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에 보이지 않는 부당한 대우는 실제로 이따금 있었으니까. 나와 여동생이 다니는 학교에서도. 아버지가 상대하는 독일 기업과 관공서에서도. 인종적 시선이라고밖에 달리 부를 수 없을, 얼음처럼 섬득한 혐오와 멸시가 숨겨져 있던 눈빛들을 기억해요. “
”… 어떻게 된게, 이놈의 나라*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하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어야 한다니. 이제 그만 안 웃고 살고 싶다. “
*독일
“… 마침내 비행기가 인천 공항에 도착하고, 오랫동안 익혀 이젠 내 것이나 다름없어진 미소를 머금은 채 비행기를 빠져나왔지요. 누군가와 몸이 가까워질 때마다 실례합니다, 라고 독일어로 말하고 싶었어요.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짓고 싶었어요. 입국장을 빠져나온 순간 깨달았어요. 가족이며 친구들을 마중 나온 사람들의 사이를, 어깨로 헤쳐 나아가면서…이제야 내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이제 모르는 사람에겐 웃거나 인사하지 않는 문화 속으로 무사히 돌아왔다는 걸.“
- 희랍어 시간, 한강
한강의 “희랍어 시간“ 책을 읽으며 위의 구절들에 밑줄을 쳤다. 오랫동안 타지 생활을 하며 느끼던 일부 감정들을 역시 이름난 작가답게 언어로 섬세하게 표현했다.
단지 다르게 생긴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어렸을 때 남미에서 학교 다니면서 친구들에게 받은 놀림. 길거리에서 아이들이 양 검지 손가락으로 눈을 옆으로 치켜올리며 “치니따 (스페인어로 동양사람들을 비하하는 말 - 여성형)“라고 놀림받으면서 자란 내 어린 시절.
그리고 이십 대 후반부터 살게 된 유럽에서 겪은 크고 작은 인종적 차별들. 대놓고 하는 차별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묘해서 처음에는 잘 인지가 안된다. 그래서 그냥 넘긴 사례도 많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차별의 촉이 민감해지면서 차별적인 대우들 혹은 눈빛들이 강하게 와닿기 시작하였다. 길거리에서, 레스토랑에서, 직장에서, 심지어는 유럽에서 남미로 출장 가는 비즈니스 클래스 비행기 내에서도 (나에게만 이코노미석 식사를 갖다 주었다…!) 겉으로만 드러나는 차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백인들의 무의식 속에 깊게 프로그램된 “너는 우리와 틀리다”라는 강한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에너지이다. 그래서 유럽에 오래 살다 보면 눈빛 하나, 몸짓 하나에서 모두 감지할 수 있다.
유럽에 오랜 세월동안 살게 되면서 사람들의 눈빛이 두려울 때가 있었다. 작가 한강이 묘사하듯 얼음같이 차가운 응시들을 마주한다. 눈이 마주쳐도 피하지 않고 뚫어져라 노려보는 듯한 살벌하고 섬득한 눈빛. 이런 눈빛이 한강 작가가 묘사하듯이 정말 혐오와 멸시가 가득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내가 그들의 눈빛에 내가 이전에 겪은 크고 작은 인종 차별적 트라우마로 인한 상처들을 투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타인은 나의 거울이라는 말이 이 경우에도 적용되는 듯 했다. 내 안의 상처들이 치유되고 정화되지 않는 한, 이 눈빛은 어디를 가도, 백인들이 살고 있는 그 어느 나라에 가도 나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나는 그로 인해 생각지도 않게 고통받았고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무슨 카르마였을까. 전생에 내가 다른 소수민족에게 가한 차별을 내가 이번 생애에 경험하도록 내 영혼이 설계한 것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저 차별의 희생자가 아니라 나도 차별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어떤 계기를 통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백인으로 태어났다면 나도 차별을 했었을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느 전생에 백인이었다면 나는 차별을 했을 수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그 씨앗이 내 안에 전혀 없는 것이 아님을…
덴마크에 살면서 한 가지 좋은 것은, 타인과 눈이 마주치면 미소 짓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작가 한강이 쓴 소설 속의 인물과는 다르게 나는 이 미소 속에서 엄청난 안도감을 느낀다. 미소는 모든 것을 녹이기 때문이다. 설사 그 미소가 형식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차가운 응시보다는 그 미소를 백배, 아니 천배 더 선호한다. 미소를 받으면 닫혀 있던 마음이 금세 열려 미소를 되돌려 주게 된다. 이전에 살던 유럽 다른 나라에는 없는 문화이다. 남편의 나라 그리스에도 없는 문화이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는 동양인이 특히 더 없어서 유독 더 사람들이 쳐다본다. 그런데 작년까지만 해도 적대적으로 느껴졌던 이들의 눈빛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저 순수한 호기심의 눈빛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심지어는 “내가 예뻐서 쳐다보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XD 이것은 나에게 큰 변화이다. 내 안의 상처들이 치유되고 있나 보다. 내 마음이 열리고 있나보다.
이 문제는 결국 자존감, 그리고 자기애와도 연결되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고유한 지구 경험을 통해 회복해야 하는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