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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Apr 22. 2024

글쓰기, 나를 직시할 용기

있는 그대로 쓴다


토요일에 잠실 교보 사인회 다녀왔다. 대구에서 서울까지 1시간 40분. 돌아오는 시간도 같다. 피곤했다. 금요일 밤에 잠을 설친데다가, 토요일 아침 7시부터 두 시간 동안 정규과정 강의도 했다. 서울 가는 기차 안에서 글을 쓰지 않았다. 몸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밤 9시에 대구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도 글을 쓰지 않았다.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A4용기 1.5~2매 정도는 거뜬히 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왕복이면 두 꼭지를 완성할 수 있었음에도 나는, 글을 쓰지 않았다. 왜일까. 왜 나는 그토록 소중한, 세 시간을 허투루 보낸 것일까.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을 만큼 몸이 피곤했다면 곯아떨어졌어야 마땅하다. 잠도 청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야 말았다. 


그럴 수도 있다고. 사람이 어떻게 매번 시간 날 때마다 꼬박꼬박 글을 쓰냐고. 스스로 위안 삼고 변명도 해 본다. 역시나 찝찝한 마음 지울 수가 없다. 나는 나태했던 거다. 굳이 쓰지 않아도 별 문제 없다고 생각했다. 맞다. 딱 그렇게 생각했다. 


사업 실패 후 술만 마시며 허공에 날려버린 시간이 6년이다. 열차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버린 세 시간이 6년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나는 바쁘게 살아간다.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잠 자는 시간 제외하고, 하루 스무 시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버린 거다. 


돈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 적 있다. 다시 일어서 회복했다. 잃어버린 돈을 만회했다. 돈과 달리, 시간은 되돌릴 수 없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시간은 회복할 수가 없었다. 잃어버린 시간은, 날려버린 시간은, 허투루 보내버린 시간은 다시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시간은 삶이자 최고의 가치이다. 피곤하다는 이유가 돌이킬 수 없는 귀한 삶을 뒤로 미루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무슨 말로 핑계를 대고 위안 삼아도, 도저히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음은 내가 가장 잘 안다. 글을 쓸 수 있음에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 그렇게 나는 아쉬운 점 하나를 찍고 말았다.


글을 쓸 때는 나 자신을 똑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하겠다는 각오도 중요하고, 잘못했다는 반성도 중요하다. 하지만, 각오나 반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다.


2천 명에 육박하는 수강생들 앞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글을 쓰라고 강조하는 강사이자 코치인 내가, 피곤하다는 이유로 글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슬쩍 숨기고 지나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수강생을 속이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속이는 행위이다. 


속이는 건 쉽다. 쉬운 일은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는 최악의 벽이다. 벽은 습관이 된다. 내가 나를 막아서는 꼴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고 드러낼 수 있어야 달라진다. 더 나은 모습으로 달라질 수 있다면, 내가 가진 부족하고 모자란 점들이 더 이상 흉이 되지 않는다. 


초보 작가들이 글을 쓰면, 두 가지 안 좋은 습성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첫째, 자기 비하이다. 객관적으로는 50점 정도가 되는데, 글에는 자신을 20점도 채 되지 않는 존재로 표현한다. 이것은 겸손이 아니라 자기 기만이다. 남들이 "괜찮다"고 말해주길 은근히 기대하는 가식의 표현인 거다.


둘째, 각오와 결심과 다짐이다. 다시는 싸우지 않겠다고 각오하고, 내일부터는 일찍 일어나겠다며 결심하고, 앞으로는 매일 독서하겠다고 다짐한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각오와 결심과 다짐은 지켜지지 않는다.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는 에너지 낭비다. 이 또한 자신을 속이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글쓰기 본질과 거리가 멀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직시한다는 것은, '그냥 그렇다'고 쓰는 태도를 일컫는다. 공감, 비판, 칭찬, 기대 등의 감정은 독자의 몫이다. 우리는 그저 보여줄 뿐. 피곤해서 글을 쓰지 않았다며 계속 자괴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앞으로는 열차 안에서 무조건 글을 쓸 거라며 다짐하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다. 나는 그저 글을 쓰지 않았을 뿐, 그것으로 끝이다. 


보고 듣고 경험한 이야기를 그대로 쓴다. 평가 받는다는 생각, 잘 써야 한다는 강박, 나는 못났다는 자괴, 그럴 듯하게 마무리하고 싶은 욕구. 이런 마음들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참한 글을 쓸 수가 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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