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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플로우 Jul 23. 2022

인사이트를 찾기 위한 여정

인사이트가 없는 인생은 반쪽짜리 인생이다.

  여러분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만, 수년 전부터 저는 이 질문에 대해 항상 같은 대답을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사이트’ 라고요.

물론 워낙 유명한 단어라서 딱히 참신한 대답이 아닌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인사이트’라는 단어는 무슨 뜻인가요? 우선 이 단어는 외래어가 아니라 외국어임은 확실해 보입니다. 영단어 ‘insight’, 사전을 찾아보면 ‘통찰력’이라고 뜻풀이가 되어 있습니다. 통찰, 즉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통찰력이라, 인생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첫 직업을 의사로서 시작한 제게 인사이트라는 단어는 단순히 수능 영단어가 아닌 의학용어입니다. 즉, ‘통찰력’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의료인이라면 바로 눈치채셨겠지만, 세상에는 의료와 관련 없는 훌륭한 직업을 가진 분들이 훨씬 다양하기 때문에 간단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의학용어 ‘인사이트’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사이트(insight): 병식(病識), 현재 자신이 병에 걸려있다는 자각


  병식, 즉 협의로는 본인의 병에 대한 인식, 광의로는 본인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인식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주로 정신과에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단순한 예를 들자면,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을 받은 이후로는 대부분 스스로가 우울증임을 인식하게 됩니다. 즉, 본인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인사이트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 의지를 가지고 처방받은 약도 자발적으로 복용합니다.


  하지만 고착된 망상을 가지고 있는 망상장애 환자는 인사이트가 없습니다. 아무리 논리적, 실제적인 증거를 제시해주어도 본인의 배우자가 수 년째 바람을 피운다는 등의 망상은 점점 확고해집니다. 환청, 환시 등이 수시로 나타나는 조현병 환자 같은 경우에도 본인의 상태에 대한 인사이트가 없습니다. 즉, 이들은 망상이나 환청이 허상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본인이 느끼는 것만을 진실로 받아들여 현실과는 동떨어진 인식을 하게 됩니다.  즉, 여러분이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하든, 만약 인사이트가 없다면 모두 현실 상황에 맞지 않는 기행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인사이트 없는 녀석', 이거 의사들끼리는 굉장한 욕설입니다.


  설명이 길었습니다만,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저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사이트’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아직 젊으셔서 심각한 지병이 있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고 저 역시 꽤나 건강합니다만, 단순히 질병에 대한 인사이트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 스스로가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한 인사이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본인 인생에 대한 냉철한 인사이트를 가지고 있어야 본인의 현재 상태를 파악하고 미래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 통장 잔고가 100만 원뿐인 대학생이 영어 과외를 열심히 해서 3년 안에 반포자이 아파트를 사겠다는 목표는 현실적인 인사이트가 없는 허황된 목표일 가능성이 크죠.


