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거창하지 않게
시작부터 <토지>를 쓰려고 애쓰는 사람 많습니다. 안 됩니다. 어렵고 힘든 게 아니라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한 일을 좇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글 써 본 경험도 부족하고, 아직 부족하고 모르는 것 투성이인데 무슨 작품을 쓰겠습니까.
우리가 쓰는 글은 '나의 이야기'입니다. 어제 무엇을 했는가.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있었는가.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바를 그냥 허투루 넘기지 말고, 그 속에서 무언가 느끼고 깨달은 바를 글로 적어 다른 사람들과 나누자는 의미지요. 이게 전부입니다.
아이가 넘어져 무릎이 까졌습니다. 아이고 큰일났다 호들갑을 떨며 혼내고 소리 지르는 엄마들 있습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나면, 생각보다 상처가 깊지 않다는 데 안심을 하게 되지요. 아이도 울음을 그치고 생글생글 웃으며 잘 놉니다. 이럴 때,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침착할 필요가 있다."라는 메시지를 담아 글을 쓰는 겁니다.
이런 식의 글은 세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데요. 첫째, 자신이 겪은 일에서 배움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허투루 여기지 않을 수 있지요. 하루의 밀도가 가득 차게 됩니다.
둘째, 다른 사람에게 도움 줄 수 있습니다. 허둥지둥 왔다갔다 호들갑 떠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으면, 그래 나도 좀 차분해져야겠다 느낄 수 있겠지요. 이 정도 공감과 도움이면 충분합니다.
셋째, 삶의 모든 순간이 좋음과 나쁨이 아니라 그저 경험과 배움일 뿐이란 사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촐싹거리며 방방 뛸 일도 없고, 좌절하고 절망하며 고개 숙일 일도 없습니다. 인생은 그저 경험일 뿐이니까요. 무엇을 배우고 깨닫는가. 그것만 생각하면 됩니다. 가볍고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낸다 하면 무슨 거창한 일로 여기는 사람이 아직도 많습니다. 옛날에는 그랬을지 모르겠습니다. 반드시 공모전을 통과해야 하고, 작품성을 인정 받아야만 책으로 낼 수 있는 시절도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다릅니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고, 그런 시스템도 갖춰져 있습니다. 다만, 어떤 이야기를 담을 것인가는 각자가 궁리하고 고심해야 할 부분이겠죠.
이 또한 너무 근심할 필요 없습니다. 하루살이도 책 쓴다 합니다. 수십 년 살아온 우리에게 쓸거리가 없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지요.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이 귀찮고 힘들다 여길 뿐입니다. 적극적인 정성만 있으면 누구나 삶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할 수 있습니다.
자꾸만 베스트셀러 얘기하는 사람 있는데요. 묻고 싶습니다. 책쓰기 말고 다른 영역에서 베스트가 된 거 한 번 말해 보세요. 도대체 얼마나 베스트 인생을 살았길래 자꾸만 베스트 베스트 하는 건가요.
다른 영역에서는 한 번도 베스트 생각 안 했으면서, 왜 책쓰기 얘기만 나오면 베스트 베스트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학창 시절에 전교 1등 전교 1등 외치며 살았나요? 아니잖아요. 그냥 학교 가서 친구들과 공부하고 재미있게 놀면서 지냈지 않습니까. 글쓰기/책쓰기도 그렇게 편안하게 여기면 좋겠습니다.
헬스클럽 처음 가면, 제일 많이 듣는 소리가 "어깨에 힘 빼세요!"입니다. 무슨 일이든 강박이나 부담을 안고 시작하면 다치기 일쑤입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깨 힘 빡 주고 쓰려고 하면 머리가 굳습니다. 그저 편안하게 어제 오늘 인생에서 있었던 경험 적고 느낌 한 번 써 보겠다는 정도로 시작하면 됩니다.
글을 잘 못 쓴다고요? 당연하지요. 제대로 써 본 경험도 없고, 제대로 배운 적도 없으니까요. 해 보지 않은 일을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부터 해 보면 됩니다. 지금부터 경험 쌓으면 됩니다. 자주 해 보면 실력 늘게 되어 있지요. 거기에 독서와 관심과 관찰 등을 추가하면 일취월장 가능합니다.
시간이 없다고요? 시간이 없으면 기간을 늘이면 됩니다. 시간 많은 사람은 하루 세 편씩 쓰겠지요. 시간이 얼마 없는 사람은 하루 한 편씩 쓸 겁니다. 아예 시간 없다 생각 되는 사람은 하루에 다섯 줄씩 쓰면 됩니다. 자꾸 '되는 방향'으로 생각을 몰고 가야 답이 나옵니다. '안 된다' 생각하면 끝도 없습니다.
누가 뭐라 할까 두렵다고요? 남편이, 시어머니가, 친구들이 흉볼까 신경 쓰인다고요? 갓 태어난 아기가 마흔 되면 어쩌나 걱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아직 시작도 안 한 사람이 별 걱정을 다 합니다. 초고 쓰고, 1차 퇴고, 2차 퇴고, 3차 퇴고, 투고, 계약, 최종 퇴고, 표지 선정, 그리고 출간. 그냥 오늘과 지금만 생각해도 벅찹니다. 너무 멀리까지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작품 쓰지 말고 내 얘기 씁시다. <토지> 쓰지 말고 어제 점심 먹은 이야기 씁시다. 두 발을 땅에 딛고 견고하게 살아야 삶을 손에 쥘 수 있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