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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캉 Jun 12. 2022

매력적인 빌런이어야 기억에 남는다.

헌터X헌터 좋아하세요?

  2019년 봄, 나는 학교에서 '극'에 대해서 배우고 있었다. 극의 요소, 장르, 종류, 발전의 형태 등 '극'의 기본에 대해 배웠다. 이 수업에서 배운 개념 중 하나가 주동인물과 반동 인물이었는데, 주동인물이란 흔히 말하는 주인공이며, 작가가 의도하는 주제의 방향에 따르는 인물이다. 이에 반해, 반동 인물은 그의 180도에 위치해있는 주동인물의 의지에 완전히 반하는 인물이다. 이 두 축의 갈등으로 인해 극을 비롯한 대부분의 문학 작품은 이야기를 진행하고,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뤄낸다.

  대부분의 사람은 반동 인물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다른 이름으로 더 사람들에게 친숙해져 있다. '빌런'은 반동 인물의 또 다른 이름이다. 몇 해 전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빌런이라는 단어가 드라마, 영화, 소설, 게임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꼭 등장하고 있다. '역대급 빌런'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대표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 단어가 많이 유행하기 시작했을까.


  뭐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조사한 바로는 마블 '어벤저스'의 흥행과 함께 악당이라는 단어가 번역되지 않고 '빌런'으로 쓰이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면서 대중도 빌런과 많이 친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작품에서 반동 인물을 지칭하는 말을 넘어서 현실 속에서 특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 무언가에 굉장한 집착을 보이는 사람 등을 지칭하기도 한다. 예시로 '우리 학교 학식 빌런, 우리 회사 회의 빌런, 우리 아파트 쿵쿵 빌런' 등이 있다.


  이전, 많은 작품 속 빌런은 주동인물을 돋보이게 해 주기 위한 장치라는 성격이 컸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무리 주인공이 매력적이어도 빌런의 매력도가 떨어지면 작품 전체의 힘이 떨어지는 추세가 되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DC코믹스 영화를 보면 전부 다 그렇다. '저스티스 리그'에는 강한 히어로들(주동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플래쉬 등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있고, 그 힘이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반동 인물이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머릿속에 한 줌도 그것에 관한 기억이 남아있지 않다. 그들은 어떠한 철학에 근거하여 움직이는 것이 아닌, 그저 주동인물을 돋보이게 하려는 '반동 인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중이 열광하는 매력적인 빌런이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빌런을 생각해보자면, '다크나이트'의 조커, '어벤저스'의 타노스가 처음 떠오른다.

  오히려, 주동인물보다 더 존재감이 컸던 두 빌런들은 각각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조커는 '무질서'라는 철학, 타노스는 '인구를 1/2로 줄여 모든 생명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라는 철학을 지니고 행동한다. 그래서 조커는 배트맨이 지키려는 고담시의 질서를 무참히 흔들기 위해, 이것도 했다가 저것도 했다가, 배트맨과 사람들의 목숨을 건 게임도 했다가, 질서의 상징인 하비덴트를 무질서의 상징인 투페이스로 바꿔놓기도 했다. 영화 상에서 조커가 보여주는 일관적인 모습은 자신의 철학을 배트맨의 철학보다 매력적으로 보이게까지 했다. 역설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타노스는 '무작위'로 전우주의 인구 1/2을 없앤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추구하는 점이 '모든 이의 행복'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철학은 매력적이었다. 물론, 방법은 그렇지 않았지만.


