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카 May 10. 2024

시작은 부모님의 해방이었다

"OO아 반찬 너무 맛있다"

건유채나물, 연근조림, 열무지짐 등 일부러 많음 음식을 차려드렸다. 숭늉까지 드신 어머니는 만족스러운 아침을 드시고 서울로 올라가셨다. 잘 차려진 아침밥상이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렸는지 모르겠다.

"OO아 형하고 같이 일해보지 않을래?"

광주에 있던 아는 형의 제안이 계기가 됐다. 예전 서울에서 같이 일했던 형님인데 이번에 가게를 차렸다고 같이 키워보자는 제안을 주셨다. 조건은 좋았지만 주 활동지역이었던 수도권을 떠나는 게 큰 걸림돌이었다. 내 가족, 친구들, 커뮤니티 활동 모든 생활이 이곳에 있었지만 내 선택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가족에게 드는 미안한 마음이었다. 33년을 집에서 지내며 많은 힘이 돼 드리지 못하고 사회에서도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는 내 모습이 정말 죄송스러웠다. 이제 부모님의 연세가 적지 않았기에 나에게서 해방시켜드리고 싶었다. 물론 지방에 내려간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이것이 나에게서의 해방 첫걸음이라 생각했다.

광주에 내려오고 2개월이 지났을 때쯤 어머니가 오셨다. 강진 쪽에 외할아버지댁이 있어서 거기에 들렸다 아들네 집으로 오신 것이었다. 어머니는 무뚝뚝한 편이셨지만 누나를 통해 들은 바로는 아들걱정을 정말 많이 하셨다고 한다. 내가 생각한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리는 방법은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푸짐한 밥상이었다. 모든 부모님의 가장 큰 걱정은 '자식이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나'가 아닐까? 평소에 있던 반찬에 2~3가지 반찬을 더해 푸짐한 아침을 차려드렸다. 어머니는 자신보다 더 잘 차려먹는다며 기분 좋게 식사하셨다. 그러면서 얘기하셨다. 아들이 밑에 내려가서 심심하고 걱정됐지만 잘 살고 있는 거 같아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고. 조금은 안심이 됐다.

광주에 내려오고 2번 정도 본가와 누나네에 갔었다. 오랜만에 집밥도 먹고 조카들도 봐서 즐거웠다. 근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혼자 사는 나 보다 밥을 잘 못 차려 먹는다는 점이었다. 자세하게 말하면 반찬의 개수가 훨씬 적었다. 어머니는 내가 나가고 나서 밥을 먹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반찬을 잘 안 하게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누나는 5살, 2살 아기들 키우느라 밥 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양쪽 집에서 항상 배불리 먹었던 나로선 마음이 안 좋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반찬을 보내줘야겠다"

'식구' 한 집에 살면서 끼니를 때우는 사람을 뜻한다. 지금은 흩어져 있지만 우리 가족은 그 누구 보다 서로 생각하는 마음이 크다 말할 수 있다. 그런 가족이 제대로 된 밥을 못 챙겨 먹는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자주는 아니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반찬을 보내야겠다 다짐했다. 지금의 이 반찬은 단순히 음식이 아닌 가족에게 보내는 내 안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