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도연 Feb 07. 2022

일류 아티스트가 될 수 있는 비법

세상 만물의 형태가 다양하듯 공연의 형태 역시 다양하다. 페스티벌, 내한공연, 지자체 연계 공연, 자체 기획공연, 단독공연, 합동 공연, 국내 투어, 해외투어 기타 등등. 여기에 더해 관여하는 역할에 따라서도 성격이 크게 달라진다. 주관/주최를 전부 일임하는지, 투어를 짜주는지(Booking), 기획만 얹는 것인지 실행까지 함께하는지, 섭외만 전담하는지 등. Highjinkx(구-두인디)를 하는 동안 사기업 브랜드, 지자체, 공공기관, 프리랜서 기획자, 프로모터, 공연장, 뮤지션 등 다양한 국내외 파트너들과 함께 각종 이벤트를 진행하였고 그만큼 많은 수의 아티스트를 만났다. 어림잡아 수백 팀의 아티스트와 함께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판단하기 전에 인지되는 부분이 늘어나게 되었다.


음악성이라고 할 수 있는 재능의 영역은 어떻게 보면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재능이 부재하다면 관객을 불러올 수가 없고 들어주는 이가 없다면 아티스트라고 이름하기 어렵다. 따라서 그 부분을 제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Attitude)’라고 믿는다. 공연을 함께 준비하고 실행하면 아티스트의 태도가 선명히 읽히고 만다. 가령 리허설 및 스케줄에 늦는지 안 늦는지, 공연을 준비해 준 기획자들을 무대 위에서 언급하는지 안 하는지 무대가 종료되고 자신의 공연 제작을 도운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지 않는지 오프닝 뮤지션의 공연을 보는지 안 보는지 등에서 드러난다.


분명 어느 영역에서나 마찬가지일 텐데, ‘일류는 모든 부분에서 일류라는 사실은 거의 명문화된 진리이다. 으레 슈퍼스타는 거만하고 주변이 보이지 않는 사람일 거라 생각하기 쉽겠지만, 경험상 많은 성취를 이룬 음악가일수록 더욱더 감탄스러운 태도를 갖고 있었다. 공통으로 자신의 영역을 돕는 사람들의 역할에 대해 분명히 이해하고 있으며, 따뜻하고 친절한 태도로 감사함을 표할  알았다. ‘괜히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구나.’라는 마음이 절로 들고야 만다.


그렇기 때문에 네임밸류가 높은 아티스트와 일할수록 더 크고 귀한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된다.

아직도 인상에 가장 크게 박힌, 섬세함이라는 단어로만 표현할 수 있는 태도를 보여준 아티스트는 미츠키(Mitski)이다. 미츠키는 미국 인디 뮤지션으로 어머니가 일본계이다. 다소 펑크 느낌을 주는 인디록 음악을 하는데 만일 미츠키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본다면 꼭 한번 음악을 들어보라 말하고 싶다. 공연이 있던 2019년 미츠키는 연초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Album of the year, Artist of the year 같은 최고의 음악/뮤지션 목록에서 1, 2, 3위를 모두 석권하며 크게 주목을 받았다. ‘타임즈(Times)’, ‘피치포크(Pitchfork)’같은 권위의 미디어들 선택이었는데 특히 여성이라는 점도 돋보였다. 모든 타 분야와 마찬가지로 여성도 음악산업계에서 저평가되기 때문이다.


Highjinkx의 모든 공연은 한국 아티스트를 오프닝으로 세운다. 그것은 우리의 원칙과 같은데, 수백에서 수천 모객이 가능한 공연 무대에서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기회는 정말 귀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오프닝을 누구를 세워도 모객에 미치는 영향은 정말 미미하다. 그렇지만 실력보다 아직 유명세가 부족한 아티스트에게는 단 15분이라도 그런 자리에 선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또한 큰 아티스트가 한국에 오면 신(Scene)에 대한 기여를 하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츠키 때는 특히 오프닝을 원하며 우리에게 어필을 해왔던 아티스트가 유독 많았던 공연이다. 그리고 오프닝으로 우리는 애리(Airy)를 모셨다. 당시 전화를 걸어 미츠키 오프닝 공연을 서달라고 부탁하자마자, 믿을 수 없다며 휴대폰 너머로 수십초간 행복의 비명을 지르는 것으로 기분을 표현했던 그를 기억한다.