  이렇게 빌런은 그들이 지닌 철학으로도 매력을 지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매력적은 빌런은 '성장하는 빌런'이다. 그 빌런은 '헌터X헌터'라는 만화의 '메르엠'이다. 처음, 이 빌런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단순히 주인공의 앞을 방해하고 저지하는 전형적인 드래곤볼 식의 악당(반동 인물)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만화의 스토리가 진행되면 될수록 결이 다른 빌런이라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메르엠이라는 빌런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생각하는, 마치 주인공과 같은 존재, 아니 그보다 더 위에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만화의 설정 상 키매라앤트라는 곤충의 왕으로 태어난 '메르엠'이라는 빌런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빌런으로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흔한 빌런들이 그렇듯 그 힘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려고 한다. 목숨을 살려달라는 인간의 말에 '모자란 뇌를 최대한 굴려 잘~ 생각해봐라. 너희는 목숨을 구걸하는 소, 돼지에게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있는가?'라고 답하는 메르엠의 모습은 기존 빌런의 모습을 답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의 똑똑한 작가 '토가시'는 앞을 볼 수 없는 소녀 '코무기'라는 인물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매력 없는 빌런을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시작한다. 전 세계를 정복하기에 앞서서 군대를 조직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인간이 만든 게임(예를 들어 바둑, 체스, 장기 등)의 챔피언들과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수많은 게임의 중 '군의'의 챔피언이 바로 코무기이다. 이전의 챔피언들을 모두 단시간에 이겨버린 왕 메르엠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코무기에게는 단 한 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한 번도 이기지 못하는 승부에서 메르엠은 오히려 재미를 느끼게 되고, 매판을 거듭하여 성장하는 코무기라는 하찮은 인간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된다. 다른 인간들에게는 한 번도 묻지 않은 '이름'을 직접 물어보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이에, 코무기는 왕의 이름을 되물었지만 그제서야 왕은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는 존재임을 자각하게 된다. 나아가 '자신은 누구인가'라는 아주 철학적인 의문을 품게 된다. 그리고 앞이 보이지 않는 하찮은 존재 '코무기'가 '군의'라는 게임에 있어서는 자신보다 더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지금까지 하찮게만 여겨왔던 인간의 존재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기까지 한다. '코무기를 만나고... 강함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가령 이곳에 오는 길에 나는, 어린아이를 죽였다. 그 아이도 어쩌면, 어떤 분야에서 나를 능가하는 재주를 갖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 싹을... 나는 꺾었다.'

  이렇게 코무기와의 만남으로부터 파생된 여러 질문은 순수악, '메르엠'의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그의 존재가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에 대한 생각으로까지 연결되었다. 모든 것 위에 군림하기 위해 강력한 힘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것이 자신의 존재의 의미인가라는 생각은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나는 왕이다. 그런데 나는, 누구지? 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난 거지...? 이름도 없는 왕, 남의 성, 눈 아래 모여든 것은, 의지라곤 없는 인형.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천명이라면. 이 얼마나 따분한가.' 

  이렇게 내면의 변화가 시작되어가던 와중, 메르엠의 범세계적인 침략을 막기 위해 헌터협회 회장 네테로의 침투가 이어지면서 죄 없고 나약한 '코무기'는 큰 상처를 입게 되었고, 코무기를 치료하기 위해, 메르엠은 자신이 머물던 왕궁에서 먼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네테로와의 일방적인 싸움에서 승리하여 자신의 이름이 '메르엠'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는 감회에 빠질 틈도 없이, 핵폭탄에 의해 반죽음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후, 그의 부하들에 의해 극적으로 살아나게 되고, 큰 충격으로 인해 기억의 일부분을 잃고 만다. 그 부분은 '코무기'였으며, 부하들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 사실을 왕이 알지 못하게 하려 노력하지만 결국, 왕은 코무기를 기억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메르엠은 다시 코무기를 만나게 되고, 그들은 군의를 함께 두며 인생의 마지막 종착점에 도착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이 자신이 태어난 이유라는 사실을 함께 깨달으며 말이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으면 됩니당. 이 장면은 그냥 말풍선만으로도 전체적인 분위기를 정말 잘 살린 느낌이다.

 

  헌터X헌터 속 메르엠은 분명한 악인이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모든 것을 지배하겠다는 그의 사상조차도 매우 악하다. 하지만 그가 매력적인 빌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변화하며, 성장해나가는 인물이었다는 데에 있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하며, 다른 인간과 똑같은 고민을 하기 시작하며 그는 독자가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어떤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화룡점정으로 '코무기'와의 관계를 통해 그도 관계의 결핍을 지니고 있는 한 주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안 순간, 독자들은 메르엠의 마지막 최후에서 눈물을 떨어트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처음 등장과 마지막 퇴장이 이토록 다른 빌런이 있을 수 있음을 헌터X헌터 작가 토가시는 '메르엠'이라는 입체적인 인물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렸다. 또한, 그 퇴장조차 너무나도 아름답게, 슬프게 표현했기에 메르엠의 뜻, '모든 것을 비추는 빛'처럼 독자들의 머릿속에 손에 꼽히는 빌런으로 기억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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