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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dermovie Mar 11. 2024

고전 다시 보기 프로젝트 + 96회 오스카

2024년이 시작하고 벌써 두 달이 흘렀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세운 계획을 나름 착실하게 지키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아직 시작 못한 계획도 있지만. 이렇듯 중요하게 생각하는 메인 계획 말고 일종의 서브 퀘스트 개념으로 지난해에도 진행했던 바 있는 ‘고전 다시 보기’를 3월에 다시 시작했다.


중2병을 앓던 시절, 고전 영화들을 닥치는 대로 봤다. 이렇다 할 나만의 시선 없이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생각으로 소비하기 바빴던 영화들을 다시 제대로 보고 지금의 시선에서 평가를 내리자는 취지다. 원래는 작년에 더 많은 고전들을 챙겼어야 했는데, 공사가 다망한 관계로 잉마르 베리만의 몇몇 영화들밖에 챙기지를 못했다.


올해는 다시 보는 영화뿐 아니라, 보지 못했던 영화들 역시 살뜰히 데리고 가면서 영화 주머니를 더욱 푸짐하게 꽉꽉 채워 넣어볼까 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자다>

어릴 적 보면서도 참 재밌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4시간 가까운 러닝 타임에 다시 보는 게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용기를 가지고 사놓았던 DVD를 재생시켰다. 그리고 이번에도 보면서 참 재밌는 영화라고 다시 한번 느꼈다.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와 아내를 떠나며 “내 알 바 아니오”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는 나쁜 남자 캐릭터를 두 축으로 굴러가는 영화는 지금 봐도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라는 느낌을 준다.


또한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무엇보다도 가장 놀란 부분은 탁월한 프로덕션 디자인이다. 고전 할리우드 시절 영화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세트, 소품 등이 눈에 띄었다. 지극히도 할리우드스러운 프로덕션 디자인에 스케일까지 더해진 말 그대로 대작.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이유가 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고 나니까 긴 러닝 타임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던 것 같다. 바로 다음 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봤다. 중학생 때는 3시간짜리 버전으로 봤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는 2015년에 공개된 4시간 11분짜리 감독 확장판으로 감상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의심의 여지 없는 걸작이다.


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한 누들스의 시선을 따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이야기에 더해진 태산같은 연출.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까지 곁들인 영화를 모두 다 보고 난 후. 정말이지 하나의 인생을 살아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을 들여 누군가의 인생을 살아보는 영화적 체험. 영화라는 마법.


<오즈의 마법사>

다시 이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 “아, 이 영화는 영화에 관한 영화구나.” 그래서인지 꽤나 차갑게 느껴졌다. 고전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명장면. 쥬디 갈란드가 연기한 도로시가 문을 열고 오즈에 도착하는 순간. 이 영화의 세피아톤 세상은 컬러로 흠뻑 젖어 든다. 그러나 결국 모든 여정을 끝마친 도로시가 다시 캔자스로 돌아가는 마지막 순간. 다시 말해 꿈에서 현실로 돌아온 순간, 이 영화는 다시 세피아톤 세상으로 바뀐다.


<오즈의 마법사> 속 캔자스는 도로시의 현실이고, 오즈는 도로시의 환상, 곧 영화 예술에 대한 은유처럼 보인다. 결국 이 영화는 영화 예술의 화려한 색깔이 아닌 현실의 단조로운 색깔로 돌아와 끝이 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끝나기에 현실이 아닌, 영화가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 아닐까.


<사랑은 비를 타고>

이 영화에 대한 기억은 다소 평범했다. 그러나 다시 본 이 영화에서는 탁월함이 느껴졌다. 위대한 영화였구나. 배우들의 재능이 눈을 사로잡는다. 뮤지컬 시퀀스 속 이들의 재능은 개봉한 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반짝반짝 빛난다. 특히 도널드 오코너가 연기한 코즈모의 'Make 'em Laugh' 시퀀스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영화 전반에 걸친 코미디 역시 재기발랄하고 인상적이다.


괜스레 마음이 얹혔던 주말의 끝자락에서 이 사랑스러운 영화에 큰 빚을 졌다. <사랑은 비를 타고>는 아주 시의적절하게 지난 일요일 저녁 내 앞에 다시금 도착해 나만의 <사랑은 비를 타고>가 됐다. 이번에는 평범한 영화가 아닌, 아주 위대한 영화의 얼굴을 하고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는 것은 늘 즐거운 일이다. 처음으로 생방송을 챙겨보기 시작했던 게 벌써 10년도 지났다. 84회 시상식이었고, 당시에 난 <휴고>의 작품상과 <디센던트>의 조지 클루니가 남우주연상을 받기를 응원하며 봤었다. 시상식 종료 후에 동네 극장으로 뛰어가 작품상을 받았던 <아티스트>를 봤던 기억 역시 생생하다.


그런 오스카 시상식이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더 재밌어졌다. 94회 아카데미 시상식부터 함께 영화를 즐기는 친구들과 내기를 시작한 것이다. 5개 부문 예측에서 시작해, 올해는 총 11개 부문 예측까지 늘려 예측 내기를 했다.


그동안 한 번도 1등을 해보지 못했다. 소신을 가지고 ‘예측’이 아닌 ‘선택’을 했다. 그런데 올해는 꼭 1등이 하고 싶었다. 장난스럽게 꼴등은 ‘사형(?)’이라고까지 말한 만큼 반드시 1등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소신의 ‘선택’이 아닌, 빅 데이터를 활용해 치사한 ‘예측’을 했다. 비겁한 모습에 하늘에게 밉보였는지 꼴등을 해버렸다. 진짜로 억울하다.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이 나를 배신했다. 나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이미 한 번 죽은 몸. 내년엔 다시 소신의 선택으로 돌아가려 한다. 아주 고집스러운 영화 귀신이 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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