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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플로우 Jul 23. 2022

ESTJ가 바라본 MBTI와 샤머니즘

한국인들이 MBTI와 사주에 열광하는 이유


  대략 2년쯤 전부터 우리나라 MZ세대를 중심으로 MBTI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확한 시기를 알고 싶어 구글 트렌드를 체크해보니 ‘MBTI’ 키워드에 대한 검색량이 2020년 3월부터 6월 사이에 급상승하며 피크를 찍었고, 그 이후도 계속 상승 추세이다. 나 역시 2014년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이미 정식 MBTI 검사를 해 본 적이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사람들의 관심도가 올라가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아무래도 개개인의 성격과 가치관 특성을 16개 유형으로 분석해주니 내용 자체가 흥미로울 만하다. 물론 완벽한 이론이 아니기에 무조건적으로 맹신해서는 안 되고 맞지 않는 부분도 많겠지만, 적어도 인터넷으로 약식 검사를 한 것이 아닌 정식 검사자를 기준으로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분석이니 충분히 유의미한 의의가 있다고 본다. 요즘은 첫 만남에서 ‘OO님은 MBTI가 뭐예요?’라고 묻는 경우가 많으며, 오히려 본인의 MBTI를 자기소개에 먼저 밝히는 사람들도 많은 듯하다.


  그러나 MBTI보다 더 오랜 시간 전부터 우리의 마음속 깊숙이 침투해 있던 것이 있다. 바로 사주팔자다. 나는 MBTI에 열광하는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MBTI 결과를 통해 본인의 특성과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인사이트를 챙겨 자기 계발의 기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주의 경우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물론 사람들을 보다 보면 정말 ‘팔자’라는 게 있어 보이는 듯한 경우가 많긴 하다. 소위 ‘뭘 해도 잘 되는 사람’과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은 종종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팔자가 생년월일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와 달리 사주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본인의 생년월일시가 본인의 인생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본인의 연애 및 결혼 상대를 고르는 기준이라 생각하며 이를 맹신하는 것일까? 그래서 비싼 돈과 소중한 시간을 써가며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고, 틈 날 때마다 사주 분석 앱을 켜며 오늘의 운세를 보는 것일까?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명실공히 전 세계 1위다. 2위인 캐나다와의 격차도 정말 크다. 각자 입학 시 수능점수와 전공, 그리고 졸업 시 학점은 천차만별이지만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게 되는 요소들이 있다. 바로 ‘문해력'이다. 문해력은 조직화된 사회에서 개인과 국가의 발전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독일의 문해력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그 문해력을 바탕으로 고도의 조직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가능했으며 다른 국가들에서 최소 수백 년씩 걸렸던 산업화를 불과 수십 년 만에 이루어내어 철도를 깔고 탱크와 잠수함을 만들어 지구의 근현대사를 무시무시한 내용으로 가득 채웠다. 독일의 문해력은 지금도 매우 높다. 그러한 독일보다도 대학 진학률이 훨씬 높은 우리나라에서 대졸자들을 기준으로 본인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진정으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학, 과학과 사주는 결코 공존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사주에 열광하게 만들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나라 국민들 정체성의 본질에 샤머니즘이 굉장히 만연하게 깔려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 생각한다.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결코 나쁜 뜻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샤머니즘이라 표현한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를 살펴보자. 미국의 공식 표어는 ‘In God we trust(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이며,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 국가들은 ‘알라 이외의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이다’라는 뿌리 깊은 강인한 표어가 국가정체성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사실 일본의 표어는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천황이 항상 존재하며, 그는 종종 드라마 등의 매체에서 희화화되거나 비판적으로 다루어지는 영국 왕실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나라의 큰 어른으로서 근간을 형성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어떠할지 살펴보자. 일단 우리나라는 종교를 바탕으로 세워진 국가가 아니다. 그렇다고 왕실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근간을 이루는 표어는 무엇인가? 잘 모르겠어서 호기심에 ‘국가별 표어 목록'을 검색해보니 대한민국의 표어는 ‘홍익인간'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홍익인간이라, 글쎄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은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하루하루 일상을 영위하지는 않는다. 또한 애국가에는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가사가 명확히 들어있지만, 우리나라는 개신교와 천주교 신자를 합쳐도 30%가 되지 않으며, 불교 신자도 꽤 많은데 애국가에 부처님 말씀은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대한민국은 50% 이상이 무교로 집계되는 나라이다. 한 마디로 국가 표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차라리 위클리로 사주를 체크하는 샤머니즘이 국민들의 정체성 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며,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그에 헌법과 종교보다도 더 큰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나는 무교지만 종교에 관심이 매우 많으며 모든 종교를 존중한다. 다만 기독교 신자분들이 제사상에 절은 하지 않아도 가끔 사주는 보러 가는 것 같아서, 심지어 그걸 꽤나 믿는 것 같아서 흥미로울 뿐이다.


  대학 진학률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고, 과학적 사고력과 문해력이 가장 높아야만 할 나라의 근간이 샤머니즘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거듭 말하지만 이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애초에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150명 이상의 사람을 한 집단에 조직화하려면 그들을 하나로 묶을 개념이 필요하다고 소개했다. 그것이 신이든, 천황이든, 샤머니즘이든. 이러한 허구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 조직화는 현생인류가 더 크고 강한 네안데르탈인을 물리치는 힘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샤머니즘은 우리나라를 5천 년 이상 유지시켜온 국가정체성 중 하나이며, 다윈의 적자생존 이론에 따르면 어찌 되었든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기조에 잘 적응한 개체와 가문들이 살아남아 현대 대한민국 국민들의 유전자 조합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본인 역시 사주를 보는 것은 결코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나도 본 적이 있다. 충분히 흥미롭다. 재밌기 때문에 일정 비용도 지불할 만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맞는 말도 많다. 사주에서 좋은 내용은 취하여 실천하고, 나쁜 내용은 알아서 걸러 듣거나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발판으로 삼는다면 그보다 더한 자기 계발 기회도 없을 것이다. 다만 안타까운 부분은, 이를 너무 맹신하거나 악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실태이다. 인생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순간에 사주쟁이의 말만 믿고 직업을 선택하거나, 일이 잘 안 풀리는 사람의 문제를 특정한 타인의 탓으로 돌리거나 사주의 탓으로 돌리며 듣기 좋은 소리를 해주고 거액의 돈을 취하는 점쟁이들은 분명 개개인과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이쯤에서 최근에 MBTI가 유행하는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적어도 MBTI는 사주와 달리 생년월일시 같은 불변의 요소가 아닌, 잘 정제된 문항에 대한 답변을 바탕으로 분석해주어 개개인에게 흥미를 제공해주고 긍정적 영향도 끼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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