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가
"저는 여러분이 책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강의 시간에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진심을 담아 수강생들에게 권하는 바다. 강의를 마칠 때가 되면, 괜히 말했나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내가 쓰라고 해서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먹고 살 길 막막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가 시킨 건 아니었지만, 내 나름의 필요가 절절했다.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해서 작가로 살면, 그나마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필요에 의한 글쓰기는 힘들고 답답했다. 다른 방법이 있기만 하다면 글 따위 쓰고 싶지 않았다.
성공하고 싶은 욕망도 컸다. 사업 실패로 모든 걸 잃고 내려앉은 때라서 출간을 통해 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어쩌면 작가로서의 삶이 부와 명예를 되살려 줄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했던 것이다. 성공하기 위해 쓰는 글. 내 이야기가 아니라 허울 좋은 공자님 말씀만 쓰게 되었다. 작가가 아니라 기계가 되는 기분이었다.
첫 책을 출간했을 때 독자들 반응을 잊을 수 없다. 사람들은 내게 "도움이 되었다"는 인사를 건넸다. 자신도 글을 쓰고 싶다, 도전을 시작했다 등의 말도 자주 들었다. 어느 독자는 술을 끊고 막노동 현장에라도 나가서 다시 삶을 시작하고 싶다고 남기기도 했다. 뭉클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필요와 욕망에서 벗어나 즐거움과 행복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함으로써 독자들이 내가 겪은 일을 함께 경험하고, 내가 느낀 절망과 희망을 같이 느끼기를 바라면서.
잘 쓰지는 못했지만, 내가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는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나에게는 돈이나 성공이나 명예 따위가 글 쓰는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지금도 한 번씩 왜 글을 쓰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똑 부러지게 답하기는 여전히 힘들지만, 적어도 '무엇을 위해' 쓰는 게 아니라 쓰는 행위 자체를 즐기고 보람과 가치도 느끼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데 부끄러움 없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 돈과 성공을 위해, 명예를 위해, 이렇게 필요와 욕망으로 글쓰기 동력 삼는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훌륭하고 멋지다. 다만, 쓰는 사람 입장에서 보자면, 그런 필요와 욕망이 사람을 지치고 힘들게 만드는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
블로그에 경험과 생각을 담아 다른 이들에게 도움 주고, 그들과 소통하고, 삶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일련의 행위가 즐겁고 행복하다면. 블로그 활동을 하는 이유가 그런 거라면. 방문자 수를 늘여 파워블로거가 되고, 광고를 실어 돈을 벌겠다는 필요와 욕망이 즐거움과 행복을 초월하기는 힘들 터다.
사는 게 팍팍하고 돈을 부르짖는 광고와 콘텐츠가 넘쳐나서 잠시 잊고 살아갈 뿐,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본질과 가치는 즐거움과 행복에 있다. 돈 벌기 위해 억지로 하는 일과 좋아서 기뻐서 하는 일은 근본이 다르다. 문제는, 자신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만 강조한다며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 제법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결같이 덧붙인다. 의미와 가치, 본질을 추구하며 살아온 덕분에 누구보다 빠른 성장을 이뤄냈으며, 돈도 벌고 명예도 되찾을 수 있었다고. 이것이 바로 기본과 태도를 중시하며 살아가는 인생의 위력이다.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고 급한 불 끄기에만 정신 팔려 살았었다. 모든 '해야만 하는 일들'을 다 해낸 후에 내 인생 찾아도 늦지 않을 거라 믿었다. 감옥에 가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언젠가 행복한 날 따위 결코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늘 무엇을 했는가. 오늘 어떤 생각을 했는가. 개인이 살아낸 하루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 자신이 무엇을 했는가 기억하지 못하고,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꼈는지 관심조차 두지 않는 사람 많다. 오늘을 '흘려보내는' 사람에게 무슨 보람과 가치가 있겠는가.
열심히 살았는데 이룬 게 없다며 푸념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럴 때마다 과거 나를 떠올리게 된다. 일요일도 휴일도 없이 밤낮 가리지 않고 일했던 젊은 시절. 돈만 바라보며 "나중에! 나중에!"를 외치며 살았던 날들. 두 번 다시 그런 인생 살고 싶지 않다.
글쓰기는 내 이야기를 세상과 공유하는 일이다. 모든 추억을 글 쓰는 행위에 바쳐 내 경험을 나눠 가진 이들의 심장이 쿵쾅거리고, 내가 느낀 것 못지않게 강렬한 감정을 품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일. 나탈리 골드버그는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쓰는 이유가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의 이야기라고 해서 굳이 화성에 다녀온 정도의 경험일 필요는 없다. 간밤에 무슨 꿈을 꾸었는지, 아침 식사는 누구랑 무슨 얘기를 하면서 먹었는지, 어제는 어디에서 무엇을 했으며, 또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내가 살아낸 모든 하루는 드라마이며 시트콤이자 한 편의 영화다. 자신이 주인공으로 활약했던 영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배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틀 전, 할아버지 제사였다. 아내가 발을 다치는 바람에 이번에는 음식을 장만하지 않고 주문했다. 생각보다 괜찮았고, 구색 갖춰 제사 지내기에 부족함 없었다. 다음에도 주문해서 제사 지내자고 아버지께 바로 말하기가 좀 그래서 "너무너무 맛있다!"를 연발하며 음복했다.
새벽 2시부터 배탈이 나기 시작하여 밤새 한숨도 모소 자고 화장실 들락거렸다. 토하고 설사하고 난리를 치면서도 혹시 아버지께 들킬까 봐 조심했다. 다음 날, 여전히 체기가 남아 있음에도 아침밥을 또 먹었다.
남자는 부모와 아내와 자식 사이에서 늘 최선을 다해야 하는 멍에를 짊어진 존재이다. 분명한 것은, 나 하나 고생하고 헌신하면 세계의 평화가 지켜질 수 있다는 사실. 아버지의 선비 정신과 아내의 수고 사이에서 나는 균형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드라마와 영화에 푹 빠지는 이유는, 자신을 그 속에 투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매번 남의 얘기 같기만 한 드라마와 영화라면 무슨 재미로 볼 것인가. 글도 마찬가지다. 내가 겪은 일을 쓰는 거지만, 독자 입에서 "이거 내 얘기네"라는 말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 공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글쓰기 원칙들이 쏟아져 나온다. 쉽게 써야 하고, 간결하게 써야 하고, 구체적으로 써야 하고, 보여주는 글을 써야 하고, 느낌과 감정보다는 팩트를 그대로 써야 하고, 인물이 선명해야 하고, 사건이 벌어져야 하고, 악당(방해물)이 등장해야 하고, 고군분투해야 하고, 결론이 명확해야 하며, 메시지가 뚜렷해야 한다.
어제와 오늘, 내게 일어난 일과 감상과 메시지를 정리함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삶이란 이런 것 아니겠는가" 공감과 위로와 용기와 희망과 힘을 전하는 과정. 글쓰기의 본질과 가치가 이런 것이라면 기꺼이 즐기고 누리며 행복할 수 있지 않겠는가.
돈이 우선이고 내 이익이 먼저이고 절대 손해 보지 않겠다는 생각이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입니다. 행복이 우선이고 가치가 먼저이며 본질과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시대를 역행하는 사고방식 아니란 사실을 전하고자 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