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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으로 Nov 29. 2022

직면하기

창피함에 맞서는 것

 매년 같은 일을 해도 매년 세부 절차를 까먹는 것처럼(학교 일이 그렇다.) 반복해서 보아도 그 창피함과 부끄러움에 맞서기는 매번 불편하다. 나를 직면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오늘 점심을 먹는데 옆에 앉은 선생님께서 그러신다. 자기 자신에 대해 누군가 아는 것이 너무 싫다고. 할 수만 있다면 죽을 때까지 나 자신을 숨기고 살고 싶다고. 그럴 수 있다. 그것은 자유고 선택의 문제이다. 다만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던 이유는 그 선생님이 마음의 병을 앓을 때 나타나는 증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왜 힘들고 왜 아픈지 수도 없이 나 자신에게 직면했던 나로서는 그게 참으로 쉬운 일이고 창피하거나 부끄럽지 않지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꽤나 불편할 수 있는 일이다. 

 이전에 직면이 어려웠던 이유는 나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의 평가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켜켜이 지내온 세월을 돌아보면 의외로 타인은 나에 대해 평가하지 않는다. 온정 어린 마음으로 그러한 것은 아니고 그냥 관심이 없을 뿐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직면을 통해 얻는 것은 타인의 매정한 평가가 아닌 자아의 자립이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내 자아의 한 모서리를 만지고 명명하며 두려움에 맞서 마침내 자립의 새순이 자라난다. 

 이렇게 직면한다고 해서 드라마틱하게 무엇이 바뀌진 않는다. 그냥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그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되려 속 시원한 것이다. 책임을 나로부터 상황, 혹은 처지로 전가할 수도 있다. 어느 정도의 책임 전가는 정신건강에 매우 도움이 된다. 

 세상 모든 일에는 내 책임만 있지 않다.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내가 직면하기 싫은 나의 모습도 내가 오롯이 혼자만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혼자 그 무게를 견딜 것이 아니라 직면을 통해 나를 이해하는 순간 그 짐의 무게도 한층 덜어질 것이다. 내 탓 만은 아니니까. 내 탓만은 아닌걸? 나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나를 사랑하는 것이 참 힘든 일이다. 나의 구린면을 보고도 사랑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나르시시즘 혹은 높은 자존감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냥 단순하게 '이런 구린면이 있지만 그것도 나인걸, 그리고 내 탓도 아닌걸, 어쩔 수 없잖아. 이것도 난데.' 하고 생각해버리면 또 모른다. 이러한 과정이 나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일 수도. 

 캐주얼하게 오늘도 웃어넘기는 직면의 시간.


 '아,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르지? 구리다. 근데 그게 게으른 게 아니라 항상 무엇을 하지 않으면 나쁜 것이라고 배워온 탓이야. 내가 마냥 게으른 것만은 아냐. 지금도 봐.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걸? 물론 오늘은 쓰기 싫었어. 하지만 게으른 자아가 싫어서 억지로라도 쓰고 있는 거야. 억지로라도 썼다고 잘한 건 아니야. 그냥... 난 내가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거지, 진짜 게으른 게 아니야. 나를 게으름 인식의 늪으로 빠져들게 했던 과거의 성장과정과 상황, 처지, 세상아 싸우자. 게으르지 않다면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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