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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으로 Apr 27. 2022

4월 26일의 꽃, 논냉이

'불타는 애정'이라는 꽃말

 생소하기도 익숙하기도 한 꽃 이름입니다. 냉이는 익숙하고 논냉이는 생소합니다. 제가 아는 냉이는 먹는 나물 냉이와 절화 그린 소재로 많이 쓰이는 냉이초뿐이었는데 또 하나의 냉이가 제 세계에 들어왔네요.

< 꽃다발 등 플라워 작업에 많이 쓰이는 냉이초입니다. >

 청순하기 그지없는 냉이초를 떠올리며 갑자기 '불타는 애정'? 하며 꽃말과의 연관성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물론 오늘의 꽃은 논냉이지만요. 논냉이라고 다를 것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작고 깨끗하며 청순한 얼굴을 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냉이에 관련된 설화를 들으면 논냉이의 꽃말이 왜 '불타는 애정'인지 수긍하실 수도 있습니다. 왕실의 공주와 거지 총각의 사랑이야기거든요. 사랑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전장에 나간 거지 총각을 기다리는 18년간의 열정, 그리고 재회하여 다시금 애정을 나누고 행복하게 여생을 살아가는 스토리입니다. 초록창에 검색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지난 주말에 아침부터 밤까지 영화 세 편을 보았습니다. '올드'를 보고 남자 주인공인 '알렉스 울프'의 매력이 빠져 '유전'을 보고 유전 감독인 '아리 애스터'에 빠져 '미드 소마'까지 보았답니다. 개인적으로 재밌었던 영화는 '올드', 완벽했던 영화는 '유전', 장악당한 영화는 '미드 소마'입니다. 세 영화 모두 너무 훌륭하여 모두 추천하고, 꼽을 수 없지만 꼭 하나만 보라고 꼽으라면 저는 '미드 소마'를 꼽겠습니다. 이렇게까지 신선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신선한 영화가 되겠습니다. 여운도 길고 기이하게 잔상이 오래갑니다.

 '아리 애스터'의 영화 '유전'과 '미드 소마'에는 모두 '불'이라는 소재가 중요한 메타포로 등장합니다. 소멸, 상실, 해갈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불에 타면 존재가 사라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불타는 애정'은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는 불타는 애정의 순간. ENFP인 저는 불타는 애정의 순간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감정적인 여자거든요. 하하. 하지만 평생 불타는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닌 성향 차이인 것 같습니다. 한 번쯤 불타올라보고 싶다는 것은 그만큼 치열하게 누군가를 사랑해보고 싶다는 갈망 때문이겠지요. 오롯이 상대에게 휩싸여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그 애정의 순간들이 꽤 강렬하니까요.

 그런데 불타고나면 어떻게 될까요? 모든 것은, 불연성인 물체를 제외하면요. 불에 타고 나면 사라집니다. 연기가 되어 날아가고 형체를 잃고 재가 됩니다. 활활 타올랐던 만큼 큰 상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죠. 불탔던 애정 후에는 어떤 형태의 재가 쌓여 있을까요? 빠알간 불이 타올랐던 자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채도가 낮은 회색의 재가, 미움 혹은 무관심의 형태로 남아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하고픈 말은, 꼭 불타오르는 애정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말입니다. 뭉근하게 미적지근하게 가도 괜찮습니다. 천천히 간다고 해서 상실과 소멸이 없진 않겠습니다만 불타올랐던 만큼의 커다란 허탈감은 없으리라 예상됩니다. 하지만 상실감 또한 성숙하기 위해 꼭 느끼고 경험해야 하는 감정이기도 하지요. 그러니 불타올라도 되고 그렇지 않아도 됩니다. 애정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것이 반드시 열정적으로 빛나지 않아도 숯이 머금은 열기처럼 잔잔히 가더라도 여전히 사랑은 사랑이니까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변하는 물처럼 그저 사랑의 모양이 다른 것뿐입니다. 불타올라보지 못했다고 해서 진정한 사랑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그냥 자신의 마음 모양에 맞춰 사랑을 합시다. 그거면 충분하다구요. '논냉이'에겐 미안하지만 말이죠.


< 만개한 논냉이, 어린순은 식용으로 사용된다고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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