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스케치북을 들고 다녀라!
드로잉의 중요성을 설파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이다.
나는 그가 남긴 위대한 그림들인 모나리자나 최후의 심판보다 ‘드로잉노트’에 관심이 갔다.
손바닥만 한 수첩에서 공책까지 다빈치는 어디를 가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구를 꼭 들고 다녔다. 모든 자연을 호기심으로 바라본 그는 언제나 그리고, 기록했다.
그는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모두 드로잉노트에 옮겼다. 관찰하고 생각한 내용을 자세히 기록했다. 모두에게 주어진 자연이지만 그는 자연을 더 만끽했고, 자연에 대한 호기심은 관찰로 상상으로 생각으로 이어졌다.
만약 그가 드로잉노트에 남기지 않았더라면,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최후의 심판도 그의 상상은 모두 먼지처럼 사라지지 않았을까.
사실 다빈치는 제도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수천 년 전에 새를 보며 날개가 있다면 인간도 하늘을 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하늘을 나는 장비를 그리고 연구했다. 해부학, 발명, 과학, 수학, 무기 제조 등 다양한 분야를 탐구했고 모든 영역에서 전문가나 다름없었다. 무려 500년을 미리 내다본 그의 노트 속엔 예술과 과학의 경계가 자유로이 넘나들었다.
다빈치는 1478년에 자동이동 카트를 설계했고,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려는 스프링의 성질을 이용해 카트를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핸들 각도를 미리 정하게 하여 원하는 길로 이동도 가능했다. 자동차가 발명되기도 전의 일이지만, 사람의 조종 없이 이미 원하는 길로 이동할 수 있다는 생각은 현재 ‘자율주행’의 목표와도 같다.
그의 상상을 담은 수많은 드로잉은 후대에 비행기로, 헬리콥터로, 탱크로, 잠수함으로 발전되었다. 늘 노트를 들고 다니며, 그는 미래 시대에나 있을 법한 많은 드로잉을 남겼다.
이 같은 드로잉은 다빈치만이 가능한 걸까.
다빈치가 했던 무수한 질문에 대한 드로잉은 아이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사실 호기심 하면 어린 아이를 빼놓을 수 없다. 아이는 호기심의 대가다.
아이의 생각은 자유롭다. 세상에 호기심이 가득하여 질문도 많다. 아이에게 솟아나는 얘깃거리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상에 질문이 없어진 어른과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난 아이들이 어른과 다르게 세상에 질문을 버리지 말고, 노트에 모으면 좋겠다.
고전 빨강머리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것도 곧 알아내야겠네요. 알아내야 할 게 많다고 생각하면 정말 짜릿하지 않나요? 살아 있다는 게 기뻐져요. 세상이 너무 흥미로우니까요. 우리가 모든 걸 안다면 절반도 흥미롭지 않을 거예요. 상상할 것도 없고요.”
숙제하고 놀기에도 바쁜 하루여서, 누군가는 ‘노트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빈 시간에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지를 생각하면 보통 핸드폰과 시간을 보낸다.
내가 미술 수업을 하며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아이들이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핸드폰과 보낸 시간은 점점 생각 하는 것을 못하게 만들고 있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쉽게 답을 얻는다. 하루에 많은 과업을 행하면서도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그러나 사실 어린 아이들을 보면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적으며 낙서를 해왔다.
상상과 생각을 기록해왔다. 엄마나 아빠에게 달려와 그것을 보여주었다.
이 때 우리가 쓸 때 없거나 시간 낭비라고 반응하진 않았는지, 또는 예전엔 그런 시간을 좀 보냈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은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지 묻고 싶다.
상상과 생각을 종이로 옮기는 시간이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가는 건 어른이 아닌가.
나의 교육원에선 수업시간에 상상하고 생각할 틈을 마련하고자 애쓴다.
미술시간 조차도 이 시간을 마련하는 것은 용기다. 색칠까지 완벽하게 다한 것을 ‘미술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드로잉Drawing의 Draw ‘그리다’는 사전적 정의로 ‘끌어내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세상을 관찰하여 ‘자신만의 생각을 끌어내어 그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세상의 본질을 파악하여 선으로 추상화시키는 기능을 말한다. 즉 그리는 것은 형태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한다’는 것이다.
이는 드로잉이 ‘관찰력’뿐 아니라,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드로잉은 완성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미완의 것으로 남더라도 아이디어와 개념 자체를 담기 때문이다.
많은 예술가, 위대한 과학자, 사업가들은 노트에 그리고 썼다. 아인슈타인은 실제로 창조적인 일을 위해서는 지식보다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상상력으로 지식을 이룰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여전히 우리는 많은 지식을 주입시키고 학습시킨다. 그런데 열심히 학습한 지식이 서로 연결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것들을 통합하여 연결해내는 가장 쉬운 방편은 ‘드로잉’이다. 어떤 때는 글로 적는 것보다 시각화하는 것이 더 쉽고 더 정확하다.
빌 게이츠는 다빈치가 1506~1507년에 작성한 72쪽 분량의 노트를 3,000만 달러(약 359억 원)에 구입했다. 그의 생각을 통째로 알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빌 게이츠가 다빈치의 ‘상상력’을 사간 것이라 생각한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등 많은 글로벌 기업인들은 다빈치를 존경했다. 천재들의 뒷조사를 해보면 그들에겐 노트가 있었다. 여러 방면에서 전문가였던 다빈치 말고도, 아인슈타인, 아이작 뉴턴, 도스토옙스키 등 모두 노트와 시간을 보냈다.
그들의 노트는 호기심으로 출발한 상상력과 생각이 기록된 거라 여긴다.
아이들도 이처럼 ‘생각하는 도구’를 장착했으면 한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애워싼 그리고 우리가 만나고 있는 아이들은 묻고 있다. “왜요?”
빌 게이츠가 구입한 다빈치의 노트에도 이런 글이 있다.
‘하늘은 왜 파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