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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캉 Jun 06. 2022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

엄마의 젊음이라는 대가


  퇴사 후,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향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집의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니, 평소와 다름없이 엄마가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아빠는 침대에 누워 TV를 보며 밀려드는 잠에 잠겨가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말, '오는데 안 힘들었나, 배 안 고프나, 뭐 하나 먹을래?'라고 말 앞에 문득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내가 아는 엄마의 얼굴과는 멀어져 있는 얼굴이었다. 엄마의 얼굴을 자세히 본 적이 언제였을까. 그 시기가 언제쯤이었을까, 아니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본 적이 있었을까.


  내 기억 속, 그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눈 끝은 땅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고, 주름살은 크게 얼굴을 덮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등은 점점 굽어가고 있었고, 이십여 년 해온 장사의 피로감이 다리에 몰려 다리는 부어있었다. 점점 내 기억 속, 외할머니와 비슷하게 되어가고 있는 모습이 이제야, 내 눈에 띄었다. 어쩌면 나는 엄마의 젊음이 영속적인 것으로 알고 수능 공부가 힘들다는 이유로, 대학 과제가 많다는 이유로, 일이 고되고 힘들다는 이유로 엄마의 힘듦을 도외시하고 있었나 보다.


  지금도 그렇지만, 학창 시절 우리 집은 그렇게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엄마는 더 악착같이 일을 했다. 고모의 가게일을 도우면서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혹은 더 긴 시간 동안의 노동을 하며 나를 키웠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그 힘든 노동을 끝내고 오는 길에는 항상 나한테 전화를 했다. '뭐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나는 대부분 피자빵이 먹고 싶다고 했다. 우리 동네 빵집의 명물이었던 기다란 베이컨이 들어가 있는 피자빵이었는데, 엄마가 퇴근할 시간 즈음에는 거의 재고가 남아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항상 엄마는 미안한 마음에 다른 종류의 피자빵을 사 오곤 했다. 철이 없었던 나는 그 피자빵에 어떤 의미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뾰로통한 표정으로 다른 피자빵을 한입 베어 물고는 맛없다고는 먹지도 않았다. 그 남은 피자빵을 '맛만 좋구먼.'이라며 엄마는 쓱쓱 다 먹었었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나는 엄마에 대한 보상 심리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주말에도 같이 점심, 저녁을 먹지 못하고 항상 혼자 저녁을 먹었던 나니까, 엄마한테는 어떤 걸 다 요구해도 되는 게 아닐까. 엄마는 내가 어떤 걸 요구해도 다 들어줘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런 내 보상심리는 나에게는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엄마에게는 정말로 큰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엄마조차도 안정적인 상황이 아니었던 그때, 책임져야 하는 아들이 한 명 있었으니, 경제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부담과 고통의 흔적이 이제야 엄마 얼굴의 표면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 지난한 대가를 이제야 지불하고 있다. 그것도 모른 채 나는 지금껏 살아오고 있었다. 아니 근본적으로 내가 무엇을 대가로 자라났는지에 대한 것도 생각하지 모른 채, 나는 지금껏 살아왔다. 엄마의 젊음을 대가로 나는 너무나 많은걸 누려왔다. 내가 누리고 있는 그 일상의 모든 것이 전부 다 엄마의 젊음이었고, 시간이었고, 인생이었다. 2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나를 낳아 인생의 절반을 나에게 쏟아부었다. 참 대단한 어른이고 사람이다. 나였다면 짊어지지도 않았을, 짊어질 수도 없을 그 무게를 나에게 짊어주지 않으려 얼마나 고된 노력을 해왔을지, 그 힘듦을 얼마나 참았을지 가늠을 할 수가 없다. 그 가늠할 수 없는 무게를 고스란히 엄마가 짊어졌고 이제야 엄마의 얼굴 전체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나이를 먹은 엄마의 얼굴이 너무 슬펐다. 이렇게 늙어간다는 것이 슬펐다. 아직 무언가를 이뤄내지도 못한 나이기에 더 슬펐다. 괜히 엄마의 젊음을 쓰지 않아도 될 곳에 쓰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어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엄마에게 작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 하나부터 해주려고 한다. 하나하나 해가면서, 넓혀가야겠다. 그 흔한 여행 한 번 제대로 가고 싶기도 하고, 언젠가 유럽 여행도 보내드려야겠다. 사랑한다는 말이 쑥스럽고 부끄러워서 초등학생 이후로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아들이지만, 내 나름대로의 사랑한다는 표현과 행동을 자주 해드려야겠다고 다짐하는 하루이다.

수욕정이풍부지(止)

- 나무는 고요하게 있고 싶어 하나, 바람은 그치지 않고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

- 자식은 부모를 부양하려하나 부모는 연로하여 기다려 주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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