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웠던 사람이 가장 먼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평소에 겁이 많았고 나서길 싫어했으며 용기가 부족했다. 이러한 성격은 어렸을 때 작고 왜소했던 나에게 겁쟁이라는 별명을 붙여줬고, 난 이 별명이 맘에 들진 않았지만 부정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이런 나에게 있어서는 나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사람들, 어떠한 문제에 봉착했을 때 자신이 발 벗고 나서서 해결하려는 선구자적인 리더들의 모습이 멋있고 부러웠다.
초등학교 때 만났던 내 친구가 딱 이러한 모습이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상대방이 누구든지 간에, 옳고 그름을 따져 잘못된 점은 곧바로 얘기해야 직성이 풀리던 친구였다. 나보다 강한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잘못을 지적하는 친구의 모습은 겁쟁이였던 나에게 멋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친구와 나는 같은 반,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인이 된 후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되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난 후, 이 친구의 정의로운 성격이 때론 독이 되기 시작했다. 굳이 안 해도 될 언행으로 인해 작은 문제를 큰 문제로 번지게 하곤 하였다. 잠깐 한번 참고 넘어가면 되는 일을 넘어가는 법이 없고 결국 그 문제를 걸고넘어져 고등학교 시절까지 치고받고 싸우는 일도 있었고, 얼굴도 모르는 지나가는 행인들과 시비가 붙어 싸움이 날 뻔 한적도 있었다. 이 친구가 가지고 있던 참지 않는 성격이 참지 못하는 성격으로 비치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이 친구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비단 이러한 문제들은 모르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곁에 있던 친구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친구들의 장난에 쉽게 화를 냈고, 그 친구가 생각 없이 쏘는 감정의 화살의 방향은 나에게도 향해 있었다. 종종 그 화살에 상처받았던 적도 많았지만, 친구의 장점을 보려 했고 같이 알고 지내온 시간만 20년 가까이 되었기에 나는 이 기간을 이유삼아 관계를 겨우 유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어떠한 모종의 사건으로 우리 사이에 큰 균열이 가는 일이 있게 되었고 , 이 친구의 사과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친구의 진심 어린 사과 대신 SNS 계정 차단, 즉 '뒷삭'을 당했다.
이번 기회에 내가 알게 된 건 인간관계 안에서 누군가를 얼마나 오래 알고 지내왔는진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분명 존재하며, 이 사람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가장 가까웠던 사람 혹은 내가 사랑했던 사람과 같이 나에겐 가장 '소중한 사람'이 '소중했던 사람'으로 바뀌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 이러한 순간이 처음이던, 처음이 아니든 간에 이때 느끼는 아픔은 익숙해지지 않는 상처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에도 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내 곁엔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 밤 누가 내 곁에 있는지 생각해보고 내 곁에 남아준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인사 한번 건네보는 건 어떨까,,
내일 아침 퇴근길, 언제나 내 편인 부모님께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