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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flow Dec 11. 2024

나의 아름다운 정원

한 번만이라도 그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선생님, 저는 언제쯤 공부를 잘하게 될까요?"
복사실에서 복사를 하고 있는데, S가 갑자기 던진 한마디였다. 화장실에 가던 길에 나를 보고 들어왔는지, 약간 머뭇거리며 건넨 질문이었다. 뜻밖이었다. 나는 잠시 멈칫하다가, “S가 지금도 많이 노력하고 있다는 거 알아.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잖아. 꾸준히 몇 년만 열심히 해보자.”라는 다소 평범한 대답을 건넸다. 내 말에 해맑게 알겠다고 웃으며 사라지는 S의 뒷모습을 보며, 그 질문은 내내 마음에 남았다.

심윤경의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읽으며 나는 S를 떠올렸다. 공부에도 재능이 있다면, S는 그 재능이 부족한 편에 속한다. 중학생이지만 초등 과정을 해야 할 만큼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순수하고 성실하다. 소설 속 동구 역시 그랬다. 동구는 난독증이 있고 의사소통이 서툴다. 열 살이라는 천진난만한 모습과는 달리 속이 깊고 어른스럽다. 특히 동생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은 때로는 의젓하게, 때로는 천진하게 그려지며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소설은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정원'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의 무게에 지치지 않기 위해 만든 은밀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동구를 통해 이 정원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어떻게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지를 섬세하고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책을 덮으며 다시금 S의 질문이 떠올랐다. 어두운 무대 뒤편에서 쪼그리고 있는 동구를, 생각이 깊고 마음이 넓은 아이라고 다독이며 무대 위로 이끌어주는 박영은 선생님. 동구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주는 박 선생님 덕분에 웃음과 용기를 되찾는다. 나는 과연 S에게, 동구에게 박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작은 희망의 씨앗 하나라도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일까. 이 소설은 나에게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을 돌아보게 하고  아이들의 마음속에 남길 수 있는 정원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했다.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1979년부터 1981년까지의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순수하면서도 예민한 동구의 시선을 통해 삶의 상처와 회복을 담담히 그려낸다. 동구의 눈으로 본 세상은 때로는 시리도록 아름답고, 때로는 잔인하다. 그럼에도 그는 그 안에서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독자는 그의 여정을 응원하며, 그가 정원을 가꾸듯 자신만의 희망을 키워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동구의 정원은 단순히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그 시대를 살아낸 모든 이들의 염원과 치유의 공간이다. 세상의 무게에 지친 이들에게 이 책은 조용히 속삭인다.
“당신의 정원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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