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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비 Nov 19. 2023

효율성의 주인

어제의 단상_#28

#28_효율성의 주인


이상은의 6집 노래*가 듣고 싶어 음원 사이트에서 노래 몇 곡을 내려받았다. 한 곡당 0.5초씩 앨범 한 장(?)**을 내려받는 데 걸린 시간은 십 초를 넘지 않았다. 어쩐지 김이 새버린 느낌에 노래를 듣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이 짧은 순간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김혜연의 소설 <우연한 빵집>(2018)***에는 이러한 내용이 나온다.


"태환이 시디플레이어를 고수하는 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처음 그것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기 때문에 습관이 되어 불편하지 않을 뿐이다. 스마트폰 뮤직 앱을 이용하거나 엠피스리나 휴대폰에 수천 곡을 저장할 수 있는데 굳이 무거운 걸 가지고 다니는 데에 그거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집요하게 묻는 애들도 있다. 다른 이유, 물론 있다. 좋아하는 시디를 주문하고 택배가 도착하길 기다리고, 택배 상자에서 시디를 꺼내 비닐을 뜯는 순간까지의 설렘이 좋아서다. 그래야 그 음악들을 온전히 소유한 것 같았다. 음원 사이트에서 일 초 만에 다운 받은 음악에선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다."(<우연한 빵집>, 28쪽.)


이제와 새삼스러운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클릭 한 번으로, 단 일 초만에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이 편리성은 정말로 효율적인 것일까? 어쩌면 태환이 말하는 '숨결' 역시 효율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아닐까.

효율성 역시 결국 결과론일 테니 말이다.


효율성은 노력과 결과의 비율을 뜻하는 말이다. 최소의 노력으로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을 때 우리는 효율적이라 말한다. 이런 점에서 최소의 노력으로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한 나의 행위는 분명 비효율적인 것이다.

언젠가 다시 <공무도하가>를 들으려 노래 파일을 클릭하는 순간이 찾아올까. 아무래도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나는 쓸모없는 것을 사랑하는 유형의 인간으로 태어났다. 사랑하기에 시간과 돈과 수고를 들이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돈과 수고를 들이기에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 굳게 믿는다.

효율성과 가성비가 선택의 절대적 기준이 되어가는 요즘, 사람들의 허전함을 채워주는 건 결국 쓸모없는 것을 향한 대가 없는 사랑, 그 무던한 발걸음이 아닐까.


십칠 년 전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잠시 일본에 체류한 적이 있다. 당시 회화 수업을 담당했던 이와키 선생은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과 수고를 들여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별것 아닌 이 말이 지금껏 가슴에 새겨져 있는 건 쓸모없는 것을 향한 무던한 발걸음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가장 비효율적인 것이 결국 가장 효율적인 것이 될  있음을. 효율성의 주인은 결국 숨결일 테니.



*이상은의 정규 6집(1995)의 타이틀곡은 그 유명한 <공무도하가>이다.

**'한 장'이라는 단위가 왜 이리 어색할까?

***<우연한 빵집>은 4.16 세월호 참사(2014)를 배경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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