  공중보건의사로 발령을 받아 충남의 한 시골 동네에 내려온 지 벌써 2년 차, 제 근무지는 나름 군(郡)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인 읍내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음에도 도시 생활만 26년을 했던 저에게는 약간의 공허함이 있습니다. 읍내는 시내에 비하면 다소 아쉽습니다. 부동산 입지를 보려면 맥도날드와 스타벅스의 입점 여부를 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제가 일하는 군의 면적은 서울시 면적에 버금가지만, 지역 전체를 통틀어서 맥도날드와 스타벅스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독감 예방접종 시즌을 제외하면 일일 진료 환자 수가 많지 않고, 충청도 주민들 특유의 여유로운 성격이 받쳐주니 하루하루 마음이 편안하긴 합니다. 대학병원에서 밤을 새우며 일을 할 때처럼 몸을 혹사시킬 일도 없고, 교수님의 사자후를 들을까 봐 매 순간 눈치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군 복무라서 3년 1개월을 채우기 전에는 도중에 근무를 그만둘 수 없지만, 이 정도 편안함이면 안빈낙도 차원에서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처음에는 이러한 몸의 편안함이 마음의 불편함으로 등가교환되었습니다. 항상 공부나 일을 하며 바쁘게 살고 우등생이 되는 것이 덕목이라고 생각하며 특등 노예로 살아왔던 저에게, 갑자기 생긴 강제적 시간 여유는 자산이 아닌 거대한 부채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게 '워라밸'은 중요한 가치가 아닙니다. 마냥 마음 편히 놀면서 보내기에 3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도 긴 시간이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3년이면 거의 대학교를 한번 더 다닐 수 있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이내 다짐했습니다. 자산과 부채의 차이는 결국 미래에 창출 가능한 가치로부터 구분됩니다. 주어진 여유시간에 예능 프로그램이나 몰아보며 3년을 보내면 그 시간은 부채가 될 수 있지만, 동일한 시간에 의미 있는 공부와 자기 계발을 하면 언젠가 보상받을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며칠 내로 저는 정신을 차리고 닥치는 대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하루 종일 공부를 하는 것은 익숙하기에, 처음에는 변호사시험, 공인중개사 자격증, 중국어 급수 등 공식적으로 인정이 되는 자격증 공부를 해볼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전문지식에 제 인사이트를 스스로 가두는 행위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교과서는 특정 분야의 전문지식을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지만, 일부 비범하신 분들과는 달리 저의 두뇌 용량은 한계가 있기에 교과서를 보며 전문지식을 습득한 만큼 세상을 보는 안목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깔끔히 인정했습니다. 어느 분야든 교과서는 과감히 버리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무턱대고 경제, 시사, 정치, 지정학, 부동산, 인문학, 과학 등의 시중 책을 탐독하며 삶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약 1년 동안 수십 권의 책을 읽고, 십수 편의 강의를 듣고, 수백 편의 영상자료를 보며 인생에 대한 인사이트 자체가 확장되었습니다. 가치관과 목표 역시 바뀌게 되었습니다. 저도 한때는 누구보다 잘 나가는 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소위 인기과에 가서 병원을 크게 차려 돈을 쓸어 담고 멋진 가운을 입은 사진을 프로필로 걸고 슈퍼카 사진을 인스타에 올리는, 그런 전형적인 겉멋쟁이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세상 공부를 하니 알겠더군요, 적어도 90년대생 의사로서 그것은 이룰 수 없는 허상일 뿐이고, 설사 그러한 삶이 허상이 아닐지언정 그런 어리석은 목표는 절대 세워서도, 달성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표면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돈을 뿌리며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라는 사실은 경제학에서의 ‘시간’과 ‘부채' 개념만 알아도 누구나 알 법한 내용이지만, 실제로 제 또래 의사들 중에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교과서와 족보 안에만 갇혀있던 전문직 청년이 황금빛 미래를 보장해주겠다고 속삭이는 신기루를 외면하고 실제 세상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입니다.


  어쨌든 진지한 자세로 공부를 거듭하며 나름 인사이트가 장착된 저는, 어느덧 기회만 된다면 공중보건의사로서 군 복무가 끝나는 대로 ‘의료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싶다’라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나름 날카로운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시중에 나온 책으로, 그리고 몇몇 경험자들이 공개한 영상자료로 스타트업에 대한 공부도 꽤나 했습니다. 시골 보건소의 의사는 바쁜 대기업 직원과는 달리 진료시간에도 틈틈이 공부할 여유시간이 많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아, 의료 스타트업.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멋진 목표입니다.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빨간 약을 매일 하나씩 먹는 것만 같습니다. 이제 후드티와 청바지만 사면 되는 걸까요? 하지만, 스타트업을 진지하게 고민할수록 어느새 피해 갈 수 없는 질문에 스스로 직면했습니다. ‘그래서 그걸 어떻게 할 건데?’


