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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영 Mar 14. 2022

어린이를 모르고 어린이를 가르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너무 어려워요.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이들을 잘 모르겠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너무 어려워요.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이들을 잘 모르겠어요.”

미술교사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사실 아이들을 오랜 기간 만나왔지만 나도 여전히 어렵다. 

미술을 가르치다보면 미술 자체가 아니라, 어린이를 몰라서 어렵다.      

어린이를 가르치는 건 왜 어려울 까.


우리나라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사람들 대부분은 미술 대학교 출신이다. 

미술대학을 가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은 실기다. 나의 경우도 주말을 제외한 매일 저녁 6시부터 밤 10시까지 그림을 그렸고, 수능이 끝난 다음부터는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까지 그림을 그리고서도, 연이어 밤 10시부터 밤 12시까지 1:1 과외를 받는 수험생도 있었으니. 이것은 실기만 열심히 죽도록 배운다는 뜻. 


그럼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느냐. 이제는 더 본격적인 실기 작업을 한다. 간혹 이론수업이 있지만, 보통은 자신의 전공 실기를 다양한 매체를 다루며 키워간다. 

그러니까 미대생은 어린이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는 것. 그럼에도 많은 미대생은 아르바이트로 어린이에게 미술을 가르친다.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로. 결국 대부분의 미술선생님은 어린이를 모른 채, 어린이를 가르친다.

엄마가 되어본 적 없는 채로, 엄마가 되듯. 미대인은 미술교사가 된다.  


    

미술교사가 어려워하는 대상은 어린이 중에서도 특히 아동이다. 5세부터 7세까지.

한번은 이랬다.

5살 아이들은 자주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그릴 줄 모르겠어요”

‘난 모르겠어. 어려워“

“난 혼자 못하는데”

“선생님이 그려주세요”

이때 교사는 갈등한다. 아이는 못하겠다고 하고, 엄마에게 아무것도 안 한 빈 종이를 보여 줄 수도 없고. 이러다간 수업을 못하는 선생이 돼 버릴 수 있다.


잠깐 멈춰 생각해보자. 우리는 알고 있다. 아이가 그렇게 빨리 형태를 그려낼 수 없다는 걸.

어른이 제시한 미술활동이 발달과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른의 삶으로 산지 오래되어 기억을 못하지만, 5살의 어린이 입장으로 가봐야 한다.

엄마는 빨리 그림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을 은연중에 교사나 아이에게 비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엄마가 아이의 당황스런 결과물을 보고 실망하는 표정을 보인다면 아이는 상처를 입을 거고, 교사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대신 그려줘야 하나. 내 그림을 따라 그리게 할까.          



로웬펠드 '인간을 위한 미술교육'


   

                                           

어른이 아이의 첫 그림을 기다리면 좋겠다. 

아이의 눈과 손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도화지에 어떻게 옮길지를. 

아이가 그린 세상의 형태가 궁금하지 않은가. 어른이 그린 걸 따라 그리는 미술로 아이의 미술이 시작되지는 않도록. 우리는 참고 기다릴 수 있다. 어른이니까.     


조금 더 전문적으로 나아가보자. 

어린이의 미술을 이해하고 싶은 어른, 특히 미술교사라면 내가 공부한 것을 추천하고 싶다.

먼저 어린이의 발달단계다. 나의 경우 로웬펠드의 아동발달단계를 중심으로 공부하고, 아들의 그림들을 모았으며, 만나는 어린이들의 나이별 성향별 그림을 관찰했다.

물론 발달단계대로만 아이가 자라지 않지만, 보편적인 발달단계를 알아두면 어린이를 이해하기 쉽다. 


아이들이 처음 시작하는 낙서가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 5세~7세경 나타나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그림들. 전개도처럼 펼쳐진 식탁, 침대 형태라던가. 겉과 속이 한꺼번에 보이는 엑스레이기법으로 그린다던가. 땅과 하늘에 선을 긋고 여기까지는 하늘 여기까지는 땅이야. 라고 말하는 그림의 의미들. 이것은 고쳐야할 것이 아니었고, 세상을 이해하며 표현해가는 어린이의 모습이라는 걸.


어린이의 발달이 눈에 들어온 후, 그림을 바라보면 신기한 그림들이 술술 읽힌다. 나는 교사가 그림을 알아보고 엄마에게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어린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성장을. 사실에 맞게 그리지 않은 그림에 의미를.     


다음으로 추천하고 싶은 공부는 미술심리다.

그림에는 아이들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투영된다. 아이들은 그림에서 자신이 알고 경험한 것, 느낀 것, 그리고 걱정이나 염려, 기대 또한 표현한다는 것을.

두 가지를 공부한 후에는 어린이가 훨씬 선명하게 보였다.     


물론 당연히 미술전공자고 미술교육인에게도 까다로운 공부를 엄마들이 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의 미술을 존중하는 것이다.      


애석하지만 지금껏 내가 만난 미술교사 중에 어린이의 발달을 공부한 경우는 단 한명도 없었다. 

당연하게 어른의 미술실기 수준을 아이에 맞게 낮추어 설명하고, 다양한 미술프로그램을 활동하는 것을 미술로 알았던 것 같다. 

우리는 많이 미술이란 걸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각화된 결과물을 내놓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미술은 단지 잘 만들어진 결과물만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지 않은가.     


어린이가 어린이시절을 잘 보내는 데는 어른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어린시절이 교육결정권자와 교육안내자인 어른에 의해 흘러간다.

그래서, 나는 우리 어른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린이에 대해서.

그러면 어린이에게 주었을 상처, 그리고 우리가 어린이에게 받을 상처도 조금 덜 해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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