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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dermovie Oct 12. 2024

생애 첫 부산국제영화제

Day 1

내 생애 첫 영화제 참석에 사뭇 가슴이 설레던 첫날이었다. 어떤 영화를 볼 지 고르는 순간도 설렜다. 혼자 가는 게 아니었기에 더욱 신중히 선택했다. 그렇게 내 부산국제영화제 첫 영화로 고른 작품은 제시 아이젠버그가 연출한 <리얼 페인>이었다. 제시 아이젠버그를 좋아한다. 참 아기자기하게 연기하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그가 연출한 <리얼 페인>도 그의 연기처럼 아기자기한 영화였다. <리얼 페인>은 맥컬린 컬킨의 동생으로도 잘 알려진 키에란 컬킨과 연출과 함께 주연도 맡은 제시 아이젠버그의 연기 앙상블이 돋보이는 훌륭한 버디 무비인 동시에, 훌륭한 로드 무비였다. 무겁지 않고 마음의 안정을 주는 작품으로 일정의 시작을 알리기에 더없이 적절했다.


이후 해운대에 잡은 숙소에 체크인했다. 빠르게 정비하고 짐을 내린 후 다시 센텀 시티로 향했다. 이날의 두 번째 영화는 파라과이산 호러 영화 <출입금지>였다. 나름 많은 영화를 봤다고 자부하는 바이나, 파라과이 영화를 본 적은 없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들어가서는 안 되는 폐가에 들어간 주인공들이 겪는 일련의 사건을 다룬 뻔하디뻔한 호러 영화다. 가타부타 말할 것 없이 개인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는 영화였다. 그러나 첫날을 마무리하는 영화로 가볍게 보고 나올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만족했다.


첫날 저녁에는 대창을 먹었다. 부산에는 대창집에 참 많다. 당연히 소주도 빠질 수가 없는데, 첫 병은 대선이었다. 그런데 동행 뒤편으로 보이는 강알리라는 소주가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두 번째 병부터는 강알리를 마셨는데 괜찮았다. 대창도 ‘안정적인’ 맛을 자랑했다.


Day 2

둘째 날은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이르게 일어나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룸 넥스트 도어>를 보러 갔다. 같이 간 동행이 영화를 자주 보는 타입은 아니었기에 첫날은 가볍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영화를 선택했다. 그래도 영화제에 왔는데 이름난 거장의 영화 한 편 정도는 같이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두 편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둘째 날 첫 영화로 <룸 넥스트 도어>를 선택했다. 영화는 훌륭했다. 알모도바르 특유의 색감과 발작적인 유머는 역시나 인상적이었고,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물을 중심으로 풀어간 각본 또한 탁월했다. 틸다 스윈튼과 줄리안 무어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이 훌륭했다.


이날의 두 번째 영화는 저녁 8시였다. 시간이 붕 뜬 관계로 해운대에 있는 아쿠아리움에 갔다. 펭귄과 수달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리고 다시 영화의 전당으로 돌아와 야외 광장에서 진행된 오픈 토크에 참석했다. <잇츠 낫 미>를 보지는 못했지만,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오픈 토크를 어떻게 가지 않을 수 있나. 감독님을 볼 수 있는 날이 언제 또 올지 모른다. 감독님을 보며 신기해하랴, 통역하는 분의 통역 능력에 신기해하랴 정신없이 한 시간이 지나갔다. 행사 종료 후 횡단보도 초록 불을 기다리고 있는데, 내 등 뒤로 감독님이 지나갔다. 인기척도 없이 서 계셨던 것…따라가서 사인이라도 요청하고 싶었는데, 혼날 것 같은 중압감 때문에 바라만 봤다. 그래도 함께 횡단보도 건넌 사이도 나름 의미가 있잖아.


영화를 보고 그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참 즐겁다. 그게 그 영화에 대한 공통된 시선에 비롯된 이야기여도 좋고, 서로 상충하는 의견에서 비롯된 이야기여도 좋다. 브루노 뒤몽 감독의 <엠파이어>를 보고 나눈 이야기는 후자에 해당한다. 뒤몽 감독은 기본적으로 할리우드 장르 영화가 우습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웃긴 옷과 분장을 하고 쓸데없이 비장한 척하는 장르라고 바라보는 듯하다. <엠파이어>는 이에 대한 조롱과 풍자가 담겨있다. <스타워즈>와 <듄>을 깔아보는 이 영화는 슈퍼히어로가 마스크를 쓰는 것이 팬티스타킹을 얼굴에 쓰는 것과 같다고 말하며, 자극만을 노리는 맥락 없는 섹스신을 비판하는 것 등으로 할리우드 영화를 비웃는다. 문화 우월주의가 밑바탕에 깔린 만큼 다소 위험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선을 아득히 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꽤나 웃긴 것도 사실이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이 영화를 평가하는 저마다의 기준이 될 것 같다.


Day 3

부산국제영화제를 위한 부산 방문의 마지막 날. 함께 온 친구와 오전에 해동용궁사를 구경했다. 바다를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절의 모습이 장관이었다. 외국인 정말로 많았다. 여하간 바다 구경을 마치고 친구는 서울로 올라갔다. 그래서 마지막 날 두 편의 영화는 혼자 봤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그 여름의 시간들>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으며 가장 기대한 영화였다. 둘째 날 <룸 넥스트 도어> 사이에서 고민했던 영화가 바로 이 영화다. <그 여름의 시간들>은 팬데믹 동안 아사야스 감독이 겪은 일을 풀어낸 아주 개인적인 영화였다.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통해 관계에 대한 생각을 위트있게 전달한 작품이다. 거장의 뒷이야기와 개인적인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너무나도 만족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면서 또 다른 기대감이 생겼다. 나도 아사야스 감독이 연출하는 시대극 속 포르투갈 수녀를 연기하는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보고 싶다.


<그 여름의 시간들> 종료 후 곧바로 야외극장으로 향했다. 내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마지막 영화는 알렉스 갈랜드 감독의 <시빌 워>였다. <시빌 워>는 야외극장에 걸리기 적절한 영화라 느껴졌다. 갈랜드 감독은 그동안 초록색을 인상적으로 활용해 왔다. 갈랜드의 초록색에는 기괴함과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 <시빌 워>의 녹빛 자연 풍광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야외 극장을 감싸는 자연풍은 그 자연의 녹색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야외 극장 너머 도시에서 들리는 소음은 영화 속 시가지 전투와도 잘 어우러졌다. 


영화 자체도 훌륭했다. 근 미래, 다시 한번 내전이 발발한 미국. 서부군은 워싱턴 DC로 향한다. 갈랜드 감독은 미국의 서부 개척 신화를 동부로 진격하는 서부군의 모습으로 역재생시킨다. 다시 말해 서부군의 움직임을 통해 미국의 붕괴를 은유한다. 그 안에서 오직 현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해야 하는 기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해 관객들을 일종의 사회실험실 안으로 밀어 넣어 질문하게 한다. 그 안에서 탁월한 서스펜스를 이용해 장르적인 재미 역시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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