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티켓 가격으로 난리인 요즘이다. 개인적으로 일반관의 가격을 생각하면 아직까지는 비싸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긴 하다. 대신 영화 예술은 그 규모가 크든 작든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는 생각하는 편이다. 아이맥스니 돌비 아트모스니는 중요하지 않다. 스크린이 있는 공간에 관객을 받고 불을 끄는 것만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영화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곳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많은 영화를 극장에서 보려고 한다. 보고 나서 반드시 실망할 것이라는 확신이 서는 영화조차도 기꺼이 시간을 쏟을 만한 상황(동네 극장, 저녁 식사 후 적당한 시간)이 마련된다면 극장에 가서 보는 편이다.
여하간 이렇다 보니 지나간 영화들을 극장에서 즐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생기고는 한다. <대부> 같은 영화가 그렇다. 집에서 보면서도 전율이 이는 영화를 만약 극장에서 봤더라면. 그렇기에 재개봉하는 영화들도 웬만하면 극장에서 보려고 한다. 특히 정말 사랑하는 영화라면 더욱 그렇다.
21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희생> 4K 리마스터로 재개봉했다. <희생>은 1995년에 처음 우리나라에 개봉했다고 한다. 당시 국내 씨네필의 ‘필람’ 영화였던 <희생>은 서울에서만 11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희생>과 같은 아트하우스 영화가 그 시절에 11만 관객을 넘겼다는 점은 놀랍기 그지없다. 멀티플렉스의 보급이 완료된 현시점에서조차, 입소문을 탄 <추락의 해부>가 간신히 10만 관객을 넘었다는 점에서 미뤄보면 당시 <희생>의 흥행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말도 제대로 못 하던 시절이기에 당연히 필자는 그 시절의 <희생>을 알지 못한다. 나의 <희생>은 몇 해 전 여름 처음 완성됐다. 지금처럼 무더웠던 여름. 타르코프스키의 모든 장편 영화를 만났다. 만만한 영화들이 아닌 만큼,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그 여름에 방문을 꼭 닫고 <이반의 어린 시절>부터 <희생>을 탐닉하던 주간이었다.
그 시기를 통해 타르코프스키와 함께 그의 7편의 장편 영화를 모두 사랑하게 됐다. 그중 가장 사랑하는 영화는 <거울>(혹은 <스토커>일지도)이다. 하지만 타르코스프키의 필모그래피 가장 마지막을 장식한 <희생>의 무게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기에 거장의 유작으로 너무나도 적절해 보였던 <희생>으로 마무리했던 일주일의 마지막 역시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영화를, 아니 굳이 <희생>이 아니더라도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어떻게 가지 않을 수가 있겠나. 작은 상영관에서 본 <희생>.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번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생각을 분명히 했다. 몇 해 전 여름 처음 나에게로 왔던 <희생>은, 2024년 여름 다시금 ‘온전히’내 앞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