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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 Apr 18. 2022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즐거워, 중고교 학과 멘토링

간호학과 학생은 어떻게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되었나 - 9

서론이지만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참 길다.

이렇게까지 챕터를 길게 나눌 생각은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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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링 알바를 처음 하게 된 건 첫 번째 알바 직후이자 두 번째 알바를 구하기 전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 경험이 두 번째 알바를 학원 알바로 구하게 했던 것 같다. 멘토링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내 경험을 나누고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시간이 즐겁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창 일일 알바를 구하던 시점, 구인 사이트에 올라온 '중고교 학과 멘토링' 글을 보고 지원 신청을 했다. 시급도 세고 일의 강도도 높지 않아서 나름 경쟁률이 치열했다. 그러나 내가 다니던 간호학과의 특성상 평일 낮에 시간을 뺄 수 있는 사람이 잘 없었고, 자연스레 휴학생인 내가 경쟁력을 갖게 됐다.


그렇게 두 업체와 컨택을 하여 일을 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멘토링 시간을 정해주면 나에게 연락이 와서 그 날 시간이 되냐고 물어보고, 된다고 하면 참석하는 식이었다. 한 업체는 '드림스폰'이라는 곳이었는데, 마침 사무실이 내가 다니던 경희대에 있어서 편하기도 했다.


드림스폰 업체에서는 첫 멘토링을 가기 전에 시연을 해야 했다. 원래 발표를 좋아했던 터라 아이들 앞에서 멘토링을 진행하는 것은 걱정이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업체 관계자 한 분을 두고 시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떨렸다. 그래서 더 열심히 준비했다.


업체에서 PPT 양식을 보내주면 그 양식에 맞춰서 자신의 학과를 소개하는 내용을 준비해오는 식이었다. 나는 특히 간호학과에 진학 후 간호사 이외의 진로가 무엇이 있는지 열심히 서치해봤다. 내가 간호학과에 오기를 망설였던 이유가 진로가 너무 한정적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고, 아이들도 그럴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이 일이 결과적으로는 나를 돕는 일이 됐다. 나 또한 간호사 이외의 직업에 대해서는 정말 몰랐는데, 서치를 해보면서 법의간호사, 항공간호사, 산업간호사 등 정말 다양한 분야에 간호사 면허증을 가지고 있으면 취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참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 경험에서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여튼 무사히 시연까지 마치고 본격적으로 학과 멘토링을 다녔다. 중학교를 갈 때도 있고 고등학교를 갈 때도 있었다. 학교마다 원하는 활동도 달랐다. 그냥 내가 4시간 내내 말로 설명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체험 활동을 준비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강당 같은 곳에 모여서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설명을 들으로 오는 경우도 있었다.


한 학교는 고등학교였는데, 생기부에 쓸 체험 활동을 요구했다. 간호학과 1학년 마치고 휴학한 휴학생이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까... 혈압, 혈당 재는 거나 주사 놓는 것들은 2학년 때 배우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 간호사 상황극을 하기로 했다. 간호사의 역할 중에 문진을 통해서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알아내는 것도 있기 때문에, 두 명씩 짝을 지어 한 사람이 아픈 곳을 혼자 정하고 다른 한 명은 간호사가 되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물어보는 실습을 진행했다. 너무 유치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학생들이 신나게 참여하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


영어로 된 어려운 의학용어와 뼈 사진을 가지고 가서 퀴즈도 진행했다. 맞추는 학생에게는 작은 간식을 주니 학생들의 참여도가 엄청 높았다. 아이들이 내가 준비해서 간 활동들을 열심히 하니 정말 뿌듯했다. 


그냥 질문을 하라고 하니 다들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 하길래, 종이를 찢어 나눠주며 익명으로 질문을 적으라고 하니 정말 다양한 질문이 들어왔다. (이 방법은 다음에도 알차게 써먹었다.) 내가 말해줄 수 있는 한에서 답변을 해주는데 아이들이 끄덕이는 모습을 보니 귀엽기도 했다.


(보고 감동 받았던 한 쪽지 ㅋㅋ 천샤오시가 누구지? 하고 집에 와서 검색해봤었다.)


또 한 학교는 교실에서 진행하지 않고 강당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학과마다 부스를 마련해놓고 정해진 시간 마다 학생들이 원하는 학과에 가서 설명을 듣는 식이었다. 간호학과가 인기가 없으면 어떡하나 했는데 다행히 많은 학생들이 와주었다. 남자 학생들도 은근 많이 와서 신기했다.



5번 넘게 멘토링을 진행을 했는데, 간호학과의 장점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에 대한 정보를 찾다 보니 나 자신도 점점 간호학과를 좋아하게 되고,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졸업까지 할 수 있었던 걸까...? 멘토링이 간호학과에 대한 나의 시선도 바꿔준 것은 확실하다.


학생들이 단체로 학교에서 여행을 와서 대학교를 둘러보는 캠퍼스 투어도 진행했다. 바로 옆에 고려대가 있는데 왜 경희대를 오지...?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내 모교를 같이 둘러보는 일은 나름 재미 있었다. 경희대가 캠퍼스가 예쁘기로 유명한데 아이들이 사진 찍고 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괜히 뿌듯했다. 경희대와 외대가 붙어있는데, 선생님들이 외대까지 소개를 부탁하셔서 잘 모르는 외대 본관에 다녀오기도 했다.


캠퍼스 투어 하면 지각할 뻔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노량진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경희대까지 약 1시간이 걸리는데, 집합 시간 1시간 전에 눈을 뜬 것이었다. 다행히 나는 이 업체와 일을 많이 했었기 때문에 오티를 듣지 않아도 되어서 관계자 분이 투어 시작 전에만 도착해달라고 하셨다. 머리도 감지 못하고 급하게 택시를 탔는데, 내가 간과한 사실은 그곳이 서울이었다는 거다... 본가인 대구에서는 대중교통보다 택시가 빠른데 서울은 교통량이 워낙 많아서 택시보다 지하철이 빠르다는 사실을 몰랐다. 택시비도 버리고 시간도 늦을 뻔한 아찔한 경험이었다...


누군가에게 내 경험과 지식을 나눈다는 게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좋은 알바였다. 시간이 된다면 계속 하고 싶었는데 다시 복학을 하면서 평일 주간에 시간을 낼 수 없어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도 나중에 강연을 다니고 싶다는 또 다른 꿈을 나에게 심어주었다. 언젠가 사회인 멘토로 다시 중고교 멘토링을 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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