는 뜻의 법명이다. 57세에 루게릭병을 진단받고 투병하면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철학을 담은 단 한 권의 책을 집필한다. 그 책이 바로 나를 소용돌이에서 건진 『나도 틀릴 수 있습니다』이다.



나는 늘 생각이 너무 많다.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예측하고 불안해하며 정작 나아갈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상대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혹여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기면, 내가 한 행동을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상대의 행동이 이런 의미에서 나온 걸까. 불필요한 추측과 오해로 전전긍긍한다. 그런 내게 저자는 17년 동안 수행에 매진한 결과물로 얻은 초능력을 알려준다. 바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다 믿지 않는 것이다.


나를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드는 근거 없는 생각들에 내몰려 그동안 나 자신을 힘들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틀릴 수도 있고 내가 다 알지도 못하는 그런 생각들에 빠져서 말이다.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맺는 관계 중에서 단 하나만이 진정으로 평생 이어집니다. 바로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입니다.”
(223쪽)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무작정 믿으며 나와의 귀한 관계를 너무 소홀히 했다. 나 자신에게 좀 더 연민과 온정을 가진, 다정하고 온화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그가 온기 어린 목소리로 조언한다.


세상은 우리의 모습으로서 존재한다, 그러니 그 안에서 보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두드렸다. 그래, 내가 먼저 나에게 다정할 필요가 있다. 내가 변화함으로써 내 주위가, 세상이 바뀐다는 평범한 진리가 다시금 나를 일깨운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세 번의 주문이 마법처럼 모든 갈등을 단번에 해소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나 자신을 괴롭히는 생각에서는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더 겸손하고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고요해지는 걸 느꼈다. 나티코가 솔직하면서도 위트 넘치고 감성이 뛰어나면서 다정한 사람이라는 게 문체에 여실히 드러났다. 어쩌면 그가 전하고자 한 건 대단한 지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그의 삶을 통해 꾸밈없이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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