꽉 찬 공연장에서 몹시 인상적인 공연을 펼치던 미츠키가 마이크를 잡고 공연을 준비해준 기획사 측에 고마움을 표하면서 애리를 언급하였다. 애리라는 멋진 아티스트가 오프닝을 맡아주어서 정말 고마웠고 뜻깊었으며, 부스에서 애리의 CD를 팔고 있으니 꼭 관심을 두고 들여다봐달라고 했다. 오랫동안 공연기획을 해온 내게도 굉장히 강렬하게 남아 있는 기억인데, 수많은 아티스트와 공연을 해보았지만, 오프닝 아티스트의 음반을 구매해달라고 말하는 아티스트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Nobody’라는 곡이 담긴 앨범을 발매하며 엄청난 주목을 얻게 되었지만 사실 미츠키는 오랫동안 인디 뮤지션 활동을 해온 아티스트다. 명성을 얻기 전 DIY 시절을 거친 아티스트로서, 오프닝 아티스트를 언급하는 일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높은 위치에 와서도 그런 세심함을 결코 잊지 않았던 것이다. 미츠키와의 공연을 만드는 모든 것이 좋았지만 이 일 때문에 그녀를 더욱더 남다르게 기억하고 있다. 애리는 그해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헬로루키 대상을 수상하였다.


몇년 전 에스토니아에서 온 밴드 I Wear* Experiment와 다소 일정이 타이트한 투어 일정을 수행중이었다. 보컬 요한나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을 때 “우린 힘들다고 말하면 안된다. 많은 에스토니아의 뛰어난 팀들이 해외 투어를 가고 싶어하는데 다들 하진 못한다. 우리는 운 좋게도 그런 기회를 만들었고 그저 감사한 기회이기 때문에 즐겁게 하고 있다”라고 대답을 했다. 그녀는 매번 무대 위에서 공연을 만들어 준 우리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던 뮤지션이기도 하다.


내 직업은 아티스트 이전에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에 하나하나의 경험이 별개로 박힌다. 우리가 내한공연을 진행했던 Julien Baker는 내가 분명히 가장 사랑하는 아티스트 중 하나인데, 그녀의 인터뷰 하나하나가 모두 철학적이며 결코 허투루 말하는 법이 없다. 수도 없이 많지만 가장 감탄했던 인터뷰 중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인터뷰어가 이렇게 질문하였다.


“곡을 만들고 있고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지금 어떤 것을 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나요? (For somebody writing songs and wanting to play them in front of people, what should they be doing right now?)”


줄리언 베이커의 대답은 이랬다. (조금 정리하였다.)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가장 친절한 태도로 대하세요. 자신을 위한 최종목표를 바탕에 두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지 마세요. 만나는 모든 이에게 친절하되, 내가 무엇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알고, 어떤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세요. 그것은 특히 젊은 사람들 그리고 음악 세계에 있는 여성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곡을 연주할 자격과 꿈을 좇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고, (또한) 그것을 끊임없이 증명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아세요. 친절하고 연습을 많이 하세요. 음악을 무엇보다 우선으로 두세요. (Be as kind as you can to everyone that you meet. Do not make relationships with people based on an end goal for yourself. Be kind to everyone you meet, but also have enough confidence to know what you deserve and what you are worth. That is especially important for young people and women in music. To know that they are entitled to play music and go after their dreams and that they do not have to constantly prove themselves. Be kind and practice a lot. Put music first.)”


음악을 할 미래의 음악가에게 해주고 싶은 첫 말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라니! 역시 줄리언 베이커였다.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만나는 사람이 누구더라도 친절히 해라. 그런 실수를 하는 아티스트도 종종 본다. 음향 감독님과 조명 감독님에게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스테이지 핸드에게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있다. 비록 지금은 작은 공연장의 부매니저일지라도 미래에 대형 아티스트를 불러오는 프로모터가 될지도 모른다. 페스티벌 한구석에 조용하게 있더라도 사실 알고 보면 대형 페스티벌의 부킹 담당자일지도 모른다. 결코 알 수 없는 일이다. 일류 아티스트가 될 수 있는 비법으로 줄리언 베이커의 조언을 다시 언급한다. Be kind and practice a lot. Put music first.


작가의 이전글 공연 기획자는 올라운더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