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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by the Water May 24. 2024

하늘에서 받은 캐슈넛 서비스

그리고 메시지

아카식 레코드를 발견하고 나서부터 나는 나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일,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주변에서 관찰되는 모든 것들을 그냥 넘기지 않고 한 번씩 되새겨보고 의미를 찾는 습관이 생겼다.  우주의 메시지는 이런 식으로 전달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제 일어난 일이다.  코펜하겐 - 제네바행 늦은 오후 SAS 비행기 안.  


하루 종일 짐을 싸느라 점심을 대충 때워서 비행기를 타자마자 배가 매우 고팠다.   비행기 스낵메뉴를 보며 눈독을 들이고 있는데 남편이 자제를 하라고 옆에서 그랬다. 곧 도착하면 시어머님께서 손수 차리신 저녁을 먹어야 하지 않겠냐며.  그래도 설득당하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이 그다음에 덧붙인 말에는 설득당했다.  “속을 좀 비워줘야 몸이 지방을 분해하지.”  요즘 간식을 입에 달고 살면서 몸무게가 1-2 키로 늘은 걸 남편이 눈치챈 모양이다.  이 말까지 듣고는 순간 정신이 차려지면서 식욕을 참았다.


그러고 나서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서 화장실이 있는 비행기 끝으로 갔다.  비행기 뒤편에는 승무원 3-4명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를 본 남자 승무원이 화장실에 지금 누가 있다고 조금 기다리라고 그랬다.  30대 초중반의 남자 승무원이었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 남자 승무원이 나보고 갑자기 “where are you from?” 그랬다.  유럽 항공편에서 승무원에게 내 국적 질문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다.  


"I'm from South Korea."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남자 승무원은 한국말로 언어를 바꾸고 아주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자랑했다.  정말 놀랐다.  나보다 한국말을 더 잘했다.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요즘 젊은 사람들 표현까지 사용했다.  한국에서 얼마나 살았냐고 물었더니 2년 살았단다.  그 2년 동안 공부하고 일하면서 한국어를 완전 마스터한 것이다.  너무 놀라웠다.


그러는 사이에 화장실이 비워졌다. "아 이제 화장실 들어가셔도 돼요."  "아, 네..."


화장실에서 나왔는데 거기 계속 있어서 몇 마디 더 주고받았다. 스웨덴 사람이라고 그랬다.  지금은 (코펜하겐에서 가까운) 스웨덴 말뫼에 살고 있고 한국은 1년에 한 번 정도 친구들 만나러 놀러 간다고 했다.  


그리고는 나보고, "뭐 드시고 싶으신 것 있으세요?" 하고 물어봤다.


"아, 왜요? 공짜로 주시려고요?"


"그럼요.  제가 chef de cabine (승무원장)이라서 권한이 있어요. 뭐 드실래요?"


난 완전 행운녀다.  


아까 한창 스낵 메뉴에서 눈독 들이던 캐슈넛을 달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하늘에서 공짜로 캐슈넛 서비스를 받았다.  


자리로 돌아오자 남편이 "결국에는 그걸 못 참고 샀냐며" 눈을 굴렸다.  


아니, "젊고 잘생긴 스웨덴 승무원장에게 선물 받았어."




그러고 나서 내가 읽고 있던 책으로 눈을 돌렸다.  책에 나온 러시아 스파이는 영국에 부임받기를 간절하게 원해 KGB (러시아 정보국)에서 제공하는 4년짜리 영어과정을 2년 안에 끝냈다.  


어라? 여기서 싱크로니시티를 순간 인식했다.


방금 스웨덴 승무원장이 한국에서 2년 만에 한국어를 마스터했다고 그랬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서 내가 눈을 돌린 책의 대목은 책의 주요 인물인 Oleg Gordievsky 가 영어를 2년 만에 마스터했다는 내용이었다.


싱크로니시티였고 메시지였다.


덴마크에 온 지 2년이 훨씬 넘었는데 나는 덴마크어를 마스터하기는커녕 질질 끌어가며 이제 겨우 초급과정을 마쳤다.  덴마크어에 더 분발하라는 우주의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느껴지면 그것은 메시지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순간 덴마크어를 유창하게 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맞다.  메시지이다.  


그래서 돈 생각하지 않고 7-8월 인텐시브로 진행하는 덴마크어 중급과정에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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