  모릅니다. 이제 좀 알겠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저를 스타트업에 기꺼이 채용해준다면 몰라도, 제가 직접 창업하려 하니 덜컥 겁이 납니다. 아직 군 복무도 마치지 않은 20대 후반의 미생이 아직 창업 경험이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지만, 저는 스타트업은 커녕 일반적인 회사의 사무실에서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일하고 대화하는지도 모릅니다. 병원 내의 문화는 어느 정도 알아도, 기업 직장인들의 문화는 전혀 모릅니다. 설사 스타트업을 차릴지언정 코딩, 빅데이터 등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제가 팀 내에서 고작 의사면허 한 장 들고 무슨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개발자와 디자이너분들이 일을 열심히 하다가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두통약쯤은 추천해줄 수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스타트업 대표의 역할로서는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물론 모르면 물어보는 것이 도리입니다. 그러나 저는 어디 물어볼 데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아직 대학원에 다니며 무서운 교수님 수발을 드는, 월급 한번 받아본 적 없는 친구들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면 팔자 좋다는 핀잔만 들을 겁니다. 사실, 솔직히 이런 친구들도 몇 명 없습니다. 제 친한 친구와 지인들 중 9할은 의사입니다. 지방대 출신 의사의 서러움이라고 스스로 위로는 하지만, 강호는 만만치 않다는 것을 거듭 깨달았습니다. 그냥 괜한 짓 말고 대학병원 레지던트로 취직해서 의사로서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몇 번 들었습니다.


  하지만 평생 임상의사로서 진료만 하고 사는 미래는 제 마음속 열정과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실패할지언정 꼭 창업을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위와 같이 무언가를 책으로만 배울 수 있는 인사이트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실제 세상, 즉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실전을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제 여건상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다소 제한적이고, 제가 기존에 속한 커뮤니티는 대부분 대학병원의 의사들로만 이루어져 있으니 인사이트의 확장이 어느 순간 멈춰버렸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고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받으러 진료실에 오시는 일면식도 없는 김 영감님께 갑자기 스타트업 창업을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한마디로 현재 저의 상황은 자기소개란에 <취미: 독서> 정도로만 적을 수 있는 독서 동호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현실적인 인사이트가 생기더군요. 취미가 독서인 의사, 그게 바로 제 병명이며,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싶다는 망상이 1년째 고착화되었는데 제게 그것을 깨달은 인사이트가 없던 걸지도 모릅니다. 과연 저의 열정은 망상이었던 걸까요, 아니면 정말로 실현 가능한 목표였던 걸까요?


  다행히 적시에 명의의 진료와 처방을 받았습니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친구 중 저보다 똑똑한 어떤 친구가 있습니다. 다행히 그에게는 저의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었고, 몇 주간 카톡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제게 '창업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려면 창업을 한 사람들과 대화를 해 보아야 한다. 창업 모임에 참여해보아라'라는 조언을 해주더군요. 덕분에 한 창업 관련 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느낌이 좋았습니다. 비용도 무료네요. 원체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파하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리고 주변으로부터 배우는 것은 더 좋아합니다. 이렇듯 무엇보다도 여러 사람을 만나서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것이 절실했던 저에게 그 모임은 하나의 큰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 충분하고 감사한 기회였습니다. 따라서 주저 없이 참여를 결정했습니다.


  단순히 전화번호부를 늘리고 일상에 루틴을 하나 추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위와 같은 절실한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모임에 참여하다 보니 다짐과 설렘 역시 충만한 상태로 모임에서 3개월 정도의 한 기수를 마무리했습니다. 물론 당시는 유동성 확대로 인해 스타트업 현장에 시중의 돈과 관심이 모두 쏠린 호황기였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을 기점으로는 스타트업 업계의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이로부터 단순한 욕심은 내려놓고 또 다른 인사이트를 얻긴 했지만, 매우 의미 있는 경험을 하게 된 것 같아 앞으로 차차 그 인사이트를 공유해보려 합니다.


  이처럼 저는 인생은 각자만의 인사이트를 확립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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