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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아 Jan 28. 2024

일기

글쓰기에 대한 고민

01.   김희재 작가의 ‘탱크’를 읽었다. 작가의 첫 책이라는데 부러울 만큼 잘 썼다. 다른 사람한테 추천을 해주고 싶은데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 책의 뭐가 좋은 거지? 하여튼 좋다.


02.   글을 처음 쓸 때만 하더라도 잘 쓰지는 못하더라도 글쓰기를 멈추는 일은 없을 거로 생각했다. 슬럼프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자신만만했다. 돌이켜보니 이건 복선이었다. 사망 플래그.


03.   글을 안 쓴지 꽤 되었는데 아마 글을 재능이라고 인정한 순간부터 아이러니하게 글은 나를 떠났다. 왜 그럴까. 이제는 쓸 말이 없어서? 슬럼프? 아니면 인생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서 글이 더 이상 필요 없는 단계에 접어든 것일까. 안 써도 정말로 괜찮은 건지 아니면 나를 돌아보기가 너무 힘들어서 외면하고 있는 건지 분간이 제대로 안 된다. 이걸 판단할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는 덜 복잡하고 더 후련할 것 같은데 쉽지 않다. 일단 초심자의 패기는 없어져 버렸다. 


04.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 존중과 격려를 보여주던 친구가 나를 따라 독서를 시작하고 심지어 최근에는 블로그까지 시작했다. 생활 정보를 더해 본인의 일상을 공유하는 친구의 글은 깔끔하고 개성이 담겨있게 쓰였다. 아이러니했다. 나는 이제 글을 쓰지 않고 친구는 쓰고 있다. 뿌듯함은 미약했고 좌절감이, 패배감이 더 크게 밀려왔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05.   글감이 떠올라서 뭉뚱그려진 내용을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굴리다가 보면 점점 부풀어서 내뱉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영감과 아이디어가 찰랑찰랑하는 상태로 집에 와 노트북에 앉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머릿속은 이내 차가워지고 하얘진다. 마치 그런 일은 없었던 것처럼. 글로 표현되지 못한 말들은 배출되지 못하고 남아 부패가 된다. 지금 당장은 해가 되지 않지만 언제라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06.   글이 일상이 되고 습관이 될 수 있게 글 모임을 하고 있다. 마감일이 다가오면 다급해지기도 하지만 이내 자포자기 심정이 든다. 내가 무슨 작가도 아니고… 글을 써야 할 때 책을 읽고 있다. 쓰기를 읽기로 회피하고 있다. 유튜브를 보는 것보다는 낫겠다고 하면서. 읽기는 쓰기에 비하면 쉽다. 이미 짜인 구성을 따라가고 문체를 음미하고. 글을 쓰지도 않으면서 남의 글의 단점은 기가 막히게 찾는다. 그리고선 내 글을 읽어보면 부끄럽게 짝이 없다. 


07.   이 글도 글이 아닌가? 생각해 보면 내가 말하는 글은 감정이 들어간 글이다. 글 쓸 당시에 나를 뒤집어서 다 내보이는 문장들의 연속. 그저 생각과 사건의 나열로만 이루어진 글을 쓰고 있으면 답답해진다. 글에서조차 솔직하지 못한 것 같아서.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도망치고 있는 것 같아서. 


08.   현실을 피해 글쓰기를 피난처로 삼았는데 글쓰기조차 피하고 있으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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