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이 좋은 이유1
집 근처에 빈티지 숍이 생겼다. 이전에는 어떤 무뚝뚝한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정말 촌스럽고 칙칙한 커튼집이었는데 역시나 장사가 안된 모양인지 문을 닫고 그 자리에 Angmas라는 빈티지숍이 생겼다. Angmass의 뜻을 주인에게 물어보았더니 프랑스어로 "대거로, 한꺼번에"를 뜻하는 En Masse를 덴마크어식으로 발성한 것을 그대로 쓴 것이란다. 모든지 갖다 놓고 판다 이거다. 주인의 안목이 남 달라 갖다 놓는 물건들이 꽤 괜찮고 가격대도 코펜하겐의 다른 빈티지 숍에 비해 꽤 괜찮아서 그런지 동네 사람들이 항상 분빈다. 지나가던 사람도 한 번 들르게 만들 정도로 외부 진열모습도 감각 있다. 물건이 빨리 빠져서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빨리 결정해야지 우물쭈물하다가는 기회를 놓친다. 마음에 둔 물건을 놓친 경험을 이미 한 두 차례 했다.
코펜하겐에 살면서 느낀 것은, 새컨핸드 그리고 빈티지에 대한 코펜하게너들의 남다른 애착이다. 코펜하겐에 플리마켓 문화가 크게 자리 잡힌 것도 그 이유이다. 코펜하겐 뇌어브로 (Nørrebro)의 어느 한 건물에 "한 사람의 쓰레기는 다른 사람의 보물이 될 수 있다 (one man's trash (is) another man's treaure"는 문구가 말해주듯이. 코펜하겐을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물건을 귀하게 여기는 이 정신이다. 새것보다는 오래되어 보이는 것이 멋스럽다. 유럽이 전반적으로 고풍스럽고 멋진 것은 이 오래된 느낌 때문이다. (한국처럼) 오래됐다고 무조건 뜯어고치거나 헐지 않고 웬만하면 그대로 두고 필요할 경우에만 조금씩 개조하는 문화이다. 물론 여기에서 오는 불편함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사는 코펜하겐 뇌어브로 어느 지역의 오래된 1900년대 초 아파트들. 멋지지만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높은 층에 살기를 원하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특히 여행이 잦아 여행가방을 자주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면. 그리고 장 보는 것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래도 절대로 엘리베이터 설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도 항의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오래되고 옛스러운 아파트 안을 헐어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 옛것에 가치를 두는 것은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구석에 묻어난다.
이런 의식을 가진 코펜하게너들이 좋다. 그래서 나는 코펜하겐이 좋다.
Angmas (Jagtvej, 2200 Copenhagen)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에 있는 유명한 수퍼킬렌 (Superkilen) 공원을 지나가다가 지난주까지만 해도 한창 만발했었던 분홍 꽃들이 떨어진 모습이 너무 예뻐서 자전거에서 내려 사진을 찍었다.
Superkilen (Nørrebrogade, 2200 Copenhagen)
코펜하겐과 나는 첫눈에 반한 사이가 아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냄비처럼 금방 끓어올랐다 식지 않고 서서히 오는 건가보다.
지난 2년 반 동안 코펜하겐에 살면서 나는 서서히 코펜하겐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이 매거진을 빌어 코펜하겐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하나씩 써 